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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Scotus Eriugena (815 ~ 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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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콜라 철학의 시조로, 현 아일랜드 출신. 중세 초기의 철학자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로, 고전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동방의 기독교 신학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콜라 철학의 체계를 확립했다.참고로 '에리우게나'는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2. 생애
그리스 학문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던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수학했다. 덕분에, 에리우게나는 그당시 서유럽에 흔치 않은 그리스어 능력자였다.851년 아일랜드를 떠나 프랑스의 샤를 2세의 궁정으로 들어가 궁정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함으로서 알퀸의 뒤를 이어 카롤링거 르네상스 최후의 불꽃을 피워냈다.[1] 그곳에서 그는 주로 아우구스티누스와 보에티우스에 대한 연구와 주석 작업을 했다. 또한 빼어난 그리스어 실력을 이용해서 위 디오니시우스와, 기타 플라톤주의 성향을 띄는 바실레이오스 등 카파도키아 교부[2]들의 신학 저술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후 자신의 기존 신학지식과 번역 작업을 통해서 새롭게 얻게 된 통찰력을 집대성해, 중세의 첫번째 형이상학적 종합이라 할 만한 대작 《자연구분론 De Divisione Naturae, (864)》을 내놓았다. 이 저작에서 그는 위 디오니시우스가 전한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기독교사상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을 재해석하려 했다. 이 책은 범신론이라는 혐의를 받았고, 1225년 1월 25일 교황 호노리오 3세는 이 책을 기소하고 소각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의 중세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강력한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플라톤 본인의 저서가 원전번역이 이루어진 것은 15세기 르네상스 시기는 가서야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
그의 인생 후반부는 불분명하다. 882년에 그는 알프레드 대왕에 의해 옥스포드에 초대되어 그곳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하다가 맬름즈베리에서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이후 제자들이 필기도구로 그를 찔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3. 사상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와 현실로 나누었고, 신플라톤주의는 그 둘 사이에 여러 단계를 두었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이 신이고, 그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이 진리와 이성과 영혼이 되고, 이후 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신에게서 멀어져서 점점 더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되고 이는 천한 것으로 여겨진다. 에리우게나는 이러한 신플라톤주의를 바탕으로 만물의 모든 것을 지칭하는 '자연'을 설명함으로써, 하나님과 자연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한다.《자연구분론》에서 에리우게나는 창세기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구원의 역사를 실마리로 삼아,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자연'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구분해서 설명하였다. 1) '창조할 뿐 창조되지 않는 자연'은 하느님을 말한다. 이로부터 2) '창조되며 창조하는 자연'이 도출된다. 그것은 시원적인 원리, 선, 진리, 영원 등의 이념을 말한다. 다시 여기서 3) '창조되나 창조하지 못하는 자연'인 인간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 세계는 인간의 인식을 통해 구성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타락'하면서 상처를 입는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다. 4)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이란 하느님으로의 귀환,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간이 '구원'되며 자연 안에서 신의 영원한 완성에 도달하게 되는 단계이다. 이로써 신의 목적은 '완성'된다.
그리고 에리우게나는 그 시대 통용되었던 운명예정설을 비판한다. 운명예정설은 인간의 죄까지도 모두 하느님이 예정한 것이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에리우게나는 인간의 구원은 예정되어 있지만 죄는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느님은 죄인의 죽음을 원치않으시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원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미리 죄를 예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죄를 저지르고 타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며, 하느님은 그러한 인간의 타락을 '구원'하고자 하는 절대자인 것이다.
또한 에리우게나는 '자유'로운 생각을 지닌 인간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헤아리기 힘든 초월자 하느님에 대해서도 그 인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이 창조되는 원리 속에 신의 속성이 많거나 적거나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간 속 신의 속성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근원이자 창조주인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역으로 창조주인 하느님을 인식할수록 자신 속의 신의 속성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되므로,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근원인 하느님을 이성으로 알고자 노력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구원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4. 어록
그리스도는 성경과 자연이라는 세상에서 "두 개의 신발"을 신고 계십니다. 둘 다 주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며, 어떤 단계에서도 창조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하느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모릅니다. 문자 그대로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존재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은 모두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감각적인 것의 형태와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아라. 그리하면 진리가 이 모든 일에서 오직 그것을 만드신 자에게만 나타내실 것입니다.
참된 이성으로 확인되지 않는 권위는 약해 보입니다. 진정한 이성은 권위에 의해 확인될 필요가 없습니다.
권위는 참된 이성에서 나오지만 이성은 권위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이성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 모든 권위는 약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진정한 이성은 자신의 힘에 의해 확고하고 불변하게 유지되며 권위자의 동의에 의해 확인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움직임의 끝은 시작입니다. 그것은 그 안에서 멈추고 안식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항상 되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 자신의 시작을 제외하고는 다른 끝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이후로는 카롤루스 왕조가 혈연들 간 내분과 분할상속으로 약해지기 때문에 카롤링거 르네상스도 한동안 쇠퇴했다.[2] 초기에는 니케아 신조의 삼위일체 주장에 반대했으나 결국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니케아 신조에 찬동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신학적으로 반(半)아리우스주의와 삼위일체파의 주장을 통섭하려고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