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배경. 2010년 6월 13일 ~ 2015년 2월 최장기간 사용한 세트장[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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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9년 9월 4일~2019년 7월 21일까지 활동했던 이태선밴드의 개그콘서트의 의미를 다룬 내용이다.2. 내용
개그콘서트에는 1999년 9월 첫방송부터 현장음악을 담당해 온 '이태선 밴드'가 있다. 혹자는 주무대 옆 6평(198m²) 남짓한 보조무대를 지키는 이들을 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개콘에서 살아남은 진짜 승자라고 말한다. 개콘이 벌써 15년[2]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감회가 깊어요. 제작진이나 개그맨과 정말 오랜 시간을 같이하다 보니 이제는 서로 정말 잘 알아요. 우리도, 그들도 오랫동안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1999년 시작할 때는 방송 50회를 예상한다고들 했어요. 50회를 넘기고 나서는 찬 바람 불고 예쁜 꽃 필 때마다 계속 걱정했죠. 코미디 프로그램 개편 시기니깐요. 5~6년 지나고서는 계속 방송되나 보다라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왔네요. 15년 내공의 '이태선 밴드'는 거의 NG를 내는 법이 없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아주 가끔 실수를 하는 적도 있다고 했다. 한 코너의 개그연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음악을 이어 붙여야 해요. 그런데 몇 개월 전에 개그 연기가 끝나고 콜이 와서 원-투-셋 했는데 원-투 한 다음 조용하더라고요. 개그가 너무 웃겨서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드럼이 제때 (연주가) 못 들어간 거죠. 리더 이태선은 개콘은 아무래도 개그가 주인인 개그 프로그램이지 음악 프로그램은 아니기에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몇년 전 음악 프로그램에서 같이하자고 우리 밴드에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개콘과 녹화날이 같았어요.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으로 옮겨야 할지 (개콘에)남을지 멤버들과 상의했는데 그때 의견이 둘로 나뉘었는데 개콘이 자리를 잡고 오래 방송될 프로그램이니만큼 남겠다 라는 쪽과 좀 더 분명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자라는 쪽이 맞섰지만 멤버들은 결국 잔류를 선택했다. 리더 이태선은 현실적으로 따지면 그때 선택이 옳았다고 말했다. 우리 밴드가 개콘을 통해서 알려졌잖아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기도 하고 좋아 해주기도 해요. 워낙 개콘의 인기가 높다 보니 우리에게는 좋은 상황이 됐죠.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좀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요. 지근거리에서 숱한 코너들의 명멸을 지켜봐 온 멤버들은 대박 나는 코너는 리허설 무대에서부터 성공할지 보인다. 빵 터지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종종 녹화 현장에서 방청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을 때면 이들이 느끼는 부담도 상당한 상황에서 밴드 마스코트인 이유희 씨는 종종 방청객들의 박수를 유도하면서 키보드 연주자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고 한다. 2011년 폐지되기 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최장수 코너 '달인'을 꼽은 은성태 씨는 개그맨들이 제일 고생했던 코너다. 준비하는 과정도 그렇거니와 그걸 개그로 승화시키는 일도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정말 훌륭한 코너였다고 평가했다. 이필원 씨는 마빡이의 첫인상이 정말 강렬했다고 했다. 달인 같은 코너는 코너가 진행되면서 자리를 잡았지만 마빡이는 처음부터 큰 충격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음악인들만큼 음악 코너에는 더 눈길이 가는 법이다. 기억에 남는 음악 코너를 꼽아달라는 주문에 여러 멤버가 "뮤지컬"을 꼽았다. 현장 음악의 역사를 만들어 온 이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현장음악의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현장 그 자체인 음악",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전체 프로그램과 맞춰 돌아가는 음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오늘도 여전히 묵묵하고, 열정적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이태선 밴드'에게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 처음에는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개콘은 제 삶과 떨어뜨려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언제까지고 하고 싶네요. (이유희)
- 개콘이 없어질 때까지 운명을 같이하고 싶어요. (이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