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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4-11 11:00:46

이달(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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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이달
李達 | LEE 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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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이명: 이동재(李東宰), 임달천(林達天), 이토우 다쓰오(伊藤達雄)
출생 1890년
충청남도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
(現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황리)
사망 미상 (향년 불명)
미상
묘소 미확인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
가족 불명
학력 불명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2021년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이달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과 언론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양청년동지회 조직, 잡지 및 신문 발간, 2·8 독립운동 후계 투쟁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항일 사상을 고취하였으며, 이러한 공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이달은 1890년경 충청남도 논산군 부적면 부황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며 사회주의 계열의 동양청년동지회를 조직하였다. 1917년 9월 15일 『동아시론』 제1호, 10월 15일 제2호를 발간하였으며, 이후에도 반일 사상과 사회주의를 고취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하였다. 『동아시론』은 일제 당국에 의해 금지 처분을 받았다.

1918년에는 『혁신시보』를 발행하였으나 역시 금지되었고, 신문지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신조선』을 창간하여 「정복과 전제를 물리치자」, 「조선독립과 일본정부」 등의 글을 통해 일제 식민지배를 비판하고 독립 사상을 고취하였으나, 이 역시 반포 금지 처분을 받았다.

1919년 2월 8일 도쿄 조선인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독립선언 이후, 그는 2월 12일 히비야 공원에서 유학생들과 함께 후속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이 모임에서 회장으로 추대되어 독립청원과 후속 조직을 추진하려 했으나,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1년에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박진호, 정만갑, 이만우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신조선』 발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사를 국내에 파견하였으나, 관련 인물들이 체포되면서 그 역시 1920년 도쿄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이후 1920년 8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신문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과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출옥 후에는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협력하여 독립운동가 변호 활동을 지원하였다. 1926년에는 ‘조선문제연구회’를 조직하여 조선 문제 연구와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에는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며 조선합동노동사 정기대회에서 교육출판부 부장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연설회를 통해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또한 조선공산당 사건 관련 재판에서 변호 활동을 지원하고, 일제의 고문 행위에 항의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