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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8:49:44

아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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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1. 개요

십이국기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성(姓)은 보쿠(朴), 씨(氏)는 조(丈) 이름은 코(高). 자는 아센(阿選). 대의 선왕인 교왕(驕王)시절에 군에 들어가 금군 중군 장군에 올랐다. 군재는 그 교소와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받을 정도였으며, 왕과 동료, 부하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무패의 장군이었다. 타이키의 연국 방문에도 동행하는 등 교소의 즉위 직후에도 중용되었다.

문주의 난이 일어나 교소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는데, 행방불명되었다. 타이키가 교소를 지원하고자 사령 고란과 산시를 보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수도 백규궁을 수비하던 아센은 돌연 타이키의 뿔을 잘랐다. 타이키는 본능적으로 명식을 일으켜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센은 교소가 죽었다고 선언한 뒤 대의 가왕으로 즉위했다.

사실 일련의 모든 상황은 전부 아센이 계획한 것으로 문주의 토비들을 사주해 폭동을 일으키게 유도하고, 교소가 두고볼 수 없는 철위를 공격하게 해서 교소 본인이 직접 문주로 향하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문주로 향한 교소가 행방불명이 되었고[1], 타이키 또한 뿔을 자르고 유폐하려 하였으나 타이키가 명식을 일으키고 사라진 것이다.

이 아센의 반란을 교사한 인물은 다름아닌 교소의 휘하였던 로산이었다. 로산은 아센의 역심을 부추기고, 아센에게 요마를 부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줘 이력을 사용해 교소를 함양산에 매장해버리는데 협력하고 기린의 뿔을 잘라 타이키를 유폐할 것을 조언하기도 했으며, 빈만을 빌려줘 우코의 자갑(赭甲)부대가 교소를 베어버리는 것도 협력했고, 차섬을 빌려줘 조정의 인물들을 살아있는 인형으로 만들어 아센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협력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나도 미심쩍었던지라 바로 승주후가 난을 일으켰고, 교소의 고향이었던 위주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반란이 일어났다.아센은 이를 잔혹하게 학살로 제압하고 이후 주후들은 아센에게 변절하거나 아센의 하수인들이 주후가 되면서 순식간에 조정은 아센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나 위왕이 된지 불과 1년만에 정사에 흥미를 잃고 그대로 육침에 박힌 채 춘관장 초운(張運)에게 총재를 맡긴 후 그대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2]

아센이 난을 일으킨 까닭은 교소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군문에 든 후 파격적인 속도로 승진을 거듭해 금군 장군이 된 아센이었으나,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교소가 경이적인 속도로 승진을 거듭, 서주사 장군으로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자신과 견줄만한 호적수의 등장에 아센은 처음엔 내심 호승심을 불태우며 교소와 선의의 경쟁을 하고자 했다.
아센이 교소에게 지지 않기 위해 폭군의 명령도 군말없이 이행할 때, 교소는 왕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 장군직을 사임해 선적을 반납했다. 교소는 더 먼 곳을 바라봤다. 애초에 아센과 공을 다툰다는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자부심 강한 아센은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와 굴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교소에 대한 질투와 합쳐져 증오가 되었다. 교소가 다시 왕의 신임을 받아 복직되고, 아센은 공적에 몰두했으나, 이미 우열이 가려진 뒤였다. 교소에게 패배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승산도 함께하지 못했다. 교소는 왕이 되어 따라잡을 수 없는 곳까지 격차를 벌렸다. 설령 교소의 왕조가 단명해도, 성이 같은 아센은 다음 왕좌에 오를 자격조차 없으니 결국 아센은 교소를 죽인다 한들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아센은 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둬버리는 방법을 택해 왕좌를 차지한 것이다.

이후 타이키가 신왕 아센을 외치며 돌아오자 타이키를 반 감금한 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대로 방치했으나 의외로 타이키가 조정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것을 보며 타이키의 주변 사람들을 떼어내며 타이키의 고립을 즐겼으며, 처음부터 신왕 아센따위 믿지 않았다며[3] 교소를 선택한 네가 나쁘다며 교소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라며 교소를 처형해버릴 계획을 세운다. 결국 마주에서 교소를 사로잡은 아센은 교소에게 자신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어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 죽게하려 교소를 처형장에 세우지만 타이키가 교소를 구출해 달아나버렸다.

이후 과정은 알 수 없지만, 교소가 탈출해 강주성에 조정을 다시 세운 3달 뒤, 토벌되었다고 한다.
[1] 교소는 아센의 명령을 받은 우코(烏衡)가 이력이라는 요마를 이용해 함양산에 매장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교소는 신선이라 생명이 질긴데다 왕을 위한 보옥인 팔찌 덕분에 죽는 것은 면했고, 6년동안 강을 통해 흘러들어는 음식으로 버티며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2] 왕으로서 할 수 있는 것에 큰 제약이 있었기도 한데, 세이라이(正賴)와 가신(卧新)이 국탕(국가재산) 빼돌려 재정을 제대로 굴릴 수 없었다.[3] 성(姓)이 같은 자는 차기 왕이 될 수 없다고 이미 로산에게 들었으며, 자신이 한 잔혹한 행동을 보고 자신에게 천의가 내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