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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6-17 19:49:13

장구겸경

1. 개요2. 생애3. 기타
3.1. 러산대불에 대한 일화

1. 개요

章仇兼琼, ?~750
당나라의 문신으로, 검남절도사 시절 안융성을 계략으로 점령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호는 충(忠).

2. 생애

739년 상서주객원외랑(尙書主员員外郞)을 지내고 이후 익주사마(益州司馬)·검남방어부사(南南防衛副使)로 옮겼다.
익주장사에 있던 시기, 검남방어사 장유는 문관으로서 공전의 계책을 알지 못하였고, 장구겸경은 군사를 전담하여 현종에게 공토를 올렸는데, 이는 안융성을 차지할 계책이었고, 이에 현종은 장유를 대신하여 사천 지역의 방무를 전담하게 했다.

740년 봄, 장구겸경이 계책으로 안융성을 점령했다.[1] 이에 10월 토번이 군사를 이끌고 안융성과 유주를 공격하였으나 장구겸경에게 격퇴당했고, 이후 안융성은 평융성으로 바뀐다.

745년 양귀비가 총애를 받자, 장구겸경은 양국충[2]을 감찰로 발탁하였고 촉의 아름다운 화물을 가지고 양국충을 장안으로 데려갔다.

746년 5월, 선우중통[3]이 장구겸경의 후임 검남절도사로 임명되고 장구겸경은 양씨 집안의 추천을 받아, 입경하여 호부상서, 전중감 등의 직책을 맡는다.

750년 죽었고 충(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기타

3.1. 러산대불에 대한 일화

사천 지역에 있는 러산대불은 713년 착공되었는데, 해통 스님이 죽는 바람에 중단되기도 했지만 당시 검남서천절도사 장구겸경이 봉금을 기부하면서 공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장구겸경이 호부상서로 옮긴 뒤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고 러산대불은 덕종 시기 완공된다.


[1] 장구겸경이 안융성을 점령함으로써 토번 제국남조국과의 연계가 막혔다.[2] 당대 간신으로 유명한 그 양국충 맞다.[3] 이름은 향이고, 중통은 자이다. 751년 남조국을 공격하나, 남조국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실패하고 이를 승전으로 허위 보고한다. 그 당시 대패라는 걸 몰랐던 두보가 이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남조국 정벌 실패를 승전으로 허위보고한 게 드러나자 실각하고, 755년 사망한다. 저서로 《선우향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