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801년 9월 8일 출생에 865년 2월 3일[1] 에 사망한 가톨릭 성인.2. 생애
프랑스 아미앵(Amiens) 근교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성 안스카리우스(Anscharius, 또는 안스카리오)는 5세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814년경 피카르디(Picardie)의 옛 코르비(Corbie) 수도원(베네딕토회)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826년에 그는 선교사로서 덴마크에 갔으나 스웨덴에 관한 관심이 더 커서 3년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829년에 스웨덴으로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돌아와 새로운 코르비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832년에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4세(Gregorius IV)에 의해 함부르크의 주교로 축성되었고, 스칸디나비아 백성들과 슬라브인들을 돌보라는 교황의 명을 받았다. 845년에는 바이킹(Viking)의 침입으로 13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해오던 함부르크가 파괴되어 큰 좌절을 겪었고, 848년에는 브레멘 교구와 파괴된 함부르크 교구의 합병으로 브레멘-함부르크 대교구가 설립되면서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에 의해 초대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즉각적으로 다시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돌아가서 놀라운 정열로 선교 활동을 재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같은 성공의 그의 뛰어난 설교력, 엄격하고 거룩한 생활 그리고 수많은 기적의 힘이었다. 그러나 성 안스카리우스는 865년 2월 3일 브레멘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사후 그 모든 선교 사업들이 중단되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는 아직 그리스도교가 뿌리 내릴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 안스카리우스는 '북유럽의 사도'로 불리며, 스칸디나비아의 선교사이자 사도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안스가리우스(Ansgarius)로도 불린다.
3. 여담
리틀 미셸(Kleiner Michel)이라는 함부르크의 가톨릭 교회에서 그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다. 종교개혁 때 대부분을 잃어버렸고 오른팔만 남은 상태이다.
[1] 그의 축일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