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아사히 신문이 2000년 투표로 선정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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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 무라사키 시키부 | 시바 료타로 | 미야자와 겐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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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타케오 | 무라카미 하루키 | 엔도 슈사쿠 | 세이 쇼나곤 | 요사노 아키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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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 슈헤이 | 시마자키 도손 | 나카하라 츄야 | 고바야시 잇사 | 세리자와 고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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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아베 코보 [ruby(安, ruby=あ)][ruby(部, ruby=べ)][ruby(公, ruby=こう)][ruby(房, ruby=ぼう)]|Kōbō Abe | |||
본명 | 아베 기미후사 (安部公房) | ||
출생 | 1924년 3월 7일 | ||
일본 제국 도쿄부 키타도시마군 타키노가와마치 | |||
사망 | 1993년 1월 22일 (향년 68세) | ||
도쿄도 타마시 | |||
직업 | 소설가, 극작가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 <colbgcolor=#fff,#191919>치카부미제1심상소학교 (졸업) 호텐제2중학교 (졸업) 세이조고등학교 (졸업) 도쿄대학 의학부 (의학 / 학사) | |
활동 기간 | 1948년 – 1993년 | ||
묘소 | 도쿄도 카미카와 영원 | ||
부모 | 아버지 아베 아사요시 어머니 아베 나미[1] | ||
배우자 | 아베 마치코 (1947년 결혼) | ||
자녀 | 딸 아베 네리 | ||
장르 | 소설, 희곡 | ||
데뷔작 | 마무리 길의 표지에 (194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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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소설가, 극작가, 연출가. 본명은 한자를 훈독한 키미후사.도쿄부, 카타토시마군 (현재의 도쿄도 키타구) 출생. 소년기를 만주에서 보냈다. 고교시절부터 독일의 시인 릴케와 철학자 하이데거에 심취했으며, 전후 부흥기에 다양한 예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르포르타주 등을 익히는 등, 작품의 폭을 넓혀 미시마 유키오와 함께 제2차 전후파 작가라 칭해진다[2]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30개국 이상 번역 출판되었다.
주요 작품은 단편집 벽에 수록된 S•카르마 씨의 범죄, 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상자 사나이, 밀회 등. 희곡으로는 친구, 에노모토 다케아키, 봉이 된 남자, 유령은 여기에 있다, 등등. 극단 아베 코보 스튜디오를 세워 배우를 육성했으며, 자신이 연출한 무대로도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말년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감이 되기도 했다.
서구인들이 생각하던 일본 문학은 사무라이나 벚꽃이 등장하는 서정적이고 고전적인 것이었으나, 아베 코보는 의사를 지망했던 경력을 살려 SF적이고 현대를 배경으로 삼는 소설을 주로 썼다. 내용은 굉장히 난해한 편이며, 소설에 쓰여진 의학 기술은 당시에는 창작이었으나 지금은 연구만 조금 더 하면 실용화 할 수 있는 레벨인 것이 많다.
일본의 카프카로도 불리며, 그의 소설 제4간빙기를 소련의 아르카디 스트루카츠키가 번역[3]했다고 한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후보였다. 상은 결국 오에 겐자부로가 탔다. 사망한 작가는 문학상을 탈 수 없다.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팬이었으며, 당시엔 아직 보급되기 전인 신디사이저를 구입하여 사용했다는 의외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 신디사이저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3명 뿐이었다. NHK의 인터뷰 방송에서 직접 제작한 효과음등을 공개하기도 함.
취미의 영역을 넘어선 사진 매니아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아버지는 만주의과대학의 의사였으며, 1924년 1세 때에 가족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유 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때엔 실험적인 영재교육을 받은 적이 있으며, 작문을 좋아했다 한다. 중학교까지는 만주에서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 일본의 학교에 들어갔다.수학이 특기였는데, 고교 시절에 수학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작품 속에서도 수학이나 물리 공식 등을 만들어 쓰거나 인용하기도 한다. 곤충채집에도 흥미가 있었으며 검도도 했고 100미터를 12초대로 달리는 등, 운동도 매우 잘했다.
1943년에는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고교를 조기 졸업하여 도쿄제국대학 의학과에 정신과 의사가 될 생각으로 입학. 1944년 20세가 되던 때에 문과계 학생의 징병유예가 풀리고 학도병으로 끌려가던 와중에 '다음엔 이과계가 징병되겠지'라는 생각과 '패전할 날이 머지 않았다'라는 소문을 듣고 가족이 걱정되어 배를 타고 만주로 돌아가버렸다. 도중에 들렸던 북한에 대한 인상은 훗날 희곡의 소재가 된다.
1945년엔 집에서 병원을 차린 아버지를 돕다가 종전을 맞이한다. 그 해 겨울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하여 진료를 하던 아버지가 감염되어 사망. 1946년에 점령군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며 푼돈을 모아 버텼다. 그 해 연말에 배를 타고 일본으로 귀국. 그러나 상륙 직전에 콜레라에 걸려 항구에서 약 10일간 계류되어 발작증상과 정신이상 상태를 겪음. 이때의 체험도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1947년 1월에 조부모가 계시는 홋카이도에 도착하나, 가족을 남겨두고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도쿄로 돌아가 복학. 그러나 극도의 빈곤과 영양실조로 학교에는 거의 가지 않은 채 굶주림에서 헤어나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하며 방황. 이때엔 불신과 증오로 늘 화가 난 듯한 상태였다.
3월에 미술을 전공하던 대학생과 결혼. 신혼 생활은 지인들의 별장을 전전하며 보냈다.
노트에 끄적인 장편 소설을 고교시절의 독일어 선생님에게 보여주게 되는데, 이 소설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은 선생님은 이 작품을 문예집 '근대문학'의 창간자 중 한 명에게 소개하여 잡지에 실리게 된다. 이듬해에는 단행본으로도 나오게 된다. 정작 본인은 소설을 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철학 논문 같은 것을 쓴 것이 소설처럼 되었다고 한다.
1948년 3월에 대학을 졸업하지만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의사의 길을 단념한다. 꾸준히 잡지에 작품을 싣거나 여러 창작 모임의 활동을 함. 생활비는 아내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수업과 신문, 잡지에 삽화를 팔며 충당했다.
1951년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근대문학 2월호에서 아베의 단편인 벽-S•카르마 씨의 범죄가 발표된다. 이 작품은 제25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이후에 S•카르마 씨의 범죄라고 이름을 바꾸고, 다른 단편들을 모아 최초의 단편집인 '벽'으로 출판된다. 1954년 즈음에 조건부로 일본문학 학교의 교무주임을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아들임.
1962년에 발표한 '모래의 여자'를 시작으로 장편을 쓰기 시작하며, 1964년에 타인의 얼굴을, 1967년에는 불타버린 지도를 집필했다. 모래의 여자, 타인의 얼굴, 불타버린 지도 세 작품을 흔히 '실종 삼부작'이라고 부른다. 1972년에 상자 사나이를, 1977년에는 밀회를 썼다.
모래의 여자는 세계 30개국어로 번역되어 아베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올려주었다. 아베의 평가는 특히 공산주의권인 동유럽에서 높았으며, 서유럽을 중심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미시마 유키오와 대조적이다. 실제로 아베 본인이 공산당에 참여하기도 했었다[4]. 미국에서의 평가도 높았는데, 불타버린 지도는 뉴욕 타임즈의 외국문학 베스트5로 뽑히기도 했다.
1973년에는 '아베 코보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연극활동을 시작한다. 1979년에 미국에서 공연한 작품의 참신한 연극기법이 반향을 불러 이후 각국의 연극계에 영향을 주었지만, 일본에서는 생각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여 1980년대에 활동을 정지한다.
이후로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격도 내향적으로 바뀌며, 폐쇄적인 공간을 주무대로 쓰기 시작한다. 또한 사생활 쪽으로도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를 하지 않게 되어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199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 새 소설을 집필하다 뇌출혈로 쓰러졌고, 퇴원 후에도 요양을 계속했으나 1993년 1월 20일부터 병상이 악화되어 22일에 급성심부전으로 68세에 사망했다. 사후에 미완으로 남은 유작들이 플로피 디스켓에서 발견되었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기한 방식으로 유작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5]
3. 주요 작품
- S・카르마 씨의 범죄 (S・カルマ氏の犯罪, 1951)
- 아베 코보가 27세 때 발표한 단편 소설로, 단편집인 벽에 수록되어 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일을 하다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 한 사내가 장부에 사인을 하려 하자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명함이나 수첩에도 이름만 홀라당 사라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간 남자는 자신의 책상에서 일하고 있는 '명함'을 보게 된다...
- 모래의 여자 (砂の女, 1962)
- 학교의 선생이자 곤충학자인 한 사내가 곤충채집하러 들른 모래언덕에 자리잡은 부락에서 구멍 아래 있는 집에 갇히게 되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 1964년 영화화되었다.(포스터 보기)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 타인의 얼굴 (他人の顔, 1964)
- 주인공이 남긴 일기노트 3권과 동봉된 편지를 주인공의 아내가 읽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도중에 듬성듬성 삽입되어 있는 각주가 특징.[6]
실험으로 얼굴이 없어진 한 남자가 좌절 끝에 타인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어낸 후에 벌인 기이한 행각을 기록한 수기를 아내에게 남긴다는 내용이다. 왠지 다크맨에 영향을 준듯.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1966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포스터 보기) 오우삼이 페이스 오프를 만들때 많이 참고했다. 나카다이 타츠야 주연.
- 불타버린 지도 (燃え尽きた地図, 1967)
- 흥신소 조사원인 주인공이 한 남자의 실종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를 개시하지만, 실종자의 아내의 무심한 태도와 실종자의 처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피살, 실종자의 직장 부하의 자살 등을 겪고 혼돈에 빠진 끝에, 어떤 어둠의 세력에게 구타당하고 기억을 잃어버린채 자신도 실종자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
- 상자인간 (箱男, 1973)
- 어떤 남자가 상자안에서 살아간다는 내용. 옴니버스 프로그램의 에피소드로도 제작되었다. 한국에도 번역출판되어 있다. 말 그대로 거리에 방치된 골판지 상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나이의 이야기로 난해한 내용이 맞는데 묘하게 재밌다.
- 벽 (壁, 1981)
- 아베 코보 단편집. 2000년 한국에도 출간되었는데, 왠 분필로 그림을 실체화 시키는 남자의 에피소드에는 왠 미스코리아가 등장한다.(...)
[1] 혼인 전 성은 이무라[2] 미시마 유키오와 여러모로 대조적 삶을 살았다. 둘은 동년배인데 미시마는 문과 최고학부인 도쿄대학 법학과를 나왔고 아베는 이과 최고학부인 도쿄대 의학과를 나왔다. 미시마는 우파, 아베는 좌파. 미시마는 유미주의 계열, 아베는 실존주의 계열. 미시마는 서방세계에서 인기가 높았고, 아베는 동구권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작가로서 서로 호평해주는 관계였고 중국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3] 아르카디는 그 당시 소련군 언어 장교로 군사언어학교에서 영어와 일본어를 장교들에게 가르쳤다.[4] 그러나 1956년 헝가리를 침공한 소련을 비판하다가 일본 공산당의 미움을 사고, 1961년 일본 공산당 강령 개정에 반대해서 당에서 제명 당한다.[5] 일본인 중 처음으로 워드프로세서로 소설을 집필한 작가이다. 1984년부터 사용. 때문에 초기 일본 워드프로세서 개발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 작가였다.[6] 주인공이 일기를 사흘 동안 편집하며 붙여놓은 보충 설명이나 변명 등이 괄호로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