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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2-19 05:45:28

장금칭

大隋
반란 지도자 · 할거정권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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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초기
왕문진 고지혜 침현증 이지 채도인
침효철 왕국경
수말당초
수말당초 군웅 위문통 왕만창 왕박 유패도
손안조 장금칭 고사다 격겸 손선아
유원진 동해명 백유사 맹해공 맹양
곽방예 학효덕 배장재 양현감 주섭
관숭 두복위 묘해조 조파진 이홍지
유가론 노명월 유룡아 유계진 왕덕인
좌효우 왕수발 주찬 좌재상 경반타
조사걸 두사홍 견적아 손화 적양
왕당인 왕마사 왕백당 주문거 이공일
나예 방헌백 왕군곽 이사재 위육아
이덕겸 장천 이문상 장천특 주비도
곽자화 조무철 종라후 종리속 동경진
풍앙 장선안 고담성 위도아 여숭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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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金稱
(? ~ 616)

수나라 말기의 군웅.

청하 사람으로 613년에 무리를 모아 수나라의 여러 곳을 공격해 약탈했으며, 11월 9일에 풍효자가 청하에서 공격했지만 격파해 죽였다. 616년 3월 3일에 평은을 함락시키고 하루아침에 남녀 수만 명을 죽였으며, 무안, 거록, 청하 등 여러 현을 함락했다.

장금칭은 다른 도적들보다 더 잔인하고 난폭해 지나는 곳마다 백성을 하나도 남기는 일이 없었다. 소정방이 도적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거느렸는데, 장금칭은 시평을 공격했다가 소정방에게 격파당해 수십 리 추격받았다. 이후 황하 북쪽을 노략질하고 군과 현을 함락하고 도륙했으며, 양의신과 대치해 평은의 동북쪽에서 병영을 세웠다. 장금칭이 매일 양의신의 병영 서쪽에 이르면 양의신을 싸울 것을 약속하면서도 날이 저물 때까지 나아가지 않았으며, 날이 저물면 장금칭은 병영으로 돌아갔다.

한 달 동안 그렇게 하자 겁내는 것이라 여겨 양의신의 병영을 압박하고 욕을 했으며, 양의신이 네가 내일 아침에 오면 내가 반드시 싸울 것이라 했지만 장금칭은 가볍게 여겨 대비를 하지 않았다. 양의신이 장금칭이 병영에서 떠난 틈을 살펴보고 장금칭의 치중을 공격했는데, 장금칭이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가 뒤의 기습을 받아 패하자 청하의 동쪽으로 달아났다가 한 달여 만에 양선회에게 사로잡혔다.

관리가 저자에 나무를 세우고 장금칭의 목을 매달로 손과 발을 펼쳐놓고 원수진 집안사람들에게 베어내서 먹게 했는데, 장금칭은 죽지 않는 동안에 노래와 흥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