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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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3년 |
한양 |
사망 | 미상 |
사망지 미상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그는 연기우 의진의 서기로 경기도 고양, 교동, 강화 일대에서 활약했다. 그는 러일전쟁 직후 일제의 강요와 위협 아래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의 위기임을 절감하고 국권회복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가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이 체결되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8월에는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되는 준식민지 상황이 되었다. 이같은 시기에 군인들은 해산에 반대하여 무기를 들고 격렬한 시가전을 감행했고, 지방에서도 군인들이 잇달아 봉기하여 의병에 합류하거나 의병을 조직했다. 이 때 그는 연기우 의병부대에 동참했다. 그리하여 그는 1908년 음력 3월부터 8월까지 의병장 연기우와 함께 의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고양군, 교동, 강화도 등지에서 친일분자에 대한 응징을 하는 한편,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거둘 때 서기로서 임무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8년 10월 1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 7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