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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0 14:49:23

유소(여릉왕)

<colbgcolor=#3f51ba><colcolor=#fff> 여릉소왕(廬陵昭王)
劉紹 | 유소
시호 소(昭)
작위 여릉왕(廬陵王)
유(劉)
이름 소(紹)
휴윤(休胤)
가족 친아버지: 문제(文帝) 유의륭(劉義隆)
양아버지: 효헌왕(孝獻王) 유의진(劉義眞)
생몰 432년 ~ 452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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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북조시대 유송의 황족으로 자는 휴윤(休胤)이다.

2. 생애

본래 문제 유의륭과 후궁인 수의(修儀) 고씨(高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의진이 424년에 후사 없이 사망해서 432년에 문제가 유소를 유의진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유소는 관대한 성품 때문에 문제의 사랑을 받았다.

443년, 남중랑장(南中郞將), 강주(江州) 자사로 전출되었다. 445년, 도독강주예주서양진희신채3군제군사(都督江州豫州西陽晉熙新蔡三郡諸軍事)로 승진했다. 뒤에 좌장군(左將軍), 남서주(南徐州) 자사로 전임되다가 부임하기 직전에 양주(揚州) 자사로 전임되었다. 450년, 북위의 군대가 과보(瓜步)까지 당도하자, 태자 유소와 함께 석두성에 진수했다.

452년, 병으로 인해 모든 직무를 내려놓은 뒤에 사망하여 산기상시(散騎常侍), 진군장군(鎭軍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추증되었고 소(昭)라는 시호를 받았다. 유소는 아들이 없어서 사후 유삭의 3남 유경선을 양자로 입적시켰다.

유경선은 465년 전폐제 유자업에게 살해당하여 명제 유욱이 즉위한 뒤 공(恭)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후 효무제의 아들인 진희왕(晉熙王) 유자여(劉子輿)를 양자로 입적시켰으나 머지않아 명제가 유자여를 죽였다. 467년, 계양왕(桂陽王) 유휴범의 아들 유덕사(劉德嗣)를 후사로 삼았다가 474년에 유휴범과 함께 처형되었다. 475년 임례충후(臨澧忠侯) 유습(劉襲)의 3남 유호(劉暠)를 후사로 삼았으나 477년에 죽어서 원(元)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유호도 아들이 없어서 국이 그대로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