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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2-28 01:45:05

안정석

성명 안정석(安貞錫)
생몰 1883년 9월 13일 ~ ?
출생지 경상남도 부산부 부산진구 우암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정석은 1883년 9월 13일 경상남도 부산부 부산진구 우암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3년 김경희(金敬喜)·황애덕(黃愛德) 등과 함께 여성들의 항일구국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했다. 송죽회는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을 고루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회비와 자수 등을 통해 군자금을 모금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에 전달했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그녀는 평양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광성학교 및 숭의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집을 모의 장소로 제공하고 항일격문, 태극기 등의 제작에 필요한 경비도 부담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녀는 3주일 동안 가혹한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났고, 1919년 11월 감리파와 장로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통합하여 확대·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의 회장에 선임되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의 부서를 갖추고 평양을 비롯한 서북지역의 부인회 조직을 동회의 지회조직으로 흡수하였으며 본부는 지회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었다. 또한 대한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는 데 사력을 기울여 2,100원의 군자금을 확보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체포된 그녀는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안정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