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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26 13:15:19

유철목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16년 5월 19일,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용덕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6세에 소학교에 진학하였으며, 2년간 공부하였으나 가정 형편 때문인지 학업을 그만두었고, 나중에 용원 소학교에 다시 진학하여 1931년에 졸업하였다. 이것으로 학업을 마치고 결혼하여 우편집배원으로 일했으며 이후 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1932년에 일본 경찰에 정치 모임에 참석하고 불법적 문헌을 읽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나 1개월 후 석방되었다.

이후 어부로 활동하면서 부업으로 농사를 지었다. 1936년 5월, 강원도의 수산회사의 운전수로 고용되어 1938년까지 일하였으나 8월에 결근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후 1939년부터 청진의 금속회사에 취직하여 반장으로 일하면서 몰래 공산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까지 금속회사에서 일했으나 일본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자 1945년 1월, 만주로 도주하였고 한달 후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공산주의 지하활동을 이어나갔다. 해방 후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 군 노동조합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나섰으며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 청진시당 선전선동부장에 임명되었다.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아 1948년 9월 15일부터 1950년 7월 1일까지 조선로동당 당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고 소련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소련 유학생 후보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종전 직전인 1953년에 개성시당 위원장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9월 20일, 최고인민회의 2기 1차 회의에서 법제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황해남도 당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6월, 김창만과 함께 조선로동당 대표단으로 중국을 방문하였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1958년 5월에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58년 9월 7일, 김응기, 김응상, 리병남, 박문규, 박세창, 정성언, 최재하, 최재우과 함께 북한 창건 10주년 국기훈장 2급을 받았으며 받았다. 1958년 9월 전원회의에서 황해남도 당위원장에서 해임되어 내각 수산상 임명이 결정, 9월 29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임명되었다. 하지만 일처리가 별로였는지 아니면 종파주의자 숙청에 걸려든 것인지 1959년 8월 31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철직되었다. 이후 숙청된 것으로 보이며 실종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