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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45:29

일본항공 472편 납치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ja8033.jpg
납치 1년 전,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1977년 9월 28일
유형 하이재킹
발생 위치
[[방글라데시|]][[틀:국기|]][[틀:국기|]] 다카 국제공항
기종 DC-8-62
운영사 일본항공
기체 등록번호 JA8033
출발지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경유지
[[인도|]][[틀:국기|]][[틀:국기|]] 마하라슈트라 차트라파티 시바지 국제공항
도착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 국제공항
탑승인원 승객: 137명[1]
승무원: 14명
생존자 탑승객 151명 전원 생존

1. 개요2. 사건 진행3.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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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ダッカ日航機ハイジャック事件(ダッカ事件)
日本航空472便事件
Japan Air Lines Flight 472(1977)

1977년 9월 28일 일본 적군파가 수감된 적군파 회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일본항공 소속 DC-8을 납치한 사건.

2. 사건 진행

납치범 5명[2]을 포함한 156명이 탑승한 472편은 파리를 출발해 경유지 차트라파티에 착륙한 후 다시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납치되었는데 납치범들의 대장 마루오카 오사무(丸岡 修)는 다카에 JAL 472편을 강제착륙시키고 9명의 적군파 회원 석방과 600만 달러를 요청하면서 요구를 들어 주지 않을 시 미국인 인질부터 차례로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총리였던 후쿠다 다케오는 '사람의 목숨은 지구보다 더 무겁다'며 하이재커들의 요구를 수용했고 600만 달러와 6명의 적군파 회원을 인질 118명과 교환했다. 납치범들은 쿠웨이트 시티를 거쳐 다마스쿠스에 착륙해 인질 11명을 추가로 석방한 뒤 알제리에서 억류되었으며 남은 인질 전원이 이때 석방되었다.

3. 사건 이후

1987년 대장 마루오카 오사무는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가 일본 여권법에 걸려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011년 5월 29일 하치오지 의료형무소(八王子医療刑務所)에서 심장병으로 인해 향년 60세로 사망했다.


[1] 납치범 5명 제외[2] 납치범들의 대장 마루오카 오사무를 비롯하여 사사키 노리오(佐々木規夫. 현재 지명수배 중), 반도 쿠니오(坂東國男. 현재 지명수배 중), 니시카와 쥰(西川 純.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구마모토 교도소에 수감 중.), 와코 하루오(和光晴生.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도쿠시마 교도소에 수감 중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