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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8 12:19:14

유흥치

劉興治
(? ~ 1631)

1. 개요2. 생애

1. 개요

명나라 말기의 장수. 요동 사람.

그는 7형제로 유흥패, 유흥조, 유흥기, 유흥량, 유흥현, 유흥방 등이 있으며, 그 중 다섯째라서 유오(劉五)라고도 불린다.

2. 생애

피도에서 부장으로 1629년에 원숭환모문룡을 죽일 때 원숭환을 지지해 좌우무화자(左右無譁者)라 했다.

유흥조가 후금과의 싸움에 전사해 유흥조의 뒤를 이어 도사가 되었으며, 진계성은 유흥조가 전사하지 않고 후금에 항복한 것으로 의심하자 유흥치는 피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1630년 4월 12일에 유흥조의 장례식에서 진계성을 공격해 100여 명을 죽이고 가도로 도망갔다.

이 일로 인해 조선에서 유흥치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가려 했으나, 유흥치가 전함 49척을 이끌고 등주로 가면서 조선의 공격은 무산되었으며, 유흥치는 7월에 후금과 동맹을 맺었다.

명나라에서는 가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군량 공급을 중단했으며, 유흥치는 의주의 군사 5백 명으로 조선인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다. 조선에 두 차례 사신을 보내 자신을 공격하려 한 이유를 물으면서 양곡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11월에 자신의 부하를 보내 조정과 서로 왕래하는 문서를 위조해서 군량을 얻어내려 했으나, 조선에서 이를 간파하고 거부했다.

1631년 1월에는 조선에서 사신이 오자 한인을 살해한 범인을 체포해서 보내라고 요구했으며, 3월에 후금에 투항을 하는 것에 반발한 장도, 심세괴에게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