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소설 《녹정기》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오응웅(녹정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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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 추존 황제 오응웅 | 吳應熊 | |
<colbgcolor=#000000> 묘호 | 없음 |
시호 | 효공황제(孝恭皇帝) |
성 | 오(吳) |
휘 | 응웅(應熊) |
부황 | 태조(太祖) |
정실 | 화석건녕공주 |
생몰 | 1634년 ~ 1674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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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吳應熊중국 청나라 초기의 인물. 삼번의 난을 일으킨 오삼계의 서자이자 오세번의 아버지다.
2. 생애
아버지 오삼계가 1644년 평서왕에 책봉되자 세자가 되었으며, 효장문황후의 도움으로 숭덕제의 막내딸 화석건녕공주와 결혼해 황제의 부마가 되었다. 부마가 된 것은 영광이라 볼 수 있겠으나 사실은 청 조정이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오응웅의 아버지 오삼계를 견제하기 위한 인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인질이긴 했으나 나름 부마이고 고위 관직에 있었기에 청 신료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1673년 아버지가 결국엔 반란을 일으키자 아들 오세림(吳世霖)[1]과 처형(교수형)당했으며 사후 1678년 아들 오세번이 오삼계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오응웅은 효공황제로 추존되었다. 그의 나머지 아들들도 반란이 끝난 1681년에 처형되었다.
3. 대중매체
[1] 오세번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