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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4:04:17

영성교

1. 개요2. 대중 매체에서
2.1. 소설 열국지2.2. 만화 킹덤

1. 개요

嬴成蛟
(? ~ 기원전 239년)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인물. 《전국책》에는 이름이 성교(盛橋)로 기록됐다. 봉호는 장안군(長安君).

장양왕(莊襄王)의 아들이자 훗날 시황제로 불리게 되는 영정의 이복동생으로 소양왕(昭襄王) 때 한(韓)나라사신으로 가서 한나라의 군주인 환혜왕(桓惠王)에게 한나라의 땅 100리를 받아냈다. 단, 이 인물이 시황제 영정의 동생인 장안군 성교와 동명이인이란 설이 있는데, 소양왕이 죽었을 때 시황제의 나이는 불과 9살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황제보다 어릴 터인 동생 성교가 사신으로 간단 말인가?[1][2]

기원전 239년에는 조(趙)나라를 공격하다가 둔류(屯留), 포호(蒲鄗)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켜, 당시 진왕(秦王)이었던 영정이 보낸 토벌군과 싸우다가 둔류에서 전사한다.

그리고 출신이 불분명한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진왕 자영(秦王 子嬰)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다.

2. 대중 매체에서

2001년 드라마 심진기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장양왕의 생존해있는 유일한 친자로 등장한다. 영정이 등극하기 전에는 영정암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왕좌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영정의 등극 후에는 그냥 조용히 살고 있었다. 여불위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정보가 유출되어 반란하자마자 진압되고 체포된 후에 처형된다.

2.1. 소설 열국지

장안군 성교가 일으킨 반란에 대한 묘사가 더 추가된다. 부하 장수들이 '성교야 말로 장양왕의 정통 후손이며 현 진왕[3]여불위의 아들이라서 자격이 없다'라고 부추겨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했다. 이 반란 자체가 진시황이 꾸민 역공작으로, 처음부터 조나라 정벌군을 구성할 때 진시황에게 불만이 많았던 자들로 구성해서 반란을 유도했다는 묘사로 나온다. 성교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태후가 간청하지만 처음부터 성교를 없애기로 마음먹은 진시황은 이를 무시하고 동생을 죽인다는 내용이다.

2.2. 만화 킹덤

파일:킹덤-1성교.jpg
공식능력치
시기 무력 지휘력 지력 기타
7권 ? ? ? 성격: 비뚤어짐
가이드북 55 68 76 사고방식: 성악설
가이드북2 70 80 86 아내: 미인

애니판의 성우는 미야타 코우키. 실사배우는 혼고 카나타.

당연히 위의 항목의 인물과 동일인물이다.

양눈이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생김새인데, 왕족인 자신은 그 무엇보다도 고귀하다고 생각하며 그 외에는 천하다고 생각하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에 걸맞게 호화로운 생활을 지내며 자신의 아랫 사람들을 매우 깔보다가 [4][5] 영정의 출현으로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후 정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좌승상 갈씨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양단화와 산족의 힘을 빌린 정의 일파에 의해서 대부분의 부하들은 다 죽게 된다. 마지막에는 순수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지배한다고 개소리를 내뱉으면서 정에게 칼을 휘두르려다가 정의 눈빛에 꼼짝도 못하고 실컷 쳐맞은 뒤 겨우 목숨을 부지한채 성에 유폐된다.

당시 영성교에 대해 이신은 너야말로 기만하고 죽이는 게 백성의 일이라더니 전형이라면서 고귀하신 분이 그 소리를 들으면 웃겠다고 비아냥거린 뒤, 네가 아무리 잘난 척 하고 떠들어봐야 목숨 걸고 지키는 놈 하나도 없는데 너네들 다 그런 놈들이라고 매우 혐오감을 보였다. 영정은 영성교에게 이신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면서 백성들은 절대로 그리 단순한 족속들이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백성들은 왕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서 사람도 세상도 모르니까 늘 혼자인 거라고 했다.

정이 성교를 살려둔 이유는 훗날 여불위와의 싸움에서 성교 일파, 즉 왕족과 여러 고위귀족들의 막강한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살려둔 것이었다. 여불위가 조희의 후궁세력과 힘을 합치고 상국에 취임하는 등 폭정을 일삼자 유폐에서 풀려나고 정과 힘을 합쳐 창문군을 승상으로 취임하게 한다.(24권) 그 후 이목의 합종군을 막기 위해 출정하는 정에게 왕성의 안위를 부탁받았다. 당시 성교는 궁 떠나기를 좋아하는 왕이라면서 군주라면 나라와 사람들의 마지막을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영정은 끝까지 싸우는 것도 왕도라면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자 그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게 대단히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조금 짊어지는 걸 도와줄까 생각했다고.

합종군 이후에 여불위 일파와 정 일파가 싸우고 있을 때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영정을 인정한 듯 하다. 본인도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해서 그의 교육관이던 수백은 예전엔 없던 충(忠)이 성교 일파에 있다며 대견해한다. 그 때문에 당시 무도 모르는 신하들이 종군을 따라왔으며 성교의 마지막에 슬퍼했다. 이를 본 이신은 너 그 사이 많이 변했군이라고 생각했을 정도. 영성교는 자기에게 대놓고 막말을 퍼부은 그를 조사하면서 그가 종놈 출신이고 그동안 전장에서 싸워서 무장이 된 걸 알고 있었다.

여불위와 손을 잡은 조나라 대신 곽개가 2만의 군사를 급파하자 진 조정에서 당장 동원할 지휘관이 부족해 허둥댈 때 스스로 지휘관을 자청[6]해 출정한다.(369화)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불위의 모략으로 한쪽에서는 조나라 군대를 이용해 성교의 아내가 있는 둔류를 치는 척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둔류에 있는 성교의 아내 유의와 그 일족을 인질로 잡아놓고 이어서 성교까지 포로로 잡고는 성교가 모반을 일으킨 것처럼 꾸몄다.

성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 이용당했단 사실을 간파한 정에 의해 이 이끄는 병사 3만과 이 이끄는 비신대 5천이 성교를 구출하러 파병된다. 그 와중에 성교도 그대로 당하지는 않고 둔류가 구출대에게 공격받자 포학의 심복이 아닌 이들이 옥을 경비한단 사실을 노려 그들에게 당근과 채찍[7]을 써서 감옥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한다. 그대로 탈출하지 않고 유의를 되찾기 위해 유의가 갇힌 비밀감옥으로 달려가다 포학의 병사들에게 따라잡혀 등에 창을 맞는 부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채로 유의가 갇힌 옥에 도달했으며, 유의를 풀어주고 같이 밖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서 더는 움직이기 힘들게 되자 유의에게 밖의 구원병을 불러오라고 하고는 자신은 움직이기 힘든 부하 한 명과 함께 남아 포학의 추격대를 계단에서 가로막는다.

포학의 추격대를 상대하면서 포학을 죽이기 위해 벽을 탔다가 그 병사들의 창에 찔리지만 사실은 계단에서 병사들이 모두 넘어지게 한 것이었으며, 병사들이 넘어지자 계단 아래로 뛰어들어서 포학을 죽였고 신 일행들이 그 현장을 달려갔을 때는 포학의 병사들을 모두 죽이고 성교도 치명상을 입은 채로 쓰러진 상태였다. 유의에게 여자이지만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면서 남은 일파를 이끌고 정 일파로 들어가라고 하며, 이신에게는 정에게 중화통일에게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는 혼자 짊어죽을 것이 아니기에 정의 버팀목이 되라고 충고한다. 마지막으로 유의에게는 처음 만날 때부터 이미 너에게 반했었단 말을 하고 사망한다.

죽기 전 이신을 만나 이신에게 영정의 비원은 많은 원념과 핏비를 흩뿌릴 거라면서 각오는 되어있지만 누군가가 지탱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네가 창이자 방패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 실제로 영정은 여불위와의 문답 당시 마음이 흔들리자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망령들이 다시 보여서 힘들어하기도 했으며, 업 공방전 당시 이신과 하료초가 죽는 걸 각오해야 한다고 하자 내심 두려워하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여러 면에서 성장해 아랫사람들을 이끌었던 터라 수하의 과거 반란 당시와 달리 진심으로 따르는 수하들이 많았으며, 둔류 사건 당시에도 싸움은 전혀 모르면서도 성교를 따라서 온 수하들이 많았다. 성교가 죽을 때 진심으로 통곡해서 나중에 포학의 시신을 마구 작살내 놓았는데, 절반이 떠날 것이라 말했던 본인의 예측과 달리 1/10도 되지 않는 자들만이 떠났다고 한다. 정말로 휘하 사람들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이런 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반영해서인지 새로운 가이드북에서는 능력치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작가의 비고에 따르면 초반에 포악했던 모습은 당시 유행했던 순자성악설의 견지에서 치세를 생각한다고 하며 삐뚤어졌다고 한다.

[1] 만약에 이복동생이라는 표기가 오기였거나 정통성을 위한 진나라 측의 조작이라 사실은 시황제와 나이차나는 배다른 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초가 볼모 시절 여불위한테 조희를 받기 전 이미 결혼해 처자식이 있었고, 성교가 먼저 나온 자식이었다고 가정하면 틀린 것은 아니다.[2] 영성교의 비범함을 부각 시켜 영정을 더욱 띄워주기 위한 일화일 수 있다.[3] 훗날의 시황제[4] 아무 이유없이 평민 출신인 게 짜증난다고 자기 부하를 죽이기까지 한다. 그것도 다른게 아니고 평민 주제 출세했다고...[5] 자신을 추켜세우며 아부하던 신하들에게 연못을 걷던 도중 멀쩡한 다리가 있음에도 자신의 앞에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아부하던 신하들을 연못에 1자형으로 엎드리게 해 그들의 등을 밟고 가는 기행을 저지른다. 이로인해 아부하던 신하들이 제대로 굴욕을 겪었던지라 바로 왕태자 감이 아니라며 태세전환하며 버림받았다. 어찌보면 본인의 오만으로 인해 벌어진 자업자득이었다.[6] 당시 여불위는 최 공방전을 들먹이면서 정에게 다시 친정하라고 했지만 이 때 성교가 속이 보인다고 비꼬면서 자청한 것.[7] 일이 끝나고 나면 포학은 입막음을 위해 너희들은 물론 너희 가족들까지 죽일 것을 알려주고, 여기서 자신을 빼내고 유의를 구하는 것을 도와주면 포학이 주겠다고 한 은상의 10배를 줄 것이며 이 일의 증인인 너희들을 우대하겠다며 너희와 가족의 운명을 생각하라면서 설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