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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5 16:01:00

오재원(1923)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1923년 3월 8일에 태어났다.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김일성의 타도제국주의동맹 활동을 도와준 집안 출신이라고 하는데 타도제국주의동맹 경력은 구라이므로 그냥 김일성을 도와준 집안 출신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1937년 5월, 항일 빨치산 부대에 입대, 김일성 경위대원으로 활동했으며 소부대 정치공작원이 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덕천지구에 파견되어 사업했으며 조선인민군 창건에 참여했다. 6.25 전쟁에 참여했으며 전후 사단장, 부군단장 등을 지냈고 1961년에는 군사정전위원회 위원으로도 잠시 배치되었다. 1966년 집단군 정치위원에 임명,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76년 9월, 7군단장에 임명되었다가 중앙위원회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2월, 지병학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7년 6월, 자강도 인민위원장 등으로 사업하였다.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1979년 10월, 자강도 인민위원장에서 리오송의 후임으로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으로 이동하여 죽을 때까지 재임하였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 1986년 4월, 김좌혁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7년 8월, 박영순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7년 6월, 반핵투사 로병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였으며 로병위원회 대표단장으로 알제리를 다녀왔다. 1987년 10월 7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만경대혁명학원 창립 40주년 기념 로력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1급, 마치와 낫 금메달을 받았다.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8년 11월 30일, 7시에 6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최종계급은 상장이다.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전후 무력기관의 중요한 직책에서와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군사로선을 관철하여 인민군대를 강화하며 혁명가유자녀들을 우리 혁명의 믿음직한 골간으로 키우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투쟁하였다. 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이후 시신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반신상이 제작되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