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밀 본조르니 (Émile Bongiorni) |
생년월일 | 1921년 3월 19일 |
사망년월일 | 1949년 5월 4일 (향년 28세)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프랑스 제3공화국 불로뉴비양쿠르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8cm | 74kg |
소속팀 | CA 파리샤랭통 (1938-1939)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1944-1948) 토리노 FC (1948-1949) |
국가대표 | 5경기 2골 (1945-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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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본조르니는 굴뚝 청소부의 아들로 태어나 13살부터 유소년 축구팀에 들어갔다. 본조르니는 1935년 CA 파리샤랭통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고 당시의 그는 사이클과 축구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다.1938년 6월에 본조르니는 파리샤랭통과 1군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본조르니는 1939년까지 파리샤랭통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았지만 전쟁으로 그 역시 커리어가 끊기고 말았다.
1944년에 본조르니는 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로 팀을 옮겼고 1944-45 시즌에 쿠프 드 프랑스에서 우승해서 프랑스 생활 중 그의 유일한 메이저 커리어 타이틀을 얻었다. 라싱 클뢰브에서 본조르니는 해마다 두 자릿수 득점을 넣어준, 믿을 수 있는 공격수였다.
1948년, 본조르니는 토리노 FC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는 첫 시즌에 8경기밖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2골을 넣었다. 그러나 그 역시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했다.
2.1.2. 국가대표
본조르니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프랑스 대표팀에서 5경기 2골을 넣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본조르니는 탄탄한 체형의 센터 포워드였고 체력과 강력하고 정확한 슛을 최고의 무기로 삼아 프랑스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다.4. 수상
4.1. 클럽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1944-45(라싱 클뢰브 드 프랑스)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