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1884~1910)
1.1. 우표 수집시 유의점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의 우표는 공식적으로 3회 복제된 사례가 있다. 게다가 복제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므로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1905년 복제
일본이 한국의 체신사업 업무를 강제 접수 할 목적으로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합동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증정용 기념우표첩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첩부할 목적으로 이화 우표와 어극40년 기념우표를 복제하였다. 재질과 인쇄가 원본과 동일해서 가장 구분하기 힘들다. 아이러니한 것은, 복제품이지만 원본 우표를 만들던 곳에서 그대로 생산하는 바람에 재쇄라고 볼 정도로 정교한데다가, 증정용 기념우표첩은 증정용이라는 말 뜻처럼 판매용이 아니라 당시 일본의 높으신 분에게 증정할 목적으로 소량 인쇄한 물건인지라 수량이 적다. 그래서 거래 가격이 비싼 편이며, 심지어 어극 40년 복제품은 원본보다 가격이 훨씬 높다.
- 1957년 복제
1957년 12월 4일. 체신부에서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의 모든 우표를 복제인쇄한 후, 해당우표를 "구한국우표첩"이라는 이름의 우표모음집으로 만들어서 4,000부를 발행하고 우체국 창구를 통해 5,000환에 판매한 적이 있다. 문제는 우표첩에 붙이고 남은 우표와 전지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점이다. 구분방법은 용지는 당시의 우표용지인 지그재그 투문지이며 천공은 13개인 것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좀 허접하게 보인다.
- 1984년 복제
1984년 우정 100년과 PHILAKOREA`84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우정100년기념 우표첩"에 첩부하기 위해 역시 조선과 대한제국 시대의 모든 우표를 복제인쇄해서 넣었다. 구분방법은 용지는 아트지이며, 천공이 먹으로 인쇄되었다는 점이다. 더 허접하게 보인다.
1.2. 문위우표
문위우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1884년 11월 18일 발행. 그러나 갑신정변으로 발행 2주만에 사용 중지된다. 게다가 고액면인 25, 50, 100문 우표는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미발행 상태로 독일 우표상에게 헐값에 팔리게 된다. 현재는 저액인 5, 10문우표가 가장 비싸며, 실제로 사용된 우표는 고작 17장밖에 발견되지 못하여 거의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이 우표는 인쇄기술의 미비로 여러 천공버전이 존재한다... 즉 우표의 톱니모양을 이루는 2cm당 천공 개수가 제각기 모두 다르다는 것. 이 수집에 도전하는 수집가도 꽤 존재한다. 90년대 KBS-1에서 하던 방송에서 이 우표를 수집한 조상 덕에 보유한 사람이 가져와 값을 감정받았는데 당시에는 값이 더 엄청난 1000만원대[1]를 감정받아 의뢰인이 놀란 얼굴을 하던게 나왔다.
이 우표는 일본 대장성인쇄국에서 제작되었다.
1.3. 태극우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나온 우표. 1895년 을미개혁으로 우편사업이 재개될 때 나온 우표라서 의미가 깊다. 사실상 본격적으로 사용된 우리나라의 최초 우표.
이 우표는 여러 변종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그 변종 중에 일부분은 이른바 전위첨쇄(錢位添刷)라고 불리는데, 말 그대로 전(錢) 단위로 화폐를 개혁하면서 미처 새로운 우표를 제작하지 못하고 기존에 남아 있는 태극우표에다가 덧인쇄해서 화폐 단위와 액면을 고쳐서 다시 쓴 것을 말한다. 대충 이런 것.
아래 사진은 전위첨쇄 제1판.
아래 사진은 전위첨쇄 제2판.
잘 보다시피 위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의 우표에 덧인쇄된 글자체가 각기 다르다. 현재 수집가들은 각고의 노력 결과, 대략 네 가지의 판본이 있는 것으로 밝혀낸 바 있다. 이 덧인쇄된 전위첨쇄 우표의 발행 시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기록이 남지 않아 이 우표의 정확한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우표수집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게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새로 출범하면서 우표의 국호도 대한제국으로 덧고친 우표도 있다. 대충 이런 거.
잘 보면 국호가 검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따라서 흑색가쇄(黑色加刷) 우표라고 칭한다. 당연히 붉은 색 잉크로 덧인쇄한 주색가쇄 버전도 존재한다. 여기서 첨쇄와 가쇄의 용어 차이 설명이 필요한데, 첨쇄는 말 그대로 액면단위나 액면가만 고친 것이고, 가쇄는 발행주체를 고친 것이다. 즉, 광무개혁으로 인해 조선국이라는 전근대적 군주국가에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가 국가원수인 절대군주국으로 국체(國體)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쇄라는 용어가 적합하게 된다. 이외에도 우표의 액면을 1로 살짝 고친 일자첨쇄(一字添刷)라는 변종도 있다. 위 태극우표를 통한 변종은 원래 우표와 합하여 모두 14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희귀한 우표는 가쇄되지 않는 태극우표 5푼에 적색으로 1자첨쇄만 되어 있는건데 상태에 따라 5백만원을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처음에는 이 일자첨쇄 변종에 대해 말들이 많았으나, (우표 수집하는 외국인이 취미삼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관보에 일자첨쇄 우표가 붙은 실체들이 여럿 발견되면서 진위 논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졌다. 다만 위조품이 많아 구입시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전국적인 우편 네트워크가 거의 완성되어 가던 시점에서 사용된 최초의 우표이므로, 함경도 경흥(慶興)과 같은 인적이 드문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우표는 미사용 우표의 수천 배에 달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물론 소인의 상태가 좋아야 하고, 봉투까지 함께 보존되면 더욱 금상첨화. 아래 사진의 봉투는 경흥우체사 소인이 찍혀서 1억 넘게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우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자세한 경위는 다음 기사에서 참조바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0911181647391&code=116
참고로 이 우표는 미국에서 인쇄되었다.
1.4. 이화 우표
이 우표는 1900년에 발행되었는데, 인쇄 쇄색과 액면의 다양화를 시도한 최초의 우표로 평가된다. 물론 가격도 비싸다. 위 사진의 14종 풀세트는 뒤에 힌지(경첩을 뜻하는 그 hinge맞다. 우표를 앨범에 붙이는 얇은 유산지) 자국이 있는 것은 대략 250만원에서 300만원정도 하며, 뒷면까지 풀이 남아 있으면서 깨끗한 상태는 400~500만원 정도 간다.[2] 특히 우하단 모서리에 있는 고액권 50전, 1원, 2원이 매우 구하기 힘들며 이 3종의 가격이 나머지 우표 11종을 모두 합친 가격의 3배 이상 나간다. 나머지 저액은 그나마 구하기 쉬운 편이다. 이화보통우표는 도안이 섬세하고 인쇄 선명도도 높아 훌륭한 우표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쇄된 최초의 우표다.
1.5. 독수리 우표
1903년 발행. 앞서 발행된 이화 우표의 다양성 컨셉을 물려받고 프랑스인 고문 끌레망세(한국명 吉孟世)를 영입하여 본격적으로 외국 수집가를 노리고 발행된 최초의 우표.
외관을 보면 잘 알겠지만, 우표의 천공 모양이라든지 뒷마무리 상태가 매우 깔끔하다. 프랑스에서 인쇄되었으며, 현재 우표 인쇄공정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한번의 암초에 부딪친 후 우리나라의 우편사업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것으로 알수 있으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의 체결과 함께 한국 우편도 일본에 강제 접수당하고 한국 우표도 몇 년의 유예기간을 거쳐(1909년 8월까지는 사용이 허가되었다. 그래서 당시 실체봉투를 보면 일본우표와 함께 사용한 것들이 존재한다) 사용금지를 당하고 만다.
2. 광복후 미군정시대, 남조선 과도정부, 6.25 전쟁 이전
2.1. 미군정청 가쇄우표
일제시대 당시 통용되던 일본 우표에 국호와 액면을 가쇄하여 임시로 사용된 우표. 우표 상단의 한자는 대일본제국우편([ruby(大日本帝国郵便,ruby=ダイニホンテイコクユウビン)])이다. 따라서 조선의 우표로 간주된다. 위 우표는 비교적 흔하게 보여 위 사진의 풀세트를 구하는 데 15,000원~25,000원 정도면 가능하다. 그러나 아래 미발행 우표는 300만원~350만원을 줘야 구입 가능하다.
2.1.1. 미군정청 가쇄 미발행 우표
수백만원.
2.2. 해방조선 기념우표
광복 1년 후인 1946년에 발행된 우표다. 이 우표는 비교적 많이 발행되고 보존량도 많아 모든 6종 세트를 구하는 데 1만~1만5천원정도면 가능하다. 여담이지만 이 우표가 발행되었을 때 한국사회는 미군정청의 미숙한 통치 하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진행중이었다(총독부가 도피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자폐를 찍어낸 것도 컸다). 그래서 집을 도배하려는데, 도배지는 비싼데 이 우표 전지가 더 저렴하여 이걸 사서 방을 도배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3]
2.3. 대한민국 1차보통우표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되고 발행된 우표다. 종류는 다양한 편이나 오히려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인지 앞서 언급한 독수리 우표보다 더 후줄그레해 보인다. 그러나 이 우표 시리즈는 직후 발생한 6.25전쟁 때문에 여러 가지 변종을 양산하게 된다. 특히 북한군이 남한지역을 점령했을 때 이 우표를 바탕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명을 가쇄하여 자기네 우편에 사용하려고 한 시도가 있었다. 대충 이런 거.
2.3.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색가쇄우표
과거에는 이 우표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으나, 남북화해와 인터넷으로 외국 판매자의 우표를 쉽게 구매하면서부터 국내에도 상당량 들어오게 되었다. 위 우표 사진의 4종 세트는 15~18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어서 전쟁통에 나온 우표 치고 크게 귀한 우표는 아니다.
이 우표가 국내 우표수집가들에게 잘 알려지기 시작한 90년대만 해도 우편에 실제로 사용되었는지 불분명하였다. 그러나 남한지역의 북한점령기간이 3개월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기도 가평에서 북한 지역으로 체송된 봉투가 발견되었다. http://blog.daum.net/allinstamps/1200
2.3.2. 담청색 첨성대 우표
이 우표는 군청색 첨성대 우표의 변종이다. 군청색 우표보다 약 300배정도 비싸다. 22~25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전쟁통에 이 우표에다가 300원을 첨쇄한 '대(臺)우표 담청색'이라고 불리는 우표가 있는데 300만원을 호가한다. 비싼 이유는 애초부터 태생이 다르다. 담청색 첨성대는 최초 조선서적주식회사에서 인쇄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소량 인쇄된 이후 대부분의 첨성대우표를 고려문화사에서 인쇄하였는데 당연히 색상이 같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잉크의 원 컬러가 달라 처음 인쇄된 고려문화사의 첨성대만 독특한 컬러를 지니게 되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희소성이 작용되어 첨성대담청 이라는 귀족우표가 탄생하였다. 소위 반담청이라고 불리는 군청색과 담청색의 중간 정도의 색도로 남아있는 우표도 있으나, 가치는 군청색과 동일하다. 애초에 담청색이 너무 비싸다보니 빈 자리를 채우고 싶은 어린 학생들의 주머니를 털 목적으로 반담청, 준담청 이라는 억지스러운 용어를 만들었다고 봐야한다. 당시 인쇄술은 지금과 다르게 매우 조잡하여 인쇄할때마다 컬러가 미세하게 다른편이다. 이걸 쇄색에 따른 버라이어티(에러 와는 다른개념)라 하는데 그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군청색보다 조금 밝은 색깔의 첨성대우표를 반담청이라고 주장하는거라 이해하면 된다. 이외에도 군청색 첨성대우표에는 도안의 북두칠성에서 별이 하나가 누락된 육두칠성 변종도 존재한다. 가치는 1~2만원대로 비교적 흔한 에러품이다.
[1] 참고로 90년대(IMF 이전 기준) 신차였던 티코 풀옵션이 400만원쯤 했었다.[2] 옛날의 수집가들은 보관의 편의를 위해 뒷풀을 일부러 물에 녹여 빼기도 하였다. 이 때에는 힌지자국이 묻은 것 보다 더 저렴하게 거래된다. 힌지자국이 없으면서 뒷풀까지 남아 있는 상태와 가격차이는 넘사벽으로 벌어진다[3] 반면 기념시쇄(Proof) 6종은 2018 도감가 기준 2억8천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