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29176e><colcolor=#fff> 대한제국 고종의 아들 이육 | 李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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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14년 7월 3일 | ||
|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 함녕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함녕전) | |||
| 사망 | 1916년 1월 22일 (향년 1세) | ||
| 경기도 경성부 덕수궁 (現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
| 묘소 | 경기도 고양군 청량리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29176e><colcolor=#fff> 본관 | 전주 이씨 | |
| 휘 | 육(堉)[1] | ||
| 부모 | 부황 고종 태황제 모친 광화당 귀인 이씨 | ||
| 형제자매 | 9남 4녀 중 8남 | ||
| 체중 | 8kg[2] | ||
1. 개요
고종의 8남. 어머니는 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貴人 李氏, 1885년 12월 3일~1967년 11월 10일)이다. 휘는 육(堉). 완친왕과 순종, 의친왕, 영친왕, 덕혜옹주에겐 이복동생이 된다.2. 상세
1914년 8월 20일 오전 9시에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과 광화당 귀인 이씨[3]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육 황자를 낳은 귀인 이씨는 광화당(光華堂) 이라는 당호를 받았다. 1년후 자신의 이복동생인 이우가 태어나게 되어서 자신이 출생한 함녕전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생후 18개월이 지난 1916년 초에 당시 유행하던 뇌수막염으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요절하였다. 묘는 경기도 청량리에 매장되고 그곳에 장사지냈다.[4]3. 가족
[1] 고종의 아들들 중 이름을 하사받은 선(墡), 척(坧), 강(堈), 은(垠), 육(堉), 우(堣)는 모두 휘에 흙 토(土)변을 공유한다. 대개 같은 왕의 아들들은 이름자에 같은 부수를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고종의 사가(私家) 일원인 흥선대원군과 그 형제들의 손자 이름도 항렬자를 제외한 이름 글자에 흙 토(土)변이나 흙 토가 들어간 글자를 공유한다. 흥녕군의 손자 이기용(李埼鎔), 흥완군의 손자 이달용(李達鎔)과 이규용(李逵鎔), 그리고 흥인군의 손자 이지용(李址鎔),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李埈鎔)과 이문용(李𪣢(土 + 汶)鎔), 그리고 이관용(李土+灌鎔).[2] 출처 마지막으로 측정된 체중은 1관 990량인데, 1관 990량을 킬로그램으로 환산하면 이육의 체중은 8kg이 된다.[3] 휘는 이완덕(李完德).[4] 뇌수막염을 앓아 건강이 나빴으며 사망하던 날 새벽 고종과 광화당이 간병중에 잠시 눈을 붙이러 자리를 비운 그 찰나에 숨져 모두를 안타깝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