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시기인 기원전 170~169년, 로마군과 마케도니아군이 일리리아의 우스카나를 둘러싸고 벌인 공방전.2. 상세
기원전 170년, 지난해 집정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마케도니아 국왕 페르세우스를 상대로 칼리니코스 전투에서 패하는 등 변변치 않은 결과를 거두자, 당해 집정관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가 그를 대신하기 위해 발칸 반도로 건너가서 크라수스의 임페리움을 회수했다. 그는 에페이로스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들어가는 산길로 행군하기로 했다. 이때 마케도니아와 내통하고 있던 에페이로스 연맹이 페르세우스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들이 안내해줄 테니 만키누스를 기습 공격하라고 조언했다. 페르세우스는 이에 따라 군대를 일으켰지만 행군이 지체되었고, 그 사이에 적의 음모를 눈치챈 만키누스는 보이오티아의 코른트 만 북쪽 해안에 위치한 안티키라로 방향을 돌렸다.이후 테살리아로 행진한 뒤 마케도니아군과 교전하려 했는데, 이에 관한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의 설명이 소실되었고 다른 역사가들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대를 정비한 뒤 마케도니아 남서부의 엘리메아를 통과한 뒤 비밀리에 테살리아를 통과하려 했지만, 페르세우스가 사전에 길목을 차단해버리자 어쩔 수 없이 숙영지로 철수했다. 이후 주민들을 약탈하는 군단병들을 처단하는 등 군기를 다잡는 한편, 사방에 사절을 보내 로마와의 동맹을 계속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상황은 로마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로마군이 마케도니아군을 상대로 고전하는 것을 본 에페이로스 연맹은 대놓고 로마에 반기를 들고 마케도니아 편을 들었고, 아이톨리아 동맹, 아카이아 동맹 등 그리스 도시국가들도 겉으로는 로마와의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병력 및 물자 지원을 차일피일 미뤘고, 많은 그리스인들은 마케도니아군에 가담해 로마에 맞섰다. 여기에 일리리아 왕국의 국왕 겐티오스가 로마와의 관계를 끊고 페르세우스 편에 설려는 조짐을 보였다. 페르세우스는 겐티오스를 확실히 끌어들이기 위해 일리리아 북쪽의 다르다니아인들을 공격하여 10,000명을 주살했다.
원로원은 마케도니아의 공세로부터 일리리아를 지키기 위해 2,000명의 군인을 태운 8척의 수송선을 이사 섬으로 보냈고, 만키누스 역시 법무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에게 4,000명의 병력을 맡겨서 일리리아로 파견했다. 아피우스는 진군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동맹군을 끌어들여 8천 명을 모은 뒤 에페이로스 부족인 다사레티아족의 영토에 있는 리크니도스에 진입했다. 그러던 중 일리리아 부족인 페네스타이인들이 자신들의 근거지인 우스카나를 넘겨주겠으니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야밤에 1,000명의 병사에게 숙영지를 지키게 한 뒤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우스카나로 향했지만, 페네스타이인들로부터 인질을 받아내서 그들이 약속을 지키도록 보증하게 하지도 않았고, 정찰병도 보내지 않았다. 게다가 행렬은 길고 불규칙하게 늘어졌으며, 어둠 속에서 행진하다보니 낙오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우스카나에 도착했을 때, 수비대가 곧바로 출격해 많은 로마인을 살육했다. 클라우디우스는 병사들을 수습할 생각도 않고 리크니도스로 도주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를 따라 무사히 숙영지에 도착한 이는 1,000명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169년, 페르세우스는 스투베라에서 10,000명의 보병, 경보병 2,000명, 기병 500명을 데리고 우스카나로 행진했다. 뒤이어 일리리아 부족 페네스타이의 거점인 우스카나로 진군했다. 우스카나에 주둔한 수비대는 끝까지 저항하려 했지만, 마케도니아군이 포위하면서 식량이 바닥나자 소유물을 가지고 우스카나를 떠날 수 있는 조건하에 항복하겠다고 제안했다. 페르세우스는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수비대가 항복하자 소유물을 압수하고 수비대를 구금했으며, 우스카나 시 주민들을 스투베라로 끌고가서 노예로 팔았으며, 크레타인 수비대를 우스카나에 주둔시켰다.
그 후 페르세우스는 드라우다쿰으로 진군해 수비대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뒤이어 11개의 요새를 점령하고 1,500명의 로마인을 생포했다. 그러면서 겐티오스에게 사절을 보내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지만, 겐티오스가 돈이 부족해서 군대를 일으킬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돈을 보내달라고 하자 일단 본국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일리리아의 로마 총독 루키우스 코엘리우스는 페르세우스가 일리리아에서 활동하는 동안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해안 지대의 요새화된 도시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페르세우스가 돌아가자 우스카나를 탈환하려 했지만 격퇴되어 본거지로 돌아간 뒤 로마에 충성을 유지한 도시들과 파르티니족으로부터 인질을 받기 위해 분견대를 파견했다. 한편 페르세우스는 에페이로스인과 손잡고 아이톨리아 동맹의 북쪽 경계에 위치한 요새인 스트라토스를 공격했지만 공략에 애를 먹다가 겨울이 가까워지자 아페란티아로 철수했다.
얼마 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우스카나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에페이로스의 어느 요새를 포위 공격했다.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파견한 마케도니아 분견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사람이 산길을 통해 후퇴하다가 1,200명을 상실했다. 마케도니아 분견대는 그를 추격하면서 진군로 주변을 약탈했다. 잇따른 실패에 좌절한 클라우디우스는 군대를 해안 요새에 주둔시킨 뒤 로마로 돌아갔다. 이후 기원전 169년 집정관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가 만키누스로부터 지휘권을 인계받은 뒤 마케도니아로의 원정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