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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티나트라벰 Ústí nad Labem | |
<colbgcolor=#e80000><colcolor=#fff> 행정 | |
국가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
지역 | 우스티주 |
시간대 | UTC+1 |
인문지리 | |
면적 | 93.97 km2 |
인구 | 91,342(2024년) |
[clearfix]
1. 개요
체코의 도시. 우스티주의 주도. 주요 산업중심지이며 철도교역의 중심지이다.2. 지리
우스티나트라벰은 옛 체코어로 강 하구와 엘베 강에서 유래되었으며, 문자 그래도 엘베의 입을 의미한다. 그 이름 그대로 엘베강과 빌리나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중앙 보헤미안 구릉지에 위치해 있으며, 북서쪽에는 분지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우스티나트라벰은 시 절반을 차지하는 인공 호수 밀라다 호가 있으며 목욕, 수영,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조깅, 승마 등 레크레이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3. 역사
원래 이 일대는 보헤미아인들이 살았지만, 13세기 후반 보헤미아 왕국의 오타카르 2세가 인구를 늘리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독일 정착민을 우스티나트라벰에 정착시켰다. 우스티나트라벰은 독일인들에 의해 발전되었으나 후스 전쟁, 30년 전쟁, 7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면서 도시의 발전은 억제화 되고 주민들은 하나 둘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시기 오스트리아 제국은 우스티나트라벰의 위치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 곳에 양모, 인넨, 종이, 선박, 화학 공장을 세웠고, 곡물, 과일, 미네랄 워터, 목재, 석탄 무역의 요충지가 되었다. 이 시기 우스티나트라벰의 항구는 트리에스테 항구보다 더 번성하였고, 인구는 1830년 후반 1400여명에서 1900년에는 40,000여명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 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1차대전시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패하였고, 우스티나트라벰은 신생 독립국인 체코 슬로바키아 공화국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일계는 독일 편입 운동을 벌였고, 결국 1938년 뮌헨 협정으로 우스티나트라벰은 독일령 주데텐란트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하고 우스티나트라벰의 독일계 주민은 강제로 쫓겨났다.[1] 이 이후 우스티나트라벰의 대부분 인구는 체코인으로 채워졌으며, 현재 우스티나트라벰은 체코의 주요한 산업도시로 체코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4. 여담
- 1990년 후반 우스티나트라벰의 시장인 라디슬라프 흐루슈카는 마티치니 거리를 중심으로 장벽을 건설해서 집시와 체코인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라디슬라프 흐루슈카는 이 장벽은 집시들이 내는 소음과 쓰레기로부터 양식있는 시민을 지키기 위함임을 어필하며, 체코 당국의 반대에도 장벽 건설을 강행하였다. 결국 1999년 10월 13일 장벽은 완성되었지만 국내외의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6주 만에 철거되었다.
[1] 1945년 7월 31일 탄약고가 폭발하자 체코슬로바키아 사람은 이 폭발이 독일계 주민 탓이라며, 이를 명분으로 독일계 시민 추방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