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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혁/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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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연도별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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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궁 선수 오진혁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연도별 경력

2.1. 1998년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2.2. 1999년 리옹 세계선수권 대회

파일:990526 오진혁 태극마크.png
국가대표 오진혁[1]을 최초로 언급한 기사 링크
고등학생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세계선수권 출전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홍성칠, 김보람, 장용호와 함께 리옹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였다.[2]
* 랭킹 라운드
163명이 참여하는 랭킹 라운드에서 홍성칠은 1312점으로 2위, 김보람은 1307점으로 3위, 장용호는 1293점으로 4위를 기록하였고, 오진혁은 1216점으로 74위를 기록해 64명까지 출전하는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내 4위의 성적이었기 때문에 단체전에서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단체전은 대한민국 은메달,[3] 개인전은 홍성칠이 우승하였다.

2.3. 2000년~2008년

하지만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고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서 복무했지만 슬럼프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졌다.

2.4.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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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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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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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참고로 개인전 결승전에서 한일전이 성사되었는데, 후루카와 다카하루를 7:1으로 완파하고 우승했다. 이는 한국 양궁 사상 최초의 남자 개인전 금메달이다. 하지만 단체전에서는 아쉽게 미국에게 4강에서 패배하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8.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고,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통령기양궁에서 단거리(30m) 에서 36발 모두 10점을 기록하며 360점 만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존 세계신기록 경신에는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만점일 경우 X-10의 개수로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 세계기록은 360점 만점 + X-10 23개였지만, 이 경기에서는 21개를 기록했다.

2.9.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2.10.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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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23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1] 양궁 선수로서 오진혁 자체를 최초로 언급한 기사는 1998년 7월 27일 한겨레 기사조선일보 기사다.[2] 이때 별명은 소년 신궁이었는데, 2020 도쿄 올림픽 때의 김제덕의 이미지와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 오진혁 본인은 당시 고등학생이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 때의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자만하게 만들어 독이 되었다고 말했다.[3] 금메달은 이탈리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은 월드아처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2001년 8월 1일)의 세계랭킹 1위이자 200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미첼 프란길리가 있었다. 프란길리는 애틀랜타에서 단체전 동메달을, 시드니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후 런던 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46살인 2022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파리 3차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파울리노 두스산투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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