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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03:34:49

이방원(송경별곡)



파일:연못에 핀 목화-송경별곡.이방원.jpg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의 등장인물이자 조선의 태종을 모티브로 한 인물.

2. 작중 행적

훗날 조선의 3대 국왕 태종.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자 이방우&이방과의 남동생이며 지씨 자매의 시동생/이원생&이후생&이말생에게는 숙부. 왕자군 작위는 정안군.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물이며 화가 나면 동북면 사투리를 쓴다.[1] 작은 형인 이방과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식은 가히 평범하지가 않다.중증 브라콤[2][3]

작중 굉장한 포스를 풍기며 분위기를 압살한다. 그 때문인지 주인공도 아니고 러브라인도 없음에도 상당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4] 분량은 많지 않지만 엄청난 씬스틸러.

이방과와 마찬가지로 이방석의 세자 책봉과 신덕왕후를 향한 이성계의 편애를 매우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이후 정도전의 사병혁파까지 진행되자 분노해 방과와 함께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과를 왕위에 올리는 일등 공신이 된다.

그러나 지혜령문중원에게 있어서만큼은 이런 방해꾼도 없었다. 혜령이 이말생을 낳고 건강이 안 좋아졌을 당시, 그녀가 먹는 탕약에 다른 약을 섞어 기억을 잃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혜령은 문중원은 물론 그의 아들인 이후생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채 지내다가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심지어 혜령의 장남 이후생이 문중원의 아들임을 눈치채고 분노하여 죽여버리려고까지 하였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2차 왕자의 난이 터지면서 혜령과 도망칠려던 문중원을 붙잡아 처형시킨 것. 문중원의 죽음으로 혜령은 사실상 자살하고, 방과마저 절망해 자포자기로 방원에게 양위한다. 이 소식에 방과에게 달려와 울며불며 양위는 안된다고 필사적으로 반대하지만, 방과는 오히려 자신이 일부러 혜령이 도망치도록 보내줬는데 어째서 문중원을 처형했냐고 절규한다. 그제서야 자신의 형이 얼마나 혜령을 사랑했고 그녀의 죽음으로 앞으로 남은 여생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갈지 깨달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통곡한다.

이후 18년이 지난 에필로그에서 이후생에 의해 언급되는데, 조선 3대 국왕 태종으로 등극했다고 한다. 이후생이 문중원의 아들임을 알고 있음에도, 이전과는 달리 궁궐에도 종종 부르고 잘 대해준다고 한다.[5]

3. 기타

작중에서 신장은 173cm으로 큰형 방우(177cm) 둘째 형 방과(179cm)보다 작고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작다. 캐릭터 소개란에서도 형들은 덩치가 크고 몸이 단단하지만, 방원은 갇히다시피 공부만 한 탓인지 얼굴이 허옇고 허약하다고 한다.[6]

작중에서 방원의 정실인 정녕옹주[7] 민씨(훗날의 원경왕후)는 직접적인 등장이 적은 대신 잊을만 하면 언급되는데, 실제 역사대로 굉장히 괄괄하고 한성깔하는 성격[8]의 소유자로 거사를 대비해 군사와 무기를 최대한 숨길 수 있는만큼 숨겼다. 외전 구부득고에서 형들의 언급에 의하면 부부가 매일 투닥투닥거린다고 한다.
[1] 작중 사투리 쓰는 장면이 얼마 없지만 이 대사가 나올 때 풍기는 포스가 정말 ㅎㄷㄷ하다(...)[2] 이 브라콤끼는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단행본 외전 이랑월장전에서 형 방우가 혼담에서 도망치려고 난동을 부리자 형 방과에게 안겨 매달리면서 방우를 음침한 눈으로 봤다. 또한 방과가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릴 때 더 매서운 눈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외전 구부득고에서는 방과의 가물치 낚시 때, 전날밤에 수하를 동원해 최고급 가물치를 풀어놨단다.[3] 그렇다고 다른 형들에 대한 애정도 방과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나름 있었다. 손윗형 방간과는 말 그대로 현실형제(...)로 반말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였고, 외전 구부득고에서도 이씨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느 형제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지낸다. 또한 원작자 후기에 의하면 동복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이방원이라고 나온다.[4] 83화. 결단의 밤 중 이복동생 이방번과의 대화 마지막 부분에서 이방원의 대사는 송경별곡 전체를 통틀어 그의 최고 명대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포스랑 위압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5] 참고로 에필로그의 시점은 태종이 충녕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해인 1418년이다. 후생을 이전과 달리 잘 대해주는 이유는 방과의 양위 때문뿐만이 아니라, 양녕대군의 비뚤어진 비행으로 인해 그를 폐위하고 충녕을 새로운 세자로 삼은 것도 이러한 심경 변화에 한몫한 듯하다.남의 자식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된다 본편에서도 정처인 원경왕후와 매일 티격태격거리긴 하지만, 친자식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고 나오며 실제 역사에서도 태종은 희대의 아들바보였다.[6] 실제 역사에서도 아버지인 이성계가 이방원을 두고 허약하다고 걱정한 기록이 있는데 태종이 중증 사냥덕후이고, 작중에서 1차 왕자의 난 때 행동대장으로 나선 걸 보면 아주 허약한 건 아니고 사냥도 즐길 정도이지만 대인 격투같은 것엔 몸을 못쓰는 체질인 듯 하다.[7] 왜 왕자의 부인에게 후궁의 딸(즉, 임금의 서녀)을 의미하는 옹주 직위가 붙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조선 전기 때는 고려 시대의 호칭이 그대로 이어져 비빈이나 왕족의 부인들도 궁주나 옹주의 칭호로 불렸다. 작중에서도 이방과의 두번째 부인인 가의옹주 유씨가 나오고, 혜루는 '화양옹주'로 불리며 혜령도 '인덕옹주'로 불린다.[8] 시어머니격인 현비 강씨의 말에 패기있게 조목조목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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