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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17:10:39

덴마크의 울리케 엘레오노레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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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0E0F2><colcolor=#000> 스웨덴 칼 11세의 왕비
덴마크의 울리케 엘레오노레 공주
Prinsesse Ulrikke Eleonore til Danmark
파일:울리케 엘레오노레.jpg
이름 덴마크어 울리케 엘레오노레
(Ulrikke Eleonore)
스웨덴어 울리카 엘레오노라
(Ulrika Eleonora)
출생 1656년 9월 11일
덴마크 코펜하겐
사망 1693년 7월 26일 (향년 36세)
스웨덴 솔나 칼베리 궁전
배우자 칼 11세 (1680년 결혼)
자녀 헤드비그 소피아, 칼 12세, 울리카 엘레오노라
아버지 프레데리크 3세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
형제 크리스티안 5세, 아나 소피[1], 프레데리케 아말리, 빌헬미네 에르네스티네, 외르겐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과 결혼2.2. 왕비2.3. 사망
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clearfix]

1. 개요

스웨덴 칼 11세의 왕비이자, 칼 12세,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어머니다. 활발한 자선 활동으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결혼

1656년 9월 11일 프레데리크 3세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 사이에서 2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우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그림 그리는 데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파일:울리카 엘레오노라_1658.jpg
<colcolor=#000> 어린 시절
1675년,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스웨덴의 국왕 칼 11세와 약혼했다. 오빠 크리스티안 5세는 이 혼담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딸이 왕비가 되는 것이 좋았던 어머니 조피 아말리의 의견으로 약혼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1675년에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에서 스코네 전쟁이 발발하였고, 크리스티안 5세는 혼담을 취소했다. 이후 레오폴트 1세를 포함한 몇몇 혼담이 들어왔지만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자신이 이미 칼 11세와 약혼했다고 생각하여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전쟁 중에도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스웨덴의 포로들에게 친절함을 베풀었으며 덴마크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2.2. 왕비

1679년 덴마크스웨덴 사이에 평화 협상이 체결되면서 울리케 엘레오노레와 칼 11세의 결혼도 재성사됐다. 1680년 5월 6일 스웨덴의 스코토르프 성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고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7명의 자녀들이 태어났지만 그 중 헤드비그 소피아, 칼 12세, 울리카 엘레오노라만 성인으로 살아남았다.
파일:lossy-page1-1280px-Familjeporträtt,_Karl_XI,_Ehrenstrahl,_1690-tal_-_Livrustkammaren_-_89010.tif.jpg
<colcolor=#000> 가족 초상화
고작 4살 때 국왕으로 즉위한 남편 칼 11세는 어머니 홀슈타인고토르프의 헤트비히 엘레오노라에게 깊이 의지하였기 때문에 울리케 엘레오노레의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2] 칼 11세는 울리케 엘레오노레를 "나의 아내"라고 불렀고, 어머니를 "왕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으로 울리카 엘레오노레는 항상 시어머니의 그늘 아래 있었으며, 그녀를 "내 결혼 생활의 악마"라고 칭했을 정도로 고부관계도 좋지 않았다.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지속적으로 활발한 자선 활동을 이어갔다. 자신의 수입의 7/8을 자선 기금으로 사용하였는데, 고아 소녀들이 태피스트리 제작을 배울 수 있도록 칼베리 궁전에 학교를 세운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또 과부들을 위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었으며, 그들의 의료 비용도 부담했다.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스웨덴 전역의 많은 빈곤한 사람들을 지원하였으며 그녀가 사망한 해에는 무려 17,000명의 국민들이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스웨덴 국민들은 신앙심이 깊고 온화하며, 활발한 자선 활동을 하는 왕비를 매우 좋아했다.

2.3. 사망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울리케 엘레오노레의 건강은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3] 1688년 막내 울리카 엘레오노라를 출산한 후에는 공식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친정 덴마크 여행도 취소했다. 1690년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의사들은 온천 여행을 권유했으나 그녀는 여행을 가지 않고 그 돈을 자선 활동을 하는데 사용했다.

결국 울리케 엘레오노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1693년 7월 26일 칼베리 궁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전 아이들에게 절대 거만하게 굴지 말고, 높은 지위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수단으로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장례식을 간소화하고 장례식을 위해 마련된 기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울리케 엘레오노레 왕비의 죽음에 온 국민은 큰 슬픔에 잠겼다. 칼 11세는 아내의 바람과는 달리 간소한 장례식은 열지 않았지만 대신 같은 금액을 빈곤한 사람들에게 기부했다. 칼 11세는 재혼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4년 뒤 사망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덴마크의 울리케 엘레오노레
(Ulrika Eleonora of Denmark)
<colbgcolor=#fff3e4,#331c00> 프레데리크 3세
(Frederick III)
<colbgcolor=#ffffe4,#323300> 크리스티안 4세
(Christian IV)
프레데리크 2세
(Frederick II)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조피[4]
(Sophie of Mecklenburg-Schwerin)
브란덴부르크의 아나 카타리나
(Anne Catherine of Brandenburg)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프리드리히
(Joachim Frederick, Elector of Brandenburg)
브란덴부르크퀴스트린의 카타리나
(Catherine of Brandenburg-Küstrin)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
(Sophie Amalie of Brunswick-Lüneburg)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게오르크
(George, Duke of Brunswick-Lüneburg)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빌헬름
(William, Duke of Brunswick-Lüneburg)
덴마크의 도로테아[5]
(Dorothea of Denmark)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나 엘레오노레
(Anne Eleonore of Hesse-Darmstadt)
헤센다름슈타트 방백 루트비히 5세
(Louis V, Landgrave of Hesse-Darmstadt)
브란덴부르크의 막달레나
(Magdalene of Brandenburg)

3.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부인 헤트비히 조피아
(Hedvig Sophia, Duchess of Holstein-Gottorp)
1681년 6월 26일 1708년 12월 22일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프리드리히 4세
슬하 1남
1남 칼 12세
(Charles XII)
1682년 6월 17일 1718년 11월 30일
2녀 울리카 엘레오노라
(Ulrika Eleonora)
1688년 1월 23일 1741년 11월 24일 프레드리크 1세


[1] 아우구스트 2세의 어머니[2]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에 대한 신뢰가 생겼는지, 아들이 미성년자로 즉위할 경우 울리케 엘레오노레를 섭정으로 임명하도록 했다.[3] 무려 8년 동안 7명을 낳았다.[4] 프레데리크 1세의 외손녀다.[5] 크리스티안 3세의 차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