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리크 페르손 (Erik Persson) |
추생 | 1909년 11월 19일 |
사망 | 1989년 2월 1일 (향년 79세) |
국적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스톡홀름 |
포지션 | 공격수 |
신체 | 불명 |
소속 구단 | AIK 포트볼 (1930~1939) AIK 포트볼 (1940~1941) |
국가대표 | 32경기 20골 (1930~1939) |
감독 | AIK 포트볼 (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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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前 축구 선수 출신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페르손은 AIK 포트볼에서 활약했고 현역 시절에 알스벤스칸 우승 2회의 기록을 남겼다.2.1.2. 국가대표
페르손은 1936년 올림픽과 1938년 월드컵에서 스웨덴 대표팀 멤버로 활약했다.1936년 올림픽에서 스웨덴은 페르손이 2골을 넣었음에도 일본[2]에 2대3으로 패배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페르손은 1938년 월드컵에선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에 밀려 브라질과의 3위 결정전에만 출전했다. 스웨덴은 브라질에 2대4로 졌다.
페르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 32경기 출전, 20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평가
볼 컨트롤과 감각이 뛰어난 선수였다고 전해진다. 다만 축구에 비해 다른 스포츠 선수로서의 능력은 다소 평범했다고 한다.4. 여담
- 페르손은 핀란드에게 강했는데 해트 트릭 2번을 포함, 8경기에서 9골을 넣었다. 스웨덴은 핀란드에 이 8경기에서 6승 1무 1패를 챙겼는데 이 경기 중에는 페르손이 해트 트릭을 기록했음에도 핀란드에 4대5로 진 경기도 있다.
- 페르손은 축구외에도 아이스하키, 밴디 등 여러 동계 스포츠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알스벤스칸 우승, 아이스하키, 밴디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유일한 선수이다.
5. 사생활
페르손의 이복형 하뤼 페르손은 권투 선수로 1920년대 스웨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6. 수상
6.1. 선수
6.1.1. 클럽[3]
- 알스벤스칸 우승 2회: 1931-32, 1936-37
- 알스벤스칸 준우승 4회: 1930-31, 1934-35, 1935-36, 1938-39
6.1.2. 개인
- 알스벤스칸 득점왕 1회: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