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에롤 케스킨 (Erol Keskin) |
생년월일 | 1927년 3월 2일 |
사망년월일 | 2016년 10월 2일 (향년 89세) |
국적 | 튀르키예 |
출신지 | 이스탄불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2cm | 76kg |
소속팀 | 페네르바흐체 SK (1943-1951) 아달레트 SK (1951-1958) |
국가대표 | 16경기 2골 (1948-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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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케스킨은 1943년부터 페네르바흐체 SK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44년 4월 16일, 케스킨은 베파 SK를 상대로 페네르바흐체 데뷔전을 치르면서 데뷔골도 이 경기에서 기록했다.케스킨은 1945년부터 팀의 레귤러 멤버가 되었고 6년간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러나 1951년, 케스킨은 아달레트 SK로 이적했고 7시즌을 아달레트에서 머물렀다.
1957-58 시즌을 마치고 케스킨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아달레트의 클럽 임원이 되었지만 한달 만에 임원직을 그만뒀다. 그리고 1년 후 케스킨은 아달레트의 선수로 복귀할 것을 발표하고 아달레트의 훈련장에서 다시 몸을 만들었다. 그러나 케스킨의 선수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2.1.2. 국가대표
케스킨의 튀르키예 대표팀 데뷔 경기는 4월 24일의 그리스전이었고 그는 1948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케스킨은 튀르키예의 2게임에 모두 출전했지만 튀르키예는 8강에서 유고슬라비아에 1:3으로 패했다.케스킨은 1949년 11월 20일의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 시리아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튀르키예의 7:0 압승에 기여했다. 시리아와 최종 라운드 상대였던 오스트리아가 모두 기권해서 튀르키예는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었지만 튀르키예 역시 소련과의 전쟁 위기가 오자 기권했다.
케스킨은 1951년 이후론 대표팀에 한동안 소집되지 않다가 튀르키예가 1954년 월드컵에 참가하자 케스킨도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1954년 월드컵의 3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튀르키예가 대한민국을 7:0으로 대파할 때 1골 2어시를 기록했다.
3. 수상
3.1. 클럽
- 이스탄불 풋볼 리그 우승 3회: 1943-44, 1946-47, 1947-48(페네르바흐체 SK)
- 밀리 에의팀 쿠파스 우승 3회: 1945, 1946, 1950(페네르바흐체 SK)
- 튀르키예 풋볼 챔피언십 우승 1회: 1944(페네르바흐체 SK)
- 마리프 뮈카파트 준우승 1회: 1944(페네르바흐체 SK)
- 튀르키예 풋볼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47(페네르바흐체 SK)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