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アクチブハトリ Active Hatori | |
| 출생 | 1986년 4월 21일 | |
| 죽음 | 1991년 12월 28일 (5세) | |
| 성별 | 수 | |
| 털색 | 갈색 (鹿毛, 카게) | |
| 아비 | 서 펜프로(Sir Penfro) | |
| 어미 | 키리마츠카제(キリマツカゼ) | |
| 외조부 | 레이즈 어 보이( レイズアボーイ) | |
| 생산자 | 혼키 목장 | |
| 마주 | 야리미즈 아키노(鑓水秋則) | |
| 조교사 | 데가와 미요조 (후나바시) | |
| 성적 | 10전 10승 (10-0-0-0) | |
| 총상금 | 2425만엔 | |
| 상세 정보 | | |
1. 개요
일본의 경주마. 중상 경기는 커녕 오픈마도 겨우 올라간 정도의 성적밖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관계자들 사이에선 굉장히 평가가 높은 말이다.2. 상세
1988년 후나바시 경마장에서 데뷔한 액티브 하토리는 데뷔 당시 500kg을 넘는 거구를 가졌지만 반대로 발굽이 굉장히 연약해서 금방 다쳤고 가진 능력치에 비해 체력이 모자란 편이었다.그럼에도 워낙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이 말은 신마전을 가볍게 이기고,[1] 2전째에는 이후 카시와 기념과 다이올라이트 기념을 재패하는 후지노 댄서에게도 우마나리(말에게 맡긴 채 채찍을 쓰지 않고 경주하는 것)의 7마신차로 여유롭게 승리한다.
하지만 연약한 발굽이 문제가 되어 2전째 승리 후 휴양에 돌입한다. 진영 측에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남관동 3관에의 도전을 목표로 했으나 너무나 연약했던 액티브 하토리의 발굽은 쉬이 낫질 않았고, 결국 복귀가 가능해 진 시점은 동기의 암말인 로지타가 남관동 3관을 재패하고 지방 최강암말이란 극찬을 들으며 슬슬 은퇴경기를 준비중이던 1990년 1월에서야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복귀 후에는 역시나 그 압도적인 능력을 발휘해 연승을 달리니, 이미 오픈마가 되는 걸 넘어 지방중상을 승리했던 말들 마저 아직 수득상금이 모자라서 겨우 오픈마 컷오프를 채우는 수준이었던 이 말을 피해 다른 경기를 골라 출주하게 되는 정도였다.
이러한 능력을 보이다 보니, 당연히 진영 측에선 슬슬 중상 경기를 시야에 넣게 되었고 첫 중상경기를 카시와 기념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액티브 하토리의 카시와 기념 등록 소식을 들은 다른 후나바시의 유력마들은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이는 카시와 기념을 회피해 카와사키배 등의 다른 경기쪽으로 도망쳐 버린다.
그나마 액티브 하토리와 비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말들이 전부 다른 경기로 도망쳐 버리니 당연히 카시와 기념은 액티브 하토리의 우승으로 결정지어져야 했으나, 기묘한 우연이 그런 액티브 하토리의 중상 도전을 방해한다.
당시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가지기 위해 소련의 서기장이자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방일을 했고,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VVIP의 방일에 신경이 곤두선 일본 정부에선 철저한 교통통제를 해 버린 것이다. 지방경마 특성상 타 지방에서 며칠씩 대기하고 있을만한 여건이 되지 않던 당시 시대상 결국 남관동 공영경마 소속의 말들은 타지역 원정을 포기하고 모두 자신들의 소속 경마장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고 후나바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카와사키배만이 아니라 다른 경기에 나갈 예정이었던 말들마저 모두 카시와 기념으로 돌아와 버리니 1년여의 공백기를 가지고 있던지라 아직 수득상금이 모자랐던 액티브 하토리가 자격 미달로 컷오프가 되어 버린 것.
결국 액티브 하토리의 진영은 이전 다른 경기에서 5마신차로 완봉승을 해 줬던 파워 딕터가 카시와 기념을 우승하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했고, 중상 도전은 다음 기회로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액티브 하토리의 연약한 신체는 다시 말썽을 일으켜서, 다음 경기를 위해 조교를 받던 중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5세의 나이에 요절을 해 버리고 된다.
3. 경마계의 평가
생전 10전 10승 무패, 중상 승리기록은 없지만 그 중상 승리를 다수 이뤄낸 후나바시의 강호마들을 만날 때마다 압도적으로 꺽어버렸던 경주능력 덕에 '후나바시의 괴물'이란 평가를 들으며 관계자들에겐 깊은 인상을 남긴 말이다.후나바시 경마 관계자들은 "만약 액티브 하토리가 건강한 채로 3살 시즌을 보냈다면, 로지타가 남관동 3관을 달성할 순 없었을 것이다"라고 평하며, 타마를 압도하며 10전 10승을 올린 후 사망한 그 생애가 닮았다는 이유로 토키노 미노루의 별칭인 "환상의 더비마"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런 평가를 반영한 것인지, 경마 SLG인 위닝 포스트 시리즈에선 스피드 능력 66을 주었는데, 해당 수치는 지방경마의 더트GI 1승을 올렸거나 GIII 이상의 중상을 다수 승리한 말에게 주어지는 수치이다. 중상 미승리에 겨우 오픈 클래스에 턱걸이 한 말에겐 충분히 과한 수치지만, 그런 수치를 줄 정도의 평가를 받는 말이라는 증거라고 하겠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