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지스토 판돌피니 (Egisto Pandolfini) |
생년월일 | 1926년 2월 17일 |
사망년월일 | 2019년 1월 29일 (향년 92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라스트라 아 시냐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신체조건 | 170cm | 74kg |
소속팀 | ACF 피오렌티나 (1945-1947) →엠폴리 FC (1946-1947 / 임대) SPAL (1947-1948) ACF 피오렌티나 (1948-1952) AS 로마 (1952-195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56-1958) SPAL (1958-1960) 엠폴리 FC (1960-1962) |
국가대표 | 19경기 7골 (1950-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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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판돌피니는 ACF 피오렌티나의 유스팀에서 성장 후 1945년 11월 11일에 피오렌티나와 US 살레르니타나 1919전에서 세리에 A에 데뷔했다. 그러나 곧 엠폴리 FC로 임대를 떠났고 나름 두각을 나타냈지만 피오렌티나 스태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결국 판돌피니는 SPAL로 팀을 옮기게 되었고 이곳에서 기량의 급성장을 보여 다시 피오렌티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를 되찾기 위해 피오렌티나는 더 큰 돈과 함께 오텔로 바디알리(Otello Badiali)까지 더해야 했다.1952년까지 피오렌티나에 머무른 판돌피니는 피오렌티나를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이때의 피오렌티나는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이때 전력을 나름 탄탄하게 갖추게 된 피오렌티나는 1956년에 첫 스쿠데토를 차지하게 되었고 판돌피니는 1952년에 AS 로마로 떠나게 되었으나 이때의 판돌피니는 조금씩 스피드가 떨어져가고 있었고 1956년부터 2시즌까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뛸 때가 판돌피니의 기량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때였다.
1958년, 인테르를 떠난 판돌피니는 다시 SPAL의 선수가 되어 팀의 세리에 B 강등을 막아냈다. 다음해에 SPAL은 현재까지 팀 역사상 최고 순위인 세리에 A 5위[2]에 올랐지만 이 시즌이 판돌피니에게는 SPAL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판돌피니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잠시 임대되었던 엠폴리에서 1962년에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다.
2.1.2. 국가대표
판돌피니는 1950년과 1954년, 2차례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판돌피니는 1950년 월드컵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후반 18분에 2:0으로 리드를 벌리는 추가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전 경기에서 스웨덴에 2:3으로 패한 것이 발목을 잡아 결선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1954년 월드컵에서 판돌피니는 벨기에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 4:1 승리에 기여했지만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도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판돌피니는 올림픽에도 2차례 참가했지만 경기는 1952년 올림픽에만 출전했고 이탈리아가 미국을 8:0으로 박살낼 때 2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