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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18:00:02

장강 평야

1. 개요2. 상세
2.1. 고대 도시
2.1.1. 고소2.1.2. 당읍2.1.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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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강 이남에서의 하류에 위치한 평야 지대를 의미한다.

고대에는 오(吳)나라 등이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파일:중국의 강남지방 지도.png

파일:회수.jpg

2. 상세

2.1. 고대 도시

2.1.1. 고소

姑蘇.

오(吳)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고소성(姑蘇城), 고소산(姑蘇山), 고소대(姑蘇臺) 등이 유명하다.

나중에 소주(蘇州:쑤저우)로 개명되었으며, 근현대에는 쑤저우시로 행정 편성되었다.

2.1.2. 당읍

기원전 571년(주령왕 원년) 초나라가 지금의 육합구(六合區)에 당읍(棠邑)을 설치한 것이 시작이었다.

기원전 473년(주원왕 4년)에 월나라 대부 범려가 지금의 진회(秦會)지역인 강 남쪽에 월성(越城)을 쌓으면서 지금의 난징 시가지 축성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33년(주현왕 36년) 초위왕이 돌산에 금릉(金陵)읍을 축조하면서 지금의 난징 시내에 치소가 설치되었다.

중원 전토를 통일한 후 순행하던 진시황이 이 지역에 도달했을 때 '제왕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여 소나무를 빽빽이 심어 왕기를 억누르고, 이름도 말릉(末陵)으로 바꿔버렸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망기자(望氣者)라는 사람이 500년 후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진나라 시황제가 북산(北山)을 파헤쳤다고 한다. 이후 후한말까지 현재 난징 지역에는 현급 행정 구역만 설치되었고 삼국시대 이전까지 말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손권의 손오 시절인 212년에 이 곳 금릉(金陵:진링)을 수도로 삼으면서 이곳을 건업(建業)이라고 개명하였다.

북주의 무제가 북제를 무너뜨리고 중원 평야를 점령한 이후, 양견(楊堅)[1]이 집정한지 거의 직후에 수나라로 국명을 바꾸면서 문제가 되고나서 '장강 평야'에 있는 진(남조)를 무너뜨른 이후, 송나라 시절에는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하여 '중원 평야'와 관중 분지를 빼앗겼으며, 때문에 송나라가 보유한 평야 지대는 쓰촨분지와 '장강 평야'정도만 남은 상태가 되었고, 이때부터 장강 하류에 위치한 금릉은 한족 왕조가 침투왕조를 몰아내기 이전의 임시 수도로 활용되었다. 명나라 시절부터 '난징(남경)'으로 개명되었다.

근현대에는 난징시로 행정 편성되었다.

2.1.3. 기타



[1] '양황후(선제의 황후)의 아버지'이자 '양충의 아들'이며, 당시 대장군이자 수국공 직책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