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의 백파적 출신 군웅에 대한 내용은 양봉(삼국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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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楊鳳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흑산적.2. 생애
후한 말 각지에서 수많은 도적들이 일어날 때 세력을 형성했는데, 자치통감에서는 185년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흑산적들은 출신이 비천해 스스로 붙이거나 서로 부르는 별명이 자가 되었는데, 어떤 점에서 불렀는지 알 수 없다.양봉이 군사를 일으켰고 동시에 장연, 황룡, 장우각, 오록, 우저근, 고유, 유석, 평한, 대홍, 사예, 연성, 나시, 장뇌공, 부운, 백작, 우독 등의 무리가 군사를 일으켰는데, 큰 자는 무리가 2. 3만에 작은 자도 무리가 수천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제는 흑산적을 정벌할 능력이 없었기에 사자를 보내면서 양봉은 흑산교위에 임명되어 산적들을 감독하도록 하면서 효렴과 계를 선발하게 했으며, 이후에 이들이 흩어져 다시 모이지 않았다.
3. 창작물에서의 등장
소설 조자룡 하북제패에서는 조운의 가문인 풍운상단의 위사이자 상산부곡의 둔위로 노노성에서 조운을 만나 인사하며, 풍운상단을 떠나 정양군 장사 겸 선무현령인 공손월을 섬겼고, 장거, 장순의 난이 일어나자 공손월 휘하에서 종군했다.북방의 이민족들이 공격하자 철퇴를 들고 맞서 싸웠으며, 황룡이 혜락의 공격을 막는 틈을 타서 혜락이 탄 말머리를 공격해 낙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