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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여호아스공동번역, 가톨릭새번역, 개신교새번역, 요아스개역개정 | |||
출생 | 미상 | |||
미상 | ||||
사망 | 기원전 782년경 | |||
미상 | ||||
소속 | 미상 | |||
재위년도 | 기원전 798년~기원전 782년 약 16년 | |||
국적 | 북이스라엘 왕국 | |||
아버지 | 여호아하즈(이스라엘) | |||
자녀 | 여로보암 2세 | |||
이전 국왕 | 여호아하즈(이스라엘) | |||
다음 국왕 | 여로보암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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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후 왕조의 3대 국왕.여호아스는 여호아하즈의 아들이다. 부왕이 죽자 왕위를 물려받아 북왕국을 16년 동안 다스렸다. 재위 기간 동안 그 유명한 유다의 왕 아마샤 간의 남북 대결로 유명하다. 이는 열왕기하 14:8~14:14, 역대하 25:17~25:2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왕국의 왕들이 다 그렇지만 여로보암 1세의 길을 따랐다며 열왕기 저자로부터의 평가가 나쁘다. 여호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여로보암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 희대의 사건, 유다 왕국의 왕 아마샤와의 대결
여호아스가 평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유다 왕국의 왕 아마샤가 한판 뜨자고 불러낸다.이는 성경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rowcolor=#000> 열왕기 하권 14장 8절 | |
אָ֣ז שָׁלַ֤ח אֲמַצְיָה֙ מַלְאָכִ֔ים אֶל־יְהֹואָ֨שׁ בֶּן־יְהֹואָחָ֧ז בֶּן־יֵה֛וּא מֶ֥לֶךְ יִשְׂרָאֵ֖ל לֵאמֹ֑ר לְכָ֖ה נִתְרָאֶ֥ה פָנִֽים׃ | |
그 무렵에 아마츠야가 예후의 손자이며 여호아하즈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런 말을 전하였다. “자, 우리 한번 겨루어 보자!” | 그 때에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서로 직접 만나 힘을 겨루어 보자고 제안하였다. |
가톨릭 새번역 | 개신교 새번역 |
유다 남쪽의 에돔을 물리쳤다고 자화자찬한 아마샤가 한판 맞짱 뜨자고 현피를 걸어오자 여호아스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훈계했으나,
<rowcolor=#000> 열왕기 하권 14장 9-10절 | |
וַיִּשְׁלַ֞ח יְהֹואָ֣שׁ מֶֽלֶךְ־יִשְׂרָאֵ֗ל אֶל־אֲמַצְיָ֣הוּ מֶֽלֶךְ־יְהוּדָה֮ לֵאמֹר֒ הַחֹ֜וחַ אֲשֶׁ֣ר בַּלְּבָנֹ֗ון שָׁ֠לַח אֶל־הָאֶ֜רֶז אֲשֶׁ֤ר בַּלְּבָנֹון֙ לֵאמֹ֔ר תְּנָֽה־אֶת־בִּתְּךָ֥ לִבְנִ֖י לְאִשָּׁ֑ה וַֽתַּעֲבֹ֞ר חַיַּ֤ת הַשָּׂדֶה֙ אֲשֶׁ֣ר בַּלְּבָנֹ֔ון וַתִּרְמֹ֖ס אֶת־הַחֹֽוחַ׃ הַכֵּ֤ה הִכִּ֨יתָ֙ אֶת־אֱדֹ֔ום וּֽנְשָׂאֲךָ֖ לִבֶּ֑ךָ הִכָּבֵד֙ וְשֵׁ֣ב בְּבֵיתֶ֔ךָ וְלָ֤מָּה תִתְגָּרֶה֙ בְּרָעָ֔ה וְנָ֣פַלְתָּ֔ה אַתָּ֖ה וִיהוּדָ֥ה עִמָּֽךְ׃ | |
9그러나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유다 임금 아마츠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대답하였다. “레바논의 엉겅퀴가 레바논의 향백나무에게 ‘그대의 딸을 내 아들에게 아내로 주오.’ 하고 전갈을 보냈다. 그러자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엉겅퀴를 밟아 버렸다. 10그대는 에돔을 쳐부수었다고 마음이 우쭐해져 오만하게 구는데, 집에나 머물러 있어라. 어찌하여 재앙을 일으켜 그대 자신과 유다를 함께 쓰러뜨리려 하는가?” | 9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은, 유다의 아마샤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회답하였다.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레바논의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백향목의 딸을 며느리로 달라고 청혼하는 것을 보고, 레바논의 들짐승이 지나가다 그 가시나무를 짓밟은 일이 있다. 10네가 에돔을 쳐서 이기더니, 너무 오만해진 것 같다. 차라리 왕궁에나 머물면서, 네가 누리는 영화를 만족하게 여겨라. 어찌하여 너는, 너 자신과 유다를 함께 멸망시킬 화근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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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소용없어 결국 불가피하게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rowcolor=#000> 열왕기 하권 14장 11-12절 | |
וְלֹא־שָׁמַ֣ע אֲמַצְיָ֔הוּ וַיַּ֨עַל יְהֹואָ֤שׁ מֶֽלֶךְ־יִשְׂרָאֵל֙ וַיִּתְרָא֣וּ פָנִ֔ים ה֖וּא וַאֲמַצְיָ֣הוּ מֶֽלֶךְ־יְהוּדָ֑ה בְּבֵ֥ית שֶׁ֖מֶשׁ אֲשֶׁ֥ר לִיהוּדָֽה׃ וַיִּנָּ֥גֶף יְהוּדָ֖ה לִפְנֵ֣י יִשְׂרָאֵ֑ל וַיָּנֻ֖סוּ אִ֥ישׁ לְאָהֳלֹו | |
11그러나 아마츠야가 듣지 않자,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올라가 유다에 속한 벳 세메스에서 유다 임금 아마츠야와 겨루었다. 12유다군은 이스라엘군에게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 11그러나 아마샤가 끝내 듣지 않자,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이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를 맞아, 유다의 영토인 벳세메스에서 대치하였다. 12그러나 유다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하여,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도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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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전쟁으로 인해 여호아스가 있는 이스라엘 왕국이 짜릿한 대승을 거뒀고, 자기 힘만 믿고 오만했던 유다 왕국이 참혹하게 패배한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3. 아람과의 전쟁과 엘리사의 사망
이후 아람과 3차례 전쟁을 하여 전대에 빼앗긴 고토를 수복했다. 이 때와 관련해서도 엘리사가 병에 들어 여호아스가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안쓰러워하는데[1] 이 때 엘리사가 동편 창문 너머로 활을 쏘라고 했다. 여호아스가 시킨 대로 하니 엘리사는 시리아(아람)를 아벡에서 크게 이길 것이라는 뜻이라 말했고 이번에는 화살을 땅에 쳐보라고 했는데 별 생각 없이 탁탁탁 세 번을 치자 "으이구 치라면 좀 열심히 칠 것이지! 대여섯 번만 쳤어도 시리아(아람)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텐데, 세 번 쳤으니 세 번 이기고 땡이로구나!" 하고 한탄했다고 한다.[1] 할아버지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명한 사람이 엘리사였으니, 여호아스로서는 정통성의 근원인 엘리사를 상객으로 대접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이 때 여호아스가 엘리사를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라고 불렀다고 열왕기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