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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3 10:33:07

역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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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14일에 문을 열어 2020년 현재 접속이 불가한 한국 고대사 중심의 한국사 커뮤니티. 역사 커뮤니티들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최초 개설자는 홍OO이라는 사람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회사원이다. 지금은 사라진 네티앙(https://www.netian.com/)에서 제공하는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를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관심있었던 한국사의 몇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다. 최초 주소는 https://www.netian.com/~greatkhan이었다. greatkhan은 고등학교 때 좁은 한반도 남쪽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개설자가 광개토대왕을 생각하며 사용하던 ID를 사이트 주소로 쓴 것이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쓰여 있는 '만년 뒤에 고구려가 사라진 뒤를 생각하는' 구절이 어린 고등학생에게 뭔가 감동이었다.

사이트 개설 초기에는 1980년대 초반에 대학교 재학 때부터 조금씩 수집했던 역사관련 자료를 카테고리 별로 분류해 수록하는 작업이었다. 방문자가 늘어나면서 정식으로 도메인을 확보해 사이트를 운영하고자 2000년에 역사21(history.org)을 등록하였다. 21세기에는 역사학을 대중화하는 시대를 만들고, 당시 휘몰아쳤던 벤처붐을 기회로 벤처투자에 성공하면 역사학 연구의 기금을 조성해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비를 후원하리라는 20대의 거창한 꿈(?)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래서 .COM이 아니라 연구재단을 상상해 .ORG를 도메인으로 확보한 것이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여러 전공분야를 가진 30대 초중반의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당시 KBS에서 방송하던 <역사스페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많은 사이트나 카페가 만들어졌다. 역사21은 가급적 정통 역사학과 고고학 분야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였는데,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역사연구에 대한 '학제간 협업연구'를 지향하려는 생각에 학술 논문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당시 연합뉴스의 문화부에 재직하고 있던 김OO 기자가 주도한 풍납토성 발굴 문제와 보전에 큰 관심을 가져 적극적인 보전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김 기자를 통해 역사학과 고고학 분야의 소식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의기투합한 토론자끼리 모야 풍납토성 발굴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등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 가운데 자연과학 전공자들이 많아서 역사적 사실 분석에 자연과학적 접근 방법을 시도한 경우가 많아서 다른 사이트와 차별화된 특징을 가졌다.

당시 유행했던 "유사역사학"류와 선을 긋는 한편, 토론의 질을 높이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중심이 되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학술지 <역사21 제 1호>를 발간하여 국립중앙도서관과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포하였으며 남은 비용으로 웹호스팅 서비스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초창기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사람들이 이후 9년여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이 자기 분야나 직장 내에서 직위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온라인 토론 같은 외도(?)에 투입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어 참여도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룰만한 이슈들은 7~8년 정도 지나자 대부분 토론을 거치게 되어 이후 토론은 주기적으로 예전 것을 반복하는 도돌이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체기에 접어 들었다. 개설 5~6년 정도 지났을 무렵 입소문 때문인지 유사역사학(?) 지지자들이 조금씩 유입되기 시작하여 자유토론 방식에서 회원가입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바꾸었으며, 최초 개설자가 2008년 직장에서 직책 변화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도돌이 토론이 반복되면서 찾는 사람들도 현저히 줄어드는 이런 사이트는 더 이상 시대적으로 맞지 않고, 당시 서서히 퍼지던 멀웨어나 랜섬웨어 같은 악성코드의 공격에 사이트를 방어할 수 있는 IT전문가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더 이상 운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개설자는 사이트 운영을 접겠다는 사실을 게시판에 공지하게 되었다.

한 달간 공지 후에 사이트를 닫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개별적으로 필요한 글을 다운받으라는 공지를 하였으나 이 사이트를 굳이 유지하자는 사람들이 지질학 박사였돈 회원을 설득하여 결국 사이트 운영권과 도메인 소유권을 2대 운영자에게 완전히 이전하였고 개설자는 손을 뗐다. 2대 운영자가 운영을 계속하여 2년여 경과됐을 무렵 웹호스팅 회사의 보안역량 부족으로 역사21 사이트는 랜섬웨어의 공격을 받아 10여년에 걸쳐 쌓여 있던 모든 자료가 날아갔다.

사이트 운영 초기에 사학과 학부생이었던 토론자 중에는 2025년 현재 역사학과 교수가 된 사람도 몇 명 있지만, 그들은 이 사이트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유사역사학 비판>을 쓴 이문영 선생이 젊은 시절에 작성한 '재야사서비판'을 이문영 선생의 협조로 게시함으로써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유사역사학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조금은 기여하였다. 온라인 토론에 의학, 금속공학, 지질학, 토목공학, 해양생물학, 천문학, 기상학 등을 전공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학제간 협업연구에 대해 온라인 상에서나마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었다는 점에서 존재 의의가 있었다고 하겠다.

익명이든 실명이든 관계하지 않았던 관계로 초창기부터 심도 있는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는 개설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여럿 있다. 닉네임 '여름'님은 그 가운데 특히 궁금한 분이기도 하다.(역사21 항목에 대해 이러저러한 내용이 여러사람에 의해 편집되는 것을 우연히 보게되었다가 최초 개설자로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몇마디 기록삼아 남기는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대학 교수가 된 분들도 거의 정년퇴직할 나이들이 됐고, 사학과 학부생이던 이가 대학 교수가 된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정년퇴직을 했거나 곧 할 사람들이 지나간 세대에 대한 기록 차원에서 남깁니다. 순전히 기억에 의한 기록이니 선후 순서가 다른 것도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1] 현재 접속하면 모든 파일이 암호화되었다는 페이지만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