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도정(安康都正) 1430∼ ? 파명:효령대군(孝寧大君)
대군의 7남이며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서 낭장(郞將) 증 병조판서 유례(有禮)의 증손녀이고 군수 증 찬성 밀(密)의 손녀이며 인효(仁孝)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창선대부 안강정(安康正)에 제수된 후 1476년(성종 7) 3월 9일, 1478년(성종 9) 3월 19일, 1479년(성종 10)에 성종대왕이 효령대군 저택에 거둥하여 위로잔치를 베푼 자리에 입시하였다.
1489년(성종 20) 12월 16일 문소전(文昭殿)에 입직할 때 수복노(守僕奴)끼리 싸우고 또 지의(地衣 : 제사때 쓰는 돗자리)를 태운 일을 계달(啓達 : 보고)치 않은 책임으로 직첩(職牒)이 회수되었으나 곧 환급(還級)되고 명선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배위는 진주류씨(晋州柳氏)와 함평이씨(咸平李氏)로 슬하에 7남 2녀를 두었으며, 아들 습계군(習溪君) 효의(孝議)는 1493년(성종 24) 윤 5월 9일에 실시된 종친시예(宗親試藝)에서 차석을 차지하였고, 손자 종성령(鍾城令) 구(球)는 주기학파(主氣學派)의 선구자인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 들어가 스승이 주창한 그 학설을 계승하여 체계화 하였으며 증손 정랑(正郞) 해구(海龜)는 1559년(명종 14) 정시문과에서 병과로 합격했다. 현손 완흥군(完興君) 원영(元榮)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에, 현손 전풍군(全豊君) 신(愼)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각각 녹훈되었다.
묘는 실전되었고 1981년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광덕산 을좌에 설단하였다가 1989년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방성리 산192번지 을좌에 천단(遷壇)하였고 단비(壇碑) · 상석 · 석등 및 문인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