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뒤마누아르 Yves Du Manoir | |
<colbgcolor=#fff><colcolor=#000> 본명 | 이브 프랑츠 로이 마리 르펠레 뒤마누아르 Yves Frantz Loÿs Marie Le Pelley Du Manoir |
출생 | 1904년 8월 11일 |
사망 | 1928년 1월 2일 (향년 23세)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오드센 낭테르, 보크레송 |
신체 | 키 170cm |
포지션 | 플라이 하프 |
클럽 경력 | 라싱 (1923~1927) |
국가대표 | 프랑스 (1925~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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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前 럭비 선수. 프랑스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과 라싱 92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나 비운의 사고로 요절했다.2. 생애
이브 뒤마누아르는 파리 근교 보크레송의 자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만능 스포츠맨 기질을 보였으며 테니스, 조정, 수영, 육상 등 여러 종목에서 특출났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재능을 보인 것은 바로 럭비였다. 1925년 1월 1일 아일랜드전에서 처음 국가대표로 데뷔했으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었다. 그 후 국가대표는 물론 클럽 팀인 라싱 92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주장을 맡게 되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여 당시 사관학교로 운영되던 그랑제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하여 공군 조종사 과정에 들었다. 뒤마누아르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남긴 상흔으로 어려움을 겪던 1920년대 프랑스 사람들에게 우상이자 희망이 된 존재였다.3. 사망
1928년 1월 2일 오후, 프랑스는 스코틀랜드와의 경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주장이었던 뒤마누아르는 이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는데, 당일 공군 조종사 시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있던 날 뒤마누아르는 연습기를 조종하다가 바퀴 한 쪽이 포퓰러 나무 가지에 붙들려 추락,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당일 오후 경기의 관중들과 경기에 임하는 프랑스 팀 동료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는데, 관중들은 뒤마누아르가 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경기 내내 뒤마누아르의 이름을 연호하였다.경기를 승리로 이끈 프랑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야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통곡하였고, 이 소식은 전국에 추모 분위기를 일으켰다. 프랑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도 애도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뒤마누아르의 소속팀이었던 라싱 92는 구장명을 이브 뒤마누아르의 이름으로 변경하였고 사고 현장에는 그의 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