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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이지족 연쇄살인 사건 Osage Indian murders | ||
1929년 1월 6일 오클라호마주 지역 신문 The Daily Oklahoman의 보도. | ||
<colcolor=#fff><colbgcolor=#000000> 발생일 | 1918년 ~ 1931년 사고일로부터 [dday(1931-12-29)]일, [age(1931-12-29)]주기 | |
발생 위치 |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세이지군 (북위 36.63° 서경 96.40°) | |
유형 | 연쇄살인(총기난사·중독·폭탄 테러), 테러리즘 | |
주동세력 | 윌리엄 킹 헤일 어니스트 버크하트 존 램지 켈시 모리슨 | |
피해부족 | 총 1개부족 오세이지 부족 Ni Okašką | |
피해 | <colcolor=#fff><colbgcolor=#000000> 재산피해 | 페어팩스 주택이 폭파됨 |
사망자 | 총합 60여 명 이상 | |
부상 | 경상 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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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쇄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몰리 버크하트와 남편 어니스트 버크하트 |
광란의 20년대와 대공황 시대인 1918년에서 1931년 사이 텍사스 주 출신 미국 백인 윌리엄 킹 헤일과 헤일을 따르는 백인 세력이 60명 이상의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 부족 사람들을 총기난사, 중독, 폭탄 테러 등의 방법으로 연쇄살인한 사건.
2. 배경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오세이지(Ni Okašką)는 원래 기원전 700년 이후 현재 오하이오 주와 미시시피 주 강 주변에 다른 원주민 부족들과 거주하고 있었으며, 17세기 당시 이로쿼이 연맹이 오하이오 주 강쪽에 정착하자 미주리 강과 미시시피 강으로 이주했다.부족명 오세이지는 프랑스인들이 지은 이름인데 "평온한 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만 오세이지 부족민들은 자신들을 수어족 언어로 "𐓏𐒰𐓓𐒰𐓓𐒷 (Wazhazhe)"라고 부르며, 이 이름은 중층수(中層水)를 의미한다.
19세기 초 오세이지족은 현재 캔자스주인 지역에서 강력한 부족으로 성장했지만, 미국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대부분의 부족민들이 오클라호마주에서 살게 되었다. 오세이지족은 1870년대 초 오클라호마주 북동 지역(현 오세이지군)을 돈으로 샀고, 1897년 오세이지군 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20세기 초 시점 오세이지족은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텍사스 주 출신 미국 백인 윌리엄 킹 헤일과 헤일을 따르는 백인 세력이 이를 가만히 보지 않았는데...
3. 전개
1917년 오세이지 부족민 몰리 버크하트가 미국 백인 윌리엄 킹 헤일의 조카 어니스트 버크하트와 결혼했다.1918년 몰리 버크하트의 자매 미니 버크하트가 독에 중독되어서 사망했다.
1921년 5월 14일 오세이지 부족민 애나 브라운의 사촌 찰스 와이트혼이 실종되었다. 이후 총기에 맞은 시체가 오세이지군의 도시 포허스카에서 발견되었다.
1921년 5월 22일 몰리 버크하트의 자매 애나 브라운이 살해당했다.
1921년 5월 27일 오세이지 부족민 애나 브라운의 시체가 오세이지군의 포허스카-페어팩스 도로에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그녀가 머리 뒤쪽에 총을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1921년 7월 몰리와 애나의 모친이자 오세이지 부족민인 리지 Q가 독에 중독되어서 몰리와 어니스트의 집에서 사망했다.
1922년 2월 29세 오세이지족 청년 윌리엄 스텝슨이 독에 중독된 후 사망했으며, 스텝슨 사망 수개월 후 오세이지 부족민 2명이 독에 중독되어서 사망했다.
1922년 8월 오세이지족의 신뢰를 받는 백인 석유 회사 사업가 바니 맥브라이드가 연방 수사국에 수사를 요청하러 워싱턴 D.C.로 가려 했지만 날붙이에 찔려 사망했다.
1923년 1월 오세이지 부족민 조 그레이호스와 애나 샌드포드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1923년 2월 6일 몰리와 애나의 사촌이자 오세이지 부족민인 헨리 로안이 그의 자동차 안에 머리 뒤에 총을 맞은채 사망했다. 로안은 윌리엄 킹 헤일로부터 12,000 달러를 빌린 적이 있었고, 헤일은 로안의 생명 보험인 25,000 달러를 얻었다.
1923년 3월 10일 새벽 2시 애나 브라운의 자매 리타 스미스의 주택 페어팩스에서 폭탄[1]이 터지면서 리타와 리타의 백인 하인 소녀 네티 브룩셔가 사망했다. 리타의 남편 빌 스미스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3월 11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빌은 죽기 직전 집을 폭파한 인물들이 윌리엄 킹 헤일과 어니스트 버크하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1923년 3월 24일 인디언 사무국 국장이 FBI의 전신인 The Bureau of Investigation(BOI)에게 사건의 수사를 요청했다.
1923년 6월 28일 오클라호마 시티 병원에 간 오세이지 부족민 조지 빅하트의 몸에서 독이 든 위스키가 발견되었다. 빅하트는 변호사 윌리엄 본에게 윌리엄 킹 헤일과 어니스트 버크하트가 수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은 포허스카로 가는 기차에 타고 가는 중 실종되었고, 두개골이 박살난 그의 시체가 포허스카 근처 철도 옆에서 발견되었다. 빅하트는 병원에서 사망했다.
1921년과 1923년 사이 13명의 오세이지 부족 남성들과 여성들이 사망했으며, 1925년 시점 60명 이상의 사망한 오세이지 부족민들의 석유 매장지 상속권이 그들의 법적 보호자들인 백인 변호사들과 백인 사업가들에게 갔다.# 1920년대와 1931년 사이 오세이지군 공동묘지를 조사한 결과 수십명의 오세이지족 청년들이 정체불명의 이유로 사망했다고 한다.
1925년 BOI가 5명의 수사관들을 오세이지군에 보냈으며, 오세이지 부족 원로들이 지역 수사관 제임스 먼로 파일과 BOI 수사관 톰 와이트의 도움을 받아서 지역 백인들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킹 헤일, 어니스트 버크하트, 존 램지, 켈시 모리슨 등 오세이지 부족의 백인 보호자들을 기소하는데 성공했다.
수사관들은 헤일이 오세이지 부족민 몰리 버크하트의 가족의 오세이지군 석유 매장지 상속권을 얻기 위해, 몰리의 가족 사람들을 총기 난사, 중독, 폭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으며, 몰리 버크하트를 조카 어니스트 버크하트와 결혼하도록 해서 어니스트가 상속권을 얻도록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1925년 하반기 수사관들이 몰리를 찾았을 때 몰리는 마을 의사들에게 인슐린을 처방받는 과정에서 독에 중독되었으며, 병원에 긴급 호송되었다.
1928년 BOI 수사관들의 도움으로 몰리는 회복할 수 있었으며, 2년전 1926년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어니스트와 이혼하고 존 콥과 결혼했다. 1937년 6월 16일 몰리는 당뇨병으로 사망했고, 그녀의 자녀들이 상속권을 얻었다.
1925년 미국 의회는 오세이지 부족민이 아닌 사람이 오세이지군 석유 매장지를 상속받을 수 없도록 법을 제정했다.
4. 평가
콜로라도주 지역 신문은 오세이지족 부족민들 60명 이상이 죽은 이 사건을 "공포의 통치(Reign of Terror)"라고 불렀으며, 이후 "공포의 통치"는 해당 사건을 상징하는 명칭이 되었다. 오클라호마주 지역 신문 The Daily Oklahoman은 해당 사건을 "오세이지족에게 도래한 석유의 저주(Oil Curse on Osage Indians)"라고 불렀다.오세이지족 사건은 인디언 전쟁 이후 석유 매장지의 상속권을 두고 일어난 아메리카 원주민과 미국 백인 사이에서 일어난 대립이자 비극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오세이지족 사람들이 사망했다.
5. 관련 매체
5.1. 소설
- 오세이지 부족 출신 존 조셉 매튜스의 소설 <Sundown (1934)>는 해당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오세이지 부족 혼혈 프레드 그로브[2]는 10살이었을 때 해당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이후 집필한 소설 <Flame of the Osage (1958)>, <Warrior Road (1974)>, <Drums Without Warriors (1976)>, < The Years of Fear (2002)>에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 미국 백인 존 헌트의 소설 <The Grey Horse Legacy (1968)>이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 치카소 부족 출신 린다 호건의 소설 <Mean Spirit (1990)>이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 머스코지 부족 출신 톰 홈의 소설 <The Osage Rose (2008)>이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5.2. 논픽션
-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Killers of the Flower Moon: The Osage Murders and the Birth of the FBI (2017)>이 해당 사건을 다루었으며, 그랜의 논픽션은 이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5.3. 라디오
- 1935년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필립스 로드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G-Men이 FBI의 협조를 받아서 해당 사건을 다루었다.
5.4. 영화
- 1959년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연방 경찰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했다.
-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Killers of the Flower Moon: The Osage Murders and the Birth of the FBI (2017)>을 영화화한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이 2023년 10월 개봉했다.
6. 기타
다른 인디언 학살사건에 비해 미국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해당 사건을 다룬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을 리뷰하는 영상의 댓글에서 여러 미국인들이 처음 알게 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이라서 해당 영화를 보고 사건을 처음 알게된 사람들이 많았다.
7. 유사 사례
8.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 위키백과 - 위키백과
- 오세이지족 사건 연표 - 연표
- 브리태니커 - 브리태니커
- 히스토리 채널 - 히스토리 채널
- PBS - PBS
- 더 오클라호만 기사 - 오클라호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