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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9:21:54

오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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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의 아들이자 2대 숙수에 대한 내용은 오봉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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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작중 행적3. 외형 및 성격4. 여담5. 드라마에서6. 영화에서

1. 개요

"음식은 어머니다!"
35년 동안 지배당했다고 반만년 이어왔던 우리 입맛까지 팔아먹은 줄 알았어? 어림없는 소리!
겨우 200년 역사의 미국인이 우리 음식을 왈가왈부 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였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에 그곳 공부를 하고 가야 시간 낭비가 없고 이해를 빨리 할 수 있듯이 한국 음식을 알고자 왔으면 사전에 콩나물이 밭에서 자라는지 시루에서 자라는지 정도는 알고 와야 할 것 아닌가!
빵과 치즈의 고정관념에서 헤어날 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의 간장, 된장, 고추장 문화를 알 수 있겠는가!
가라! 다음에 올 때는 김치의 맛이라도 익숙해 진 다음에 오도록 해라![1]

식객의 등장인물. 운암정의 현 주인인 오봉주의 아버지이며 자운 선생의 친구. 현 시점에선 고인이다. 첫 등장은 2권 생태탕편에서의 회상이며, 마지막 등장은 27권의 평양냉면편의 회상.

2. 작중 행적

두부편에서 밝혀진 것에 따르면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묘도 그곳에 썼다.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의 아들로 집안이 대대로 대령숙수 집안이었기 때문에 장래 희망이 조리사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수라를 올릴 조선 왕실이 없어졌는데 요리를 배워서 어디에 쓰느냐고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정에서 일본인들의 멸시를 받으며 묵묵히 일을 하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칼을 들어 도마를 내려친 후 급사하자, 아버지의 유품과도 마찬가지인 대령숙수의 칼을 벽에 걸어놓고 운암정을 열었다. 운암정은 대한민국 최고의 한식당으로 자리잡았으나, 아들 봉주가 자신이 운암정을 물려받을거라 생각하고 방만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2] 아들에게 경쟁심을 심어주기 위해 성찬을 제자로 데려온다.[3] 이후 생태 맑은탕 시합으로 후계자를 정하겠다고 했으나 전날 밤 후계 문제를 두고 아내와 다투는 중, 이를 우연히 엿듣고 봉주의 증오어린 눈빛을 보고 자신이 부자간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생각한 성찬이 운암정을 나가버리자 자연스레 봉주에게 운암정과 대령숙수의 칼을 물려준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결국 제자를 이용만 하다가 내쫓았다는 부채감 탓에 말년을 편히 보내지 못했다. 오봉주 역시 운암정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있어 자신은 성찬보다 못한 아들로 남았다면서 자격지심을 갖게 된다.

한편 봉주에게 자리를 물려주라고 조르던 오성길의 아내는 생태탕편의 회상에서 목소리만 나온 것 외에는 전혀 등장이 없고, 성찬이 운암정을 나온지 얼마 안되서 죽었다고 근황이라도 언급된 오성길과 달리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두부편에서 남편 옆에 합장된 것이 나온 것을 봐서 역시 사망했다.

3. 외형 및 성격

아들 오봉주와 마찬가지로 툭 튀어나온 두터운 입술과 진한 눈썹을 가졌으며 단정한 인상이다. 그런데 작화가 극도로 만화적이고 불안정했던 26권의 자운 선생의 회상에서 나온 젊은 시절 모습에선 기존의 모습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불독같은 아저씨가 오숙수랍시고 등장했으며(...) 27권의 성찬의 회상에서도 지금까지 등장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그리고 바로 전작인 26권과도 다른 수염없는 임꺽정같은 아저씨로 둔갑했다.(...)

성격은 자기 아들인 오봉주와 마찬가지로 자존심이 강하다. 만일 이 자존심을 자극받는 일이 있으면 때때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작중 12권 타락죽 편 과거회상에서 보면 외국 유명 평론가인 에드워드 케빈이 비공식 방문하여 운암정의 음식은 위선의 맛이며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니 음식에 일본의 느낌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걸 느낄수 없다며 본인이 온다고 평소대로 조리하지 않았다는 비평을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면서 케빈 뿐 아니라 미국의 짧은 역사까지 맹비난 하면서 다음에 올땐 공부를 한뒤 오라면서 큰 망신을 준 뒤 내쫓아버렸다. 물론 케빈이 편협하고 도발적인 말을 먼저 했기에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지만...[4]

하지만 주변인물들의 언급을 보면 특유의 욱하는 성질을 제외하면 오봉주와는 꽤나 다른 인품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실제로 성찬이 요리대결에서 승리하면 정말 아들을 제치고 성찬에게 운암정을 물려줄 생각을 할만큼 공과 사가 뚜렷한 인물이었고[5] 27권 평양냉면 편에서 과거 운암정에서 일했던 냉면 기술자들이 오숙수는 허세가 없던 사람이었는데 아들인 오봉주는 왜 그러냐면서 탄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4. 여담

작중 연대를 고려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설정을 넣다보니, 봉주를 상당히 늦은 나이에 낳은 좀 묘한 경우가 되었다. 오성길은 설정상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령숙수의 아들이자 해방 당시 번듯한 성인이었고, 2002년 기준 70년동안 술을 마셨다는 자운 선생의 친구라는 묘사로 보아 대략 1915년생 전후로 추정되는데, 오성길의 외아들 봉주는 1971년생인 성찬과 비슷한 또래니 둘의 세대 차이는 무려 60년에 육박한다. 실제 조선왕조 마지막 대령숙수인 안순환 숙수는 1871년 생으로 1970년생 안팎인 작중 봉주에겐 거의 고조할아버지 뻘이다.

만약 오성길 본인도 상당한 늦둥이라 1925년생 정도라 쳐도 50이 가까운 나이에 봉주를 낳은 셈인데, 작중 오봉주는 오성길의 유일한 자식으로 묘사되므로 상당히 맞지 않는 나잇대다. 그 시절에 먹고 살 형편이 안되는 시골 노총각도 아니고 운암정이라는 번듯한 한정식점을 물려받을 정도의 인재라면 시대상으로 결혼을 안하거나, 늦은 나이에 어린 신부를 들일 이유도 없으므로 아내도 그 나이면 초산은 거의 불가능한 나이다. 하다 못해 오봉주가 위로 누나들이 많은 딸부잣집의 외아들이라는 설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설정은 없다.

심지어 작중 회상을 보면 봉주와 성찬을 가르칠 때의 모습은 영락없는 40대 정도다(...). 쉽게 말해 이 모든 문제는 오성길이 마지막 대령숙수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 였으면 명쾌하게 해결되는 문제다. 세대를 하나 더 넣으면 오성길도 1930-40년대생이 되며, 작중 설정이나 묘사 어느 쪽으로도 아귀가 맞아들어가는 나잇대가 되는 셈. 물론 이러면 오성길이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서사의 비극성이 독자들에게 덜 와닿다는 문제가 있겠지만[6], 이것도 다른 설정으로 납득이 가능하게끔 만들면[7] 충분히 독자들에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오성길과 대령숙수는 작중 시점에는 고인이 된 인물인데다 오성길은 등장 비중이 낮은 단역에 가까운 인물이니 설정을 조금 느슨하게 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작중 자세히 살펴보면 '오성길'이라는 이름이 공개되기는 하지만 가뭄에 콩나듯 나타나는 수준이고 시종일관 '오숙수'로 불리기 때문에 본명을 알기가 쉽지 않은 캐릭터. 때문에 엔하위키에서도 한동안 '오숙수' 항목이 별도로 존재했다.

5. 드라마에서

드라마에서의 배우는 최불암.

드라마에서는 설정이 다소 변경되어 주인공 이성찬의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로, 성찬을 자신의 양아들로 받아들여 키우게 된다.

자신의 아들인 오봉주처럼 친아들 대하듯이 키웠으며, 이때문에 봉주가 일부러 성찬을 운암정에서 추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분노, 봉주와의 사이도 점점 안 좋아지게 된다.

급기야 아들인 봉주가 자기 방식으로 운암정을 영업하겠다며 찌질대자 점점 부자간의 사이는 갈라져가고, 급기야 마츠모토 준이치에 인해 운암정이 위험에 처하자 결국 큰병이 생겨 앓아눕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성찬에게 씨장에 대해 알려주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6. 영화에서

영화에서도 설정이 변경되어 오봉주의 할아버지로 나오며[8], 동시에 대령숙수의 아들이 아니라 대령숙수의 제자로 나온다. 실존했던 대령숙수가 1870년대생이고 그 아들뻘 나이라면 원작의 오봉주의 할아버지로 적절한 나이이니 현실성 있게 조정했다고 볼 수 있다.


[1] 하단에 저술한 케빈을 쫓아내며 말한 말. 2000년대 초중반 민족주의 감성에 충실히 따른 클리셰적인 대사 정도이다. 편견에 벗어나라지만 사실 이 대사 자체가 편견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서양 요리에 빵과 치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 셰프나 평론가들 중에서는 비서양 요리에도 정통한 사람이 많다. 어차피 본인이 5천년 산 것도 아니면서 남의 나라 역사가 짧니 어쩌니 운운하면서 식견 짧은 인종으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한국적인 정신승리 중 하나다. 케빈 자체가 무리하게 병신으로 설정된 캐릭터긴 하지만 일본에서 먹은 것과 다르다고 평가한 것자체가 차이점 평가할 능력은 된다는건데 역시 코쟁이라서 이해못한다는 식의 대응 자체가 요즘에는 레이시즘 걸리기 좋은 수준 발언이다.[2] 작중에서 자세히 묘사된 적은 없으나 성찬이 고등학생 때 이미 운암정에 제자로 들어가는게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비슷한 시기 봉주는 단순히 요리공부를 안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복입고 머리 기르고 담배까지 피어대는 양아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3] 두번째 식객모임 편에서 성찬의 이야기로 밝혀지는데, 성찬이 운암정에 들어갈 때 다른 지원자들과 점심 식사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점심 식사 메뉴가 갈치 조림이었는데 성찬이 갈치 조림의 뼈를 깨끗하게 다 발라먹은 것을 보고 흥미를 느껴 성찬과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를 통해 성찬의 요리 지식과 요리에 대한 열정을 느끼고 성찬을 합격시켰다.[4] 그리고 이 상황은 몇 년뒤에 고평가를 받게 되었다. 황교익/비판과 논란/일본 유래설 참고. 황교익과 케빈의 논리와 똑같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의 울분으로 아버지가 급사한 것까지 밝혀지면서 저런 소리 듣고도 호통만 치고 내보낸 것에 대인배 취급을 받게 되었다.[5] 위에서 언급되었듯 오봉주는 이에 앙심을 품고 이후 자기 아버지 시절부터 운암정에서 일해왔던 사람들을 포함해 성찬과 인연이 있던 이들을 내쫓아버렸고 성찬과 친한 후배에게도 7년 경력이 있음에도 요리할 기회 한번 주지 않다가 트집을 잡고 쫓아내버리려 했다. 그러나 그 후배가 먼저 제 발로 나갔다.[6] 아무래도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가 일제 강점기 당시 몸소 겪어야 했던 망국의 설움을 참고 견디다가 끝내 울분으로 인해 급사했다는 비극적인 일을 제일 슬퍼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유족인 배우자와 자녀가 제일 알맞기 때문. 그리고 오성길을 1930-40년대생이라고 치면 "과거 조선 왕실을 위해 일하던 대령숙수였으나,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원래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그 원인을 제공한 일본인들의 멸시를 받다가 결국 해방 이전에 급사한 사람을 직접 본 가족" 이라는 설정이 어려워진다. 태어나기 이전이거나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시절이기 때문.[7] 예시: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이자 오성길의 할아버지(원작에서는 아버지)가 망국의 설움을 겪다가 울분으로 급사한 설정은 그대로 두되, 이걸 지켜본 사람은 오성길이 아닌 그의 아버지(원작에서는 미등장한 인물)로 나오는 사람이 대신 겪도록 한 다음 그 한을 간직한 아버지가 살아있을 당시에 오성길에게 자신의 아버지(오성길의 할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말해준 것을 계기로 자극받은 오성길이 운암정을 차리거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방식.[8] 동시에 성찬의 할아버지로 성현이라는 인물이 동문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