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산스크리트어: अश्वमेध고대부터 근대까지 행해진 인도의 제사의식.
힌두교의 슈라우타 전통이 뒤따른 말 희생제 의식이었다. 고대 인도 왕들이 제국의 주권을 증명하기 위해 아슈바메다를 행했다.
2. 과정
고대 인도에서는 북인도 혹은 남인도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구축한 왕들이 말을 풀어 자신들의 영토를 순례하게 했는데 이때 말들이 탈주하거나 길을 잃지 않게 크샤트리아을 풀어 이 말이 아무 문제없이 새로운 영토를 1년간 돌게하고, 이후 돌아오면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식을 치르는데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으나 문제는 공물로 바쳐진 이후 그날밤에 왕비[1]가 죽은 말의 시체로 특별한 의식을 치르거나 보여주기 식으로 의식을 치르게 하였는데 이게 바로 아슈바메다다.[2] [3] 후에 영국측에서 남긴 연구자료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의식들에서는 왕비가 특정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말의 시체와 함께 천으로 덮어두기만 했다는 서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근대 인도인들 입장에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후대로 갈수록 가라로 떼운 듯하다. 다만 영국측 자료를 보면 아마 베다시대에 실존했던 의식의 잔재라고 묘사를 한 점을 보면 마하바라타가 실제로 벌어졌던 시절에는 FM대로 했던 모양.만약 해당의식에 쓰이는 말들을 새로운 영토나 기존 영토에서 오지 못하게 하거나 죽이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반란군으로 규정되어 그 지역을 합법적으로 토벌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인도는 잦은 내란을 겪어야했다. 실제로 마하바라타 초반부의 80퍼센트가 아슈바메다에 대한 준비와 이로인한 문제들 일 정도로 인도에서는 문화적 비중이 큰 제사였다.
3. 여담
국내 최고의 남아시아 전문가인 강성용 교수가 인도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화라고 언급했고 전세계 사람들이 인도인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아슈바메다를 꼽았다.마하바라타에서도 쿠룩셰트라 전쟁 이후 하스티나푸라 왕국의 정권을 잡은 판다바 5형제가 이를 실행한 바 있다. 주변 왕국들을 신나게 털어먹던 아르주나는 아내가 카우라바 100형제의 여동생 두샬라였던 관계로 쿠룩셰트라에서 카우라바 편을 들어 싸우다가 전사한 자야드라타가 생전에 다스리던 왕국 신두에서도 비슷한 일을 행하나, 당시 왕이었던 자야드라타와 두샬라의 아들이 전사하자 두샬라가 그 아들, 그러니까 자기 손자를 데리고 나와 '내 시아버지[4], 내 남편, 내 아들이 전부 그대의 손에 죽었는데 이제 이 아이까지 죽여서 대를 완전히 끊으시려는 겁니까'라 항의하니 아르주나도 찔렸는지 물러난다. 이후 아르주나는 다시 아슈바메다를 행하던 중 마니푸르 왕국에서 그곳의 공주였던 치트랑가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인 바브루바하나에게 사망하고, 아르주나와의 사이에서 이라반을 낳은 나가 울루피가 아르주나를 되살린다.
[1] 왕비가 없다면 가장 등급이 높은 후궁을 썼다고 한다.[2] 기존 서술은 다소 오류가 있는데 야주르베다 원문을 보면 분명 죽은 말을 대상으로 의식을 치른다는게 여러차례 나온다.[3] https://www.holybooks.com/wp-content/uploads/The-Yajur-Veda-Taittiriya-Sanhita-Taittiriya-Sanhita.pdf, https://www.reddit.com/r/atheismindia/comments/iefu9l/ashvamedha_yajna_with_sources/?rdt=64594 상당히 노골적이고 다소 혐오스러운 묘사일 수 있으니 주의바람[4] 자야드라타의 아버지는 '내 아들의 머리를 땅에 떨어트리는 자는 머리가 박살날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는데, 아르주나가 계속 화살을 날려 자야드라타의 머리를 띄우자 떨어진 곳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자야드라타의 아버지의 무릎 위였다. 깜짝 놀란 자야드라타의 아버지가 일어나려 하자 머리는 땅에 굴러떨어졌고, 자야드라타의 아버지는 자신이 내린 저주대로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