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 2세 드 샹브스 Jean II de Chambes | |
생몰년도 | 미상 ~ 1474년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미상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몽소르 | |
아내 | 잔 드 샤보 | |
자녀 | 장 3세, 콜레트 | |
직위 | 몽소르, 라 쿠탕시에르, 생트, 페리고르, 앙굴렘, 리무쟁의 영주 |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샤를 7세의 고문, 시종을 역임했다.2. 생애
1426년 3월 11일자 샤를 7세의 서신에 따르면, 그는 샤를 7세의 향사였으며, 200 리브르 투르누아를 선물로 수여받았다. 1428년 2월 26일 블루아에서 발행된 300 리브르 투르누아를 받고 에그모르트의 대장에 선임되었으며, 1438년 2월 14일자 회계 기록에 따르면, 그는 왕의 '빵 굽는 시종'이 되었다. 1442년 1월 8일 고문 겸 시종으로 선임되었으며, 1441년 11월 몽페랑에 있는 영지의 왕실 위원으로 발탁되었다. 1444년 몽펠리에에서 자크 쾨르와 함께 랑그독 지방의 삼부회를 이끌었다. 1451년 9월 11일 딸몽슈흐쥐홍드의 대장이 되었다. 1450년, 당시 빚을 지고 있던 처남 루이 2세 샤보로부터 몽소르와 라 쿠탕시에르의 영지를 인수했으며, 몽소르 성을 건설했다.1452년 도팽 루이가 허락없이 결혼한 것에 대해 아버지의 질책을 받은 것 때문에 왕국을 떠나려 하자, 샤를 7세는 이를 막기 위해 그를 파견해 왕자를 설득하도록 했다. 이후 1453년 4월 11일 작센 공작 프리드리히 2세, 라인의 팔라틴 백작, 바이에른 공작의 사절들과 동맹 조약을 협상했으며, 프랑스군이 카스티용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뒤 보르도 시민들이 샤를 7세에 투항하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454년 로마와 오스만 제국에 사절로 파견되었고, 1459년 교황 비오 2세가 주최한 만토바 공의회에 참석해 십자군을 조직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1466년 에그모르트 근처에 있는 샤르보니에르 탑의 대장이 되었으며, 1469년 4월 24일 루이 11세가 보낸 편지에서 생트, 페리고르, 앙굴렘, 리무쟁의 영주로 거론되었다. 1474년경 몽소르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3. 가족
- 잔 드 샤보: 라 그레브, 몽소로의 영주 티보 샤보의 딸.
- 장 3세 드 샹브스(1445 ~ 1515/1518): 몽소르 영주
- 콜레트 드 샹브스(1445년에서 1450년 사이 ~ 1471): 투아르 자작 루이 당부아즈의 부인. 1470년 2월 28일 직접적인 남성 상속인 없이 미망인이 된 그녀는 1462년 1월 25일 루이 당부아즈의 재산을 몰수한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에게 남편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이에 루이 11세의 동생인 기옌 공작 샤를의 도움을 요청했고, 나중엔 기옌 공작의 정부가 되었다. 루이 11세는 그녀가 재산을 돌려받을 자격이 있는지 조사해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녀는 그 직후인 1471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