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9 10:50:10

우련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이름 우련(祐連)
골품 5두품 혹은 4두품[1]
생년 9세기[2]
몰년 889년, 신라 사벌주

1. 개요

통일신라 말기의 인물. 신라 사벌주의 촌주(村主)다.

2. 생애

889년 사벌주[3]에서 원종·애노의 난이 발발하자, 신라는 나마 영기를 보내 반란군을 진압하게 했다.

그러나 영기는 반란군의 본진을 보고 두려워해 진격하지 않았고, 촌주 우련이 나서 반란군과 교전하다가 전사했다. 진성여왕은 나마 영기를 참하고 10여세에 불과한 우련의 어린 아들을 촌주로 임명했다.

3. 기타

비슷한 시기 상주에서 활동한 아자개가 독자세력으로 활동한 것과 달리, 우련은 원종과 애노의 반란군과 전투에 나섰다가 사망한 점으로 볼 때 친신라 성향의 호족이었던걸로 추정된다.
[1] 삼국사기 옥사조에 의하면 진촌주는 5두품(五頭品)과 같고, 차촌주 4두품과 같다고 한다.[2] 사망 당시 10여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련의 생년은 늦게잡아도 860년 이전이다.[3] 오늘날 경상북도 상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