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c5b356> 작위 | <colbgcolor=white,#191919> 양한왕(楊悍王) |
성씨 | 고(高)[1] |
이름 | 순(舜) |
아들 | 고휘(高麾)[2] |
부왕 | 동명성왕(高明聖王)(?)[3] |
생몰연도 | 미상 ~ 28년?[4] |
1. 개요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아들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 않는다.[5]2. 생애
20세쯤에 아버지를 버리고 신라로 간 고순은 서라벌에서 생활하는데 이때 혁거세가 즉위하고 통치할때 포항에서 낚시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이후 행방불명이였다가 백제의 온조가 목격하고 대접했다는 한나라의 사신의 기록에 등장했다. 온조는 고순이 온조의 동생이란걸 알고 기뻐다는 썰이 있다. 왕위에 올을뻔했지만 다루왕이 왕위에 올르고 나서 행방이 불명했졌다.[6]3. 출생과 사망의 대한 논쟁
사실상 정확한 기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고명일기를 바탕으로 다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온조의 기록으로도 제작했다.[1] 부여씨를 썼다는 썰이 있다.[2] 고간전왕(高間戰王)[3] 기록상으로 아들이지만 정확한 증거가 부족해 논쟁거리이기도 하다.[4] 다루왕 즉위이후 행방불명이다. 뇌진탕으로 사망한것으로 추정[5] 태어난 날짜와 사망한 날짜도 정확하지가 않는다.[6] 뇌진탕으로 사망한것로 추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