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해밀턴 쇼 William Hamilton Shaw | |
한국명 | 서위렴(徐偉廉) |
출생 | 1922년 6월 5일 |
일제강점기 평양시 | |
사망 | 1950년 9월 22일 (향년 28세) |
대한민국 서울시 녹번리 | |
복무 | 미국 해군 |
최종 계급 | 대위[1] |
복무 기간 | 1943 ~ 1947 1950 |
학력 | 평양외국인학교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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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평양시에서 감리교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때까지 평양에 있어서 평양 사투리에 상당히 능했다. 귀국하고 나서도 조선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했을 정도였다.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고속정 PT-518의 부장으로 공을 세웠다. 1947년 미군정에서 복무하다가 조선해양경비대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하며 함정운용, 해군 창설에 기여했다.
하버드 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교사가 될 예정이였으나 6.25 전쟁이 발발해 현역으로 복귀했다. 한국어가 능통하고 지리가 밝아 극동해군 정보장교가 되었다. 인천 상륙 작전 이전 사전정찰에 참가했다.
서울 수복 작전 당시 제1해병사단 5해병연대에 배속되어 녹번리 인근을 수색하던 도중 북한군의 기습적인 기관총사격에 전사했다. 사후 대위로 추서되었고 은성훈장을 수여받았다.
3. 여담
- 아버지 윌리엄 얼 쇼는 아들의 전사에 충격받고 미 육군 군목으로 활동했으며 한국군 군종제도 창설에 기여했다. 1954년 목원대학교의 전신 감리교대전신학교 창립에 기여했고 1964년 사망해 아들이 안장되어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어머니 아델린역시 함께 안장되었다.
- 부인 후아니타 로빈슨 쇼, 장남 로빈슨 쇼도 한국에 입국해 교육과 봉사활동에 헌신했다.
- 2015년 9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1] 사후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