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3년 6월 3일 소련 울리야놉스크를 지나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호가 철교와 부딪힌 사고.2. 사고 내용
알렉산드르 수보로프는 1981년에 슬로바키아 코마르노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배로, 러시아 제국의 유명한 장군이었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에서 이름을 따왔다.
볼소돈스크 강 선박 회사(Volgodonsk River Shipping Company) 소유의 이 배는 길이는 135.7m, 너비 68m, 갑판은 4개였다. 3개의 엔진으로 3천 마력의 힘을 내며, 최대 속도는 시속 16마일(약 시속 29km) 이었다. 내부에는 레스토랑 2곳과 바, 댄스장, 선내 극장 등이 있어 고소득층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번 탑승하는데만 450 루블이 들었다. 주로 러시아의 강을 떠다니며, 관광객들의 관광을 책임졌다.
1983년 6월 3일, 알렉산드르 수보로프는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출발해 볼가강을 따라 모스크바로 향하는 2주간의 항해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볼고그라드와 카잔, 사라토프등을 들리는 관광 황해였다. 안에는 승객 330명, 승무원 50명, 스태프 35명, 여기에 더해 승무원과 직원들의 친인척까지 티켓 없이 탑승했다. 추정 인원은 약 438명으로, 한계정원보다 많이 탑승했다. 선장은 블라디미르 베니아미노비피 크레이메노프였다.
오후 9시 40분, 배는 울리야놉스크로 최대 속도인 16마일로 항해했다. 인근 지역의 속도 제한을 어겼다. 한편 선내 극장에선 영화 상영이 있어 상당수의 승객들이 맨 윗층의 선내 극장에 모여들었다. 도시의 야경을 보러 올라온 승객도, 댄스장에서 춤을 추던 사람도 많았다.
새벽부터 일한 선장은 잠시 눈을 붙이러 가느라 항해를 아직 미숙했던 조타수에게 맞겼다. 네비게이터 미텐코프는 항해를 하면서 동시에 소설을 읽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갈 길을 제대로 파악 못했고, 배가 지나가기엔 철교와 맞닥뜨리게 됐다. 철교엔 따로 전등 같은 표시가 없어 배에서 제때 눈치채지 못했다. 오후 10시 45분, 배는 강 위의 다리와 부딪혔다. 배 전체에 날카로운 금속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맨 윗층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다리를 피해 강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부딪히면서 배의 윗부분이 깎여나갔다. 그 중에는 승객들이 잔뜩 모여있던 선내 극장, 댄스장도 있었다.
배 위는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잔해는 그대로 다리 위에 남아있었다. 이때 목재와 곡물, 그리고 석탄을 실고 가던 11량의 화물열차가 시속 43마일로 잔해와 부딪혀 그대로 탈선했다. 다리 위에서 간신히 살아있던 사람들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배는 300m를 더 간 뒤에야 멈췄다.
40분만에 구조대가 도착해 사람들을 구조했다. 다리를 피해 강으로 뛰어내린 사람도 구조했다. 한 다이버는 시신 수습을 위해 너무 오래 잠수해서 잠수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인근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 찼다. 화물열차 충돌로, 화물열차에 실렸던 곡물과 석탄가루를 상처에 잔뜩 뒤집어 쓴 환자도 많아 수술에 지장이 생겼다.
사고로 176명이 사망했다. 시신들은 찌그러진 잔해에 끼고, 강에 빠져 수습하는데는 1달이 넘게 걸렸다. 몇몇 시신은 훼손이 너무 심해 신원 파악이 힘들 정도였다.
3. 사고 이후
소련에서는 사고를 최대한 숨기기에 바빴다. 울랴나보스크로 오는 사람들을 감시했고, 언론들을 통제했다. 생존자들도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사고 규모에 비해 뉴스는 늦게 나왔다.조타수와 네비게이터도 사고로 사망해 책임은 선장에게로 돌아갔다. 선장은 사고로 갈비가 부러지고, 신장이 이탈했다. 선장은 징역 10년형을 받았으나 건강이 안좋아져 6년만에 풀려났고, 1990년 사망했다.
1984년 4월, 알렉산드르 수보로프호는 수리가 끝나 2020년 까지 계속해서 운용됐다.
2000년엔 사고가 난 철교 인근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추모비 옆에는 사고 당시 망가진 철교와 잔해도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