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富士銀行行員顧客殺人事件[1]1998년 사이타마현 미야시로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은행 직원이 자신의 담당 고객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사건이다.
2. 사건의 경위
후지은행의 은행원 A는 1996년 2월 사이타마현의 카스가베 지점에 배속되었다. 그 후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아 당시 자택에서 마사지샵을 운영하던 노부부[2]의 담당을 맡게 되는데, 업무상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많았던데 더해서 노부부도 A가 찾아올 때마다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이후 A와 노부부는 함께 식사를 하는 등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한편 A는 얼마 후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담당하면서 중소 건설회사인 B사를 고객으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년 후인 1997년 A는 경영이 어려워진 B사로부터 2000만 엔의 대출 요청을 받지만, 조사 결과 B사는 담보가 될 만한 것도, 보증인도 없는 상황임이 밝혀진다. 당시는 버블 경제가 붕괴한 여파로 인해 각 금융기관들의 대출 조건이 엄격해지는 시기였고, 이는 후지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쉽게 정에 흔들리는 성격이었던 A는 B사 사장에게 차마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3], 어떻게든 자금을 융통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그만 부정대출에 손을 댄다. 그 수법은 우선 자신이 담당하는 노부부가 투자상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들에게 투자신탁 상품[4] 가입을 권유하고, 부부가 출자한 자금을 그대로 B사에 대출해주는 방식이었다.[5] 물론 은행에는 대출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짓 보고를 했고, 고객인 B사 측에도 대출이 가능하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양 측 모두 부정대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노부부의 신뢰를 얻기 위해 투자신탁증서 등 관련 서류를 위조하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우선 1000만 엔을 부정대출한 A는 B사의 영업실적이 좋아져서 대출금을 상환받으면 바로 노부부에게 돈을 돌려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처음에는 A의 생각대로 되었다. 그러나 1000만 엔으로는 도저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B사 사장은 상환 실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대출이 가능할 것이라 믿고[6] 재차 2000만 엔의 대출을 요청했다. 액수가 점점 커지자 A는 부정대출이 발각될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른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쳐 A가 담당하고 있던 한 중소기업의 조건부 대출이 불가능해지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이 일로 공중분해된 돈을 메꾸기 위해 A는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1700만 엔을 중소기업에 부정대출하고, 이렇게 노부부의 자금으로 부정대출을 계속한 결과 A는 2500만 엔의 채무를 변제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후에 투자금 상환이 계속 연기되는 것에 노부부가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여기에 더해 본점 융자부로 인사 발령이 나자 그간의 부정대출 행위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A는 결국 1998년 7월 2일 밤 대금 상환이 가능해졌다는 거짓 연락을 한 뒤 노부부의 집을 방문, 아내와 남편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하고 도주했다. 사건 발생 이틀 후인 7월 4일 노부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평소 자택에 드나들던 업자와 고객들 등을 상대로 부부 주변의 인간관계를 조사한 결과, A가 용의자로 급부상했다. 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A는 범행 일체를 시인했고, 이후 강도살인죄로 기소되었다.
3. 사건 이후
1심에서 검찰은 A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나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이후 검찰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2심 재판부에서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검찰의 판단을 명시하면서도 사리사욕을 위한 범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강도살인과 같은 예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사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이후 검찰 측에서 상고를 포기하여 그대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한편 후지은행은 이 사건으로 하시모토 토오루 회장과 대표이사진 16명 전원에게 3개월 감봉, 지점 관리 책임자인 부행장과 A가 근무했을 당시의 카스가베 지점장을 강등처분했다.
4. 버블경제가 사건의 한 요인이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요인을 당시의 버블 경제에서 찾는 해석이 있다. 정확히는 버블 경제 시기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에서 대규모 채용이 이루어졌을 때 채용된 은행원들 중 상당수가 기초적인 업무 능력도 없는 무능한 직원들이었다는 것. 실제로 업무에 필요한 기초적인 서류를 작성할 줄 모르는 은행원이 적지 않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무단결근하거나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버블 시기에 대규모로 채용된 무능한 은행원들을 일명 '불량채권'이라고 불렀을 정도. 사건의 범인 A도 버블 경제가 한창이던 1989년에 채용된 이른바 '버블 채용조' 중의 한 명이었다고 한다.[1] 후지은행 행원 고객 살인사건[2] 사건 당시 남편 74세, 아내 67세로 마사지사인 남편은 전맹의 시각장애인이었다.[3] 여기에는 과거 A의 아버지가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고생하는 것을 곁에서 보아 온 경험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4] 당시 후지은행에서는 본격적으로 투자신탁을 취급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품 자체는 이전부터 존재했다.[5] 한 금융 전문 저널리스트에 따르면 당시 고객 유치를 위해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은행원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한다.[6] 물론 이런 부정대출은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상환 실적도 있을 리가 만무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