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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1 10:05:59

에드워드 H. 포니

에드워드 H. 포니
Edward H. Forney
파일:1000074377.jpg
본명 에드워드 해나 포니
Edward Hanna Forney
출생 1906년 8월 16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사망 1965년 1월 21일 (향년 55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복무 미국 해군
최종 계급 준장
복무 기간 1931 ~ 1959
최종 계급 미국해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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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고 쿠바 아바나, 할리우드, 뉴욕시, 워싱턴 DC에서 성장했다. 1931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1] 아이티, USS 아칸소, 플리머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치며 복무했다.

이후 포트 실에서 포병학교를 수료하며 포병으로 전환했고 제10해병포병연대에서 복무했다. 버트럼 A. 본 중령이 지휘하는 제1해병방공대대에서 복무하던 시기 51구경 캘리버 기관총, 서치라이트, M2 중기관총을 들여와 장비를 강화했다.

1941년 10월 클레이턴 B. 보겔이 지휘하는 태평양상륙군단 소속으로 있다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누벨칼레도니로 이동해 제1상륙군단으로 개편하고 윌리엄 J. 셰어 중령이 지휘하는 제9해병방공대대 관측참모로 있었다.

뉴조지아 전역 렌도바섬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공을 세워 동성훈장[2]을 받았고 중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제3해병방공대대 소속으로 과달카날, 부건빌 전역에서 기지방호를 담당했다. 제3방공대대가 제3해병대공포병대대로 변경하고 과달카날 기지 건설에 참가했고, 사이판, 오키나와 전투를 대비한 훈련을 했으나 참가하진 않았다.

전후 일본 나가사키에서 복무했으며 1948년 대령으로 진급하고 기갑참모학교에서 수학했다. 1949년 태평양상륙군 훈련단 윌리엄 S. 펠러스의 휘하에서 복무했다. 6.25 전쟁 직전 일본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발발하고 육군 제1기병사단에 배속되어 부참모장을 지냈으며 인천 상륙 작전, 서울 진공 작전에 참가해 미국 공로훈장, 항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하지만 중공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선이 밀려나자 흥남 철수작전 당시 민간인들을 태우고 가야한다고 이야기했고 100,000명의 민간인들도 승선해 철수했다. 1951년 귀국해 존 T. 셀던의 후임으로 상륙훈련단장이 되었다.

NATO, 국방부에서 복무하다가 1957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한국 해병대 고문단장을 지냈다. 1959년 준장계급으로 퇴역했고 퇴역 후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요원 신분으로 사이공에 도착했다. 1963년부터 암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았고 1965년 사망했다.

3. 여담



[1] 당시 동기로 존 매케인 주니어, 호레이쇼 리베로 주니어, 로슨 P. 래미지, 버나드 F. 로더, 프레더릭 F. 와이즈먼, 프레더릭 J. 벡턴, 에드워드 J. 오닐, 오스틴 R. 브루넬리, 뱅크슨 T. 홀컴 주니어, 루이스 C. 허드슨 등이 있다.[2] V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