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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7:29:13

아무도 모른다(드라마)/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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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화3. 2화4. 3화5. 4화6. 5화7. 6화8. 7화9. 8화10. 9화11. 10화12. 11화13. 12화14. 13화15. 14화16. 15화17. 16화

1. 개요

SBS 월화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모아놓은 문서이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1화

땅 한가운데 홀로 피어난 꽃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수정
수정: 요정 같다. 영진아, 얘 돌연변이 아냐?
영진: 엽록소가 없어서 광합성을 못해. 그래서 온통 하얀 거야.
수정: 그럼 뭐 먹고 살아?
영진: 음… 썩어가는 동물, 식물의 사체나 배설물한테서 영양분을 얻는대.
수정: 음~ (잠시 생각하다가 퍼뜩) 아! 징그러워…
영진: (웃으며)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워. 기특하기만 하구만. 냄새나는 거 먹어치워서 깨끗하게 해주는데.
수정: 애늙은이. 너 가끔, 너희 할아버지처럼 말하는 거 알아?
영진: 그게 왜?
수정: 됐다. 됐어. 이름은 뭐야? (영진이 웃기만 하고 가르쳐주지 않자) 뭔데 그래?
영진: 나도수정초.
수정: 수정? 진짜? (반갑게 꽃에게 인사하며) 나도 수정이인데. 너 어쩜 이렇게 청초하고 아름답니? (꽃밭침을 하며) 나.처.럼?
영진: 그만 가자.
수정: (웃으며 따라가다가 갑자기 멈칫하는) 근데 영진아, 저 밑에 파보면 시체 나오는 거 아닐까?
(그 말에 잠시 스산한 정적이 감돌다 이내 둘 다 웃음 터지며)
영진: 말이 되는 소릴 해! 가자.
수정: 가자!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수정의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떨리는 손으로 받는 영진)

차영진? …아닌가.
맞아.
이제야 받네?
전활 받았으면…
살 수도 있었겠지. 원래는 널 죽일라 그랬는데, 넌 내 기준에 맞지가 않아서. 대신 걜 죽였어.
(울먹이며) 죽일 거야…
넌 내가 무섭지 않아? 내가 너 찾아갈 수도 있는데.
내가 널 찾아낼 거야.
그럼 이 말을 해줘야겠네. 성흔은 이제… 일어나지 않아. 최수정이 마지막이었어. 그러니까 넌, 날 찾을 수 없어.
찾을 거야. 평생이 걸려도… 평생이 걸려도 넌 내가 찾아. 그러니까, 그때까지 꼭 살아 있어.
너 마음에 든다. 빨리 만나고 싶어지네. 우리 꼭 보자?
영진: 젊은 남자였어요.
인범: (다급) 뭐래? 지가 범인이래? (끄덕이는 영진) 그리고 또?
영진: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 이내 결심한 듯) 다시… 곧 시작할 거라고 했어요. 이번이 절대 끝이 아니라고.
성흔 연쇄살인사건의 재수사가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원망 섞인 울분을 토해해는 1차 사건 피해자 어머니
피해자 어머니: 이제 와서 왜? 지금껏 손 놓고 있다가 왜 이제야 애들 유품으로 검사를 한다는 거야! 어?
재홍: 어머니, 진정하시고요. 저희가 그동안 안 한 게 아닙니다. 어, 지금은 기술이 좋아졌으니까, 다시 보면 뭐라도 혹시나 다른 증거가 나올 수 있어서…
피해자 어머니: 이럴 거면 애초에 돌려주질 말던가!
진수: 당시에는, 이런 세상이 올 줄 저희도 몰랐죠, 어머니.
피해자 어머니: 당신들, 이거 하지 마. 우리 집은, 내 딸애 물건이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우리 집만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다른 유족들도 그만 들쑤셔. 헛된 기대 품게 하지 말라고!
병희: 아니, 딸 유품 본인이 다 태워 없애놓고, 이제 와서 배알 꼴린다고 업무 방해하면 안 되죠.
영진: (보다 못해 나서며) 김 경사님. 말 가려서 하세요.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하며)
피해자 어머니: 당신도 참 징글징글하네. 황인범 형사랑 우리 집에 처음 왔던 게 17년 전이었지? 설마, 그때부터 계속 붙들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영진: 경찰은, 성흔 연쇄살인사건을 포기한 적 없습니다.
피해자 어머니: 그럼, 증거 붙들고 있었어야지! 우리가 달라고 지랄을 해도, 니들이 가지고 있었어야지…!
"축하합니다. 수고했어요."
주머니에 넣어 둔, 영진의 승진을 축하하는 은호의 쪽지
수정 어머니: 꿈에 수정이가 나왔어. 슬픈 얼굴로 그러더라. 엄마. 영진이, 힘들어. 불쌍해… 계속 그러고 살 거야? 그놈 잡을 생각만 하면서?
영진: 저 경찰이예요. 그게 제 일이잖아요.
수정 어머니: 말 잘했다. 일이어야지. 그게 인생이 되면 안 되지.
그놈… 죽었다고들 하더라. 그런 놈은 사람 죽이는 거 못 멈춘다고. 20년 동안 잠잠한 걸 보니, 내 생각에도 죽었지 싶어.
영진: 저는 살아 있으면 좋겠어요.
수정 어머니: 그런다고 찾아낼 수 있어? 20년 동안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또 그놈이 일을 벌이면 모를까.
영진아. 포기할 수 있을 때 포기해.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게 네 인생의 전부가 될 수도 있어.
고은호 건들지 마라. 걘 내 밥이니까.
은호에게 책을 던진 아이들과 민성에게 위협적으로 경고하는 동명
영진이 구해준 날 이후, 매일같이 영진의 집 앞에 머물렀던 은호
(계단에서 잠들어있는 은호를 살짝 흔들어 깨우는 영진)
은호: (반가워하며) 아줌마.
영진: 엄마가 또 놀다 오랬어?
은호: (고개를 저으며) 아줌마 기다렸어요.
영진: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은호: 그래서, 매일 매일 기다렸어요. 아줌마는, 내 영웅이에요.

(새싹이 자라난 화분을 앞에 두고)
영진: 일주일에 두 번씩, 뿌리까지 흠뻑 젖을 정도로 주면 돼.
은호: 나 때문에 죽으면 어떡해요?
영진: 괜찮아. 넌 어린애니까. 실수를 해도, 잘못을 해도, 아직은 괜찮아.
은호: 성흔 연쇄살인… 범인 이대로 잡히지 않으면 어떡해요? 계속 찾을 거예요? 언제까지요?
만약에요… 만에 하나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요, 아줌마는 몰랐으면 좋겠어요.
영진: (덩달아 심각해지며)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고.
은호: 작은 방 문이 열려있었어요.
영진: 설마 들어갔어? 열려 있다고 들어가? 뭐가 있는지 알면서,
은호: 그래서 각오하고 들어갔는데… 끔찍했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주 잠깐이었지만, 괴로웠어요. 그런데 아줌마는 그런 걸 지금까지…! 범인은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영진: (작게 한숨을 쉬며) 그러니까, 너한테 나쁜 일이 생겨도 내가 몰랐으면 좋겠다는 그 시건방진 소리는 다 나 생각해서 한 말? 응?
(미소를 지으며) 나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 은호야,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자신을 살린 은호에게 신생명의 복음을 맡기는 기호
기호: 신성중학교 2학년 2반 고은호. 은호야, 오늘 너의 의로운 행위는 머지않아 너에게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올 거야. 그런데 지금 당장 내가 줄 수 있는 게, (책을 내미는)
이건 오늘 네가 구한 내 생명만큼 중요한 물건이야. 내가 다시 찾으러 갈 때까지 네가 잘 갖고 있으면, 내가 그 은혜는 똑똑히 갚을게.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

3. 2화

19년이라는 시간을 애타게 찾았던 성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서상원을 마주한 영진
영진: 왜? 왜 이제 와서 다시! 수정이가 마지막이라고 했잖아.
상원: 당신이 원한 거잖아요.
영진: 뭐?
상원: 당신이 꾸며낸 얘기가 실제로 일어난 거예요.
영진: 나 때문이라고? 19년 전 내 거짓말 때문에 이제 와서 사람을 죽인 거야!
상원: 당신이 원한 게 아니었나? 그럼 왜?
영진: 그렇게 말하면 당신이 날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19년이나 지났어. 19년이나 지났는데 왜!
상원: 난 지금까지 숨어있던 게 아니에요. 그동안 큰 시험에 빠져 있었죠. 그래서 그 여자에게 벌을 내렸어요. 그리고 나서 당신을 떠올렸죠.
영진: 벌? 당신이 죽인 다른 사람들도 벌을 받은 거야?
상원: 천만에요. 그들은 축복을 받은 겁니다. 나에게 선택되고 처음엔 두려워들 했지만, 마지막 순간엔 모두 기뻐했어요. '''내가 그들의 나약한 육신을 구하고 생의 고통에서 구원한 거에요.
영진: 당신 선택의 기준이 뭐였지?
상원: 그들 마음의 어둠. 그들은 모두 젊고 아름다웠지만, 불행했어요.
영진: 불행? 하, 그런데 왜, 내가 아니라 수정이를 선택했어? 수정인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애였는데, 대체 왜! 나 대신 수정이를…!
상원: 당신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난 볼 수가 있어요. 참된 것과 꾸며진 것!
영진: 그 사람들 얼굴, 모두 기억하고 있어?
상원: 그럼요. 지금도 여기 나와 함께 있는데요. 지금 내 안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나로 인해 새롭게 태어나 영원히 잠들지 않을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래서 당신을 초대하고 기다렸어요.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애타게 찾고 있던 차영진에게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당신은 증인의 자격이 있어요. 근데… 지금 내 얘길 듣지 않고 있네요. (망설임 없이 난간에 올라서는)
영진: 안 돼… 아니야! 듣고 있어요. (바닥에 떨어진 송곳을 주워 내밀며) 당신 얘기 증명해 봐요. 당신 말이 맞다면, 나도, 고통에서 구해줘요.
상원: 그만. 미안하지만, 당신에게도 부활의 은총을 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오늘 증인으로 이곳에 불려온 거니까. 내 부활의 기적을 목도하고 세상에 증언하세요. (발을 떼는)
수정: 영진아! 차영진! (달려와 팔짱을 끼며) 야, 뉴스 봤어? 성흔 또 터진 거?
영진: 그랬어?
수정: 벌써 일곱 명 째야. 이번에도 살아있을 때 찔렀대. 일부러 피 많이 흘리게 하려고. 아,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영진: 그리고 분했겠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최후의 기억이 그딴 거라는 게. (갑자기 수정이 팔을 붙잡자) 왜?
수정: 너 앞으로, 혼자 산에 다니지 마?
영진: 아, 됐어.
수정: 진짜 걱정 되거든? 제발 조심해.
영진: (웃음) 알았어, 알았어.
수정: 전화도 제때 좀 받고. 응?
영진: 응~

영진: (울부짖으며) 미안해… 미안해…
영진: (죽어버린 서상원에게 수갑을 채우며) 당신 말대로 증인이 돼 줄게. 당신 악행의 증인.
영진: 난 평생이 걸려도 놈을 찾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놈은, 넌 날 찾을 수 없다며 이죽거렸어요. 그 순간 견딜 수 없었어요. 정말 그놈 말대로 될까 봐.
인범: 그러니까, 놈을 자극해서 끌어내려고 말을 지어냈다? (고개를 떨구는 영진)
처음엔 그랬다 치고, 여태 나한테까지 숨겨 왔다는 건…! 정말 충격적이긴 하다. 서운하긴 하지만, 미안해 하진 마라.
영진: 그 거짓말 때문에 오랫동안 포기하지 못하셨잖아요.
인범: 수정이 사건 내 사건이었어. 내 책임이었다고. 그 거짓말 때문에 고통받은 건, 내가 아니라 너야. 그 거짓말 때문에 범인이 끝까지 널 지켜봤고, 마지막엔 희롱하려 했잖아. 어휴, 너 정말 큰일날 뻔 했어!
영진아. 이제 다 끝났어. 그러니까 이제 네가 수정이 둘도 없는 친구였다는 거, 동료들한테 밝혀.
영진: 밝히면 사건에서 손 떼게 하겠죠.
인범: 사건 전모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야. 사건은 막바지로 갈수록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너 크게 다칠 수 있다니까!
영진: 상관 없어요. 내가 왜…! 내가 왜 경찰이 됐는데요. 내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돼요.
소연: (술에 떡이 된 채로 들어오며) 어? 아~ 우리 아들? 잘생기고, 똑똑하고! 착하기까지 한 내 아들?
은호: 앉으세요.
소연: 어. 놔. (손을 뿌리치며) 얘는 지 아빠 하나도 안 닮았어. 다행히 나도 안 닮고. 분명히 내 배 아파 낳았는데, 나하고 달리 참 고상하지? 그래서 속으로 나 무시하고! 그치?
(아무 반응 않는 은호에 화가 치미며) 봐 봐! 지금도 나 상대 안 하잖아. 얘 어릴 때부터 이랬어. 내가 이런저런 별 꼴을 다 보여도! 늘 이렇게 착하고 얌전하게 굴었어. 근데 니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나만, 나만 나쁜 엄마가 됐어! 너 왜 나 무시하는 거야. 왜? 왜!
창수: 그만해, 그만해. (은호를 내보내며) 너, 들어가.
소연: 너 그거 아냐고! 너 왜 날 그렇게 무시하니?! 어?! 왜 나 무시하냐고!
창수: 아이고, 애 들어!
은호: (소매에 묻은 피를 발견하고) 그거 누구 피예요?
영진: (작은 방 문이) 또 열려있네… 살아 있었어.
은호: (놀람) 잡았어요?
영진: 잡았는데, 놓쳤어. 하루만 더 빨리 찾았다면…
은호: 이렇게 된 거, 아줌마 탓이 아니에요.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범인 찾았으니까 잘 된 거예요. 이제 저 방을 채우고 있는 것들도 치울 수 있고요. 그리고, 이제 여기 벽지도 갈 때 됐잖아요. 채울 땐 도울 수 없었지만, 치울 땐 도와 줄게요.
서상원의 소식을 전하러 들른 영진에게 식사를 차려주는 수정 어머니

먹자. 밤새 한숨도 못 잔 거 같은데,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야지. 어서.
제 자식이 죽어도, 배가 고프고 잠이 오더라. 그게 참 서글프면서, 사람 사는 게 별 거 아니구나 싶더라고.
먹고, 눈 붙이고, 그렇게 살아지긴 했는데, 맘 편한 날은 하루도 없었어.
그놈이 살았으면, 비록 교도소 안이지만 먹고, 잠자고, 그렇게 우리랑 똑같이 살았을 거야.
네가 손을 놓친 거든, 놓은 거든, 잘했어. 영진아, 잘했어.
'선행상 시상식에 초대되어 인상적인 연설을 펼치는 상호
반가워요. 나는 한생명 재단 이사장 백상호입니다.
나는 오늘 이곳, 신성중학교에서 빛과 (은호), 어둠 (민성)을 봤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뭘까요? 몰라요?
짐승은,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살죠? 그래서 어린 새끼가 가장 먼저 희생됩니다.
뭐, 그걸 보고 우리가 안타까울지언정,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아요. 그게 짐승의 순리니까.
하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힘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지키고 보살피죠? 그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약자를 지키고 보살피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강해졌습니다.
가방을 날치기 당하고 모든 걸 털어놓을 각오로 영진을 찾아온 은호
영진: (표정을 살피고) 무슨 일 있니?
은호: 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영진: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에) 잠깐만. 네, 연구원님.
(어느새 자신은 잊은 채 통화에 집중하는 영진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은호)
은호: 아줌마, (영진이 생각에 깊게 잠겨 듣지 못하자) 아줌마.
영진: (그제야 정신이 들며) 어, 미안.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은호: 나 오늘 선행상 받았어요.
영진: 그 말 하러 온 거야?
은호: 아줌만 말 안 해주면 모를 테니까.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은호: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4. 3화

인범: 너 아까 성흔이 네 마지막 사건이 될 거라는 거, 진심 아니지?
영진: 진심이예요. 경찰이 되고 줄곧 다른 사람의 불행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경찰이 되어야 했던 이유가 제대로 매듭지어졌다면 그만 두고 싶어요.
인범: 불행만 보지 말고, 여전히 남아있는 희망을 봐야 하는 거. 그게 우리 일이야. 피해자들의 그 실낱같은 희망을 지켜주는 거. 난 너를 위해 성흔을 놓으라 그랬지, 언제 경찰을 그만 두라 그랬냐.
수술을 마치고 의식 없이 누워있는 은호에게 읊조리는 상호
어떤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은 눌러도 자란다.
부모가 소중히 여기건 아니건, 결국 아이는 어른이 되지.
살아 있다면. 살아 남는다면.
상호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영진을 은호의 엄마로 착각하고 있던 선우
선우: 당신 누굽니까? 대체 누군데…! 지금 은호 엄마인 척 하고 있는 겁니까.
영진: 선생님. 저한테 은호 엄만지 물어보지 않았고, 저도 제 입으로 은호 엄마라고 한 적 없습니다.
선우: 그럼 왜 은호 집 앞에서 나한테 누구냐고 물어본 겁니까?
영진: 제가 위층에 사니까요. 은호 집 앞을 지날 수밖에 없었고, 은호랑 연락이 안 돼서 초조한 상태에서 은호 집 앞에 서있는 웬 남자를 봤을 때, 누구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죠.
선우: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 미안합니다. 내가 오해를 좀 했나 봅니다. 나는, 그냥, 며칠 전에 우연히 두 분을 봤는데, 너무 닮아서 제가 엄마라고 착각을 좀 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그쪽은 그냥 은호 윗집,
영진: 아줌마요. 은호가 그렇게 날 불러요.
수사 협조를 위해 상호를 만나러 온 영진
상호: 기적이죠? 이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목숨을 건진다면. 그런데 어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곳에서.
영진: 백상호 대표님?
상호: 네. 그쪽은 차영진 형사님?
영진: 네.
상호: 궁금하네요. 광수대 형사님이 왜 나를 찾아 왔는지.
(중략)
상호: 음…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의 사건을 조사한다. 그거 직무윤리에 반하는 거 아닌가요? (영진의 표정을 살피고) 아, 전요. 원칙과, 옳다고 믿는 일 중에 후자를 택하는 쪽입니다. 차영진 형사님처럼. 아, 게다가 나는 은호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거든요. 근데 걔가 하필 내 호텔에서 그렇게 된 게, 가슴이 아프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CCTV 영상) 가져가세요. 상황실에 얘기해 놓겠습니다.
영진: 감사합니다.
상호: 범인,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영진: 대표님은 은호 일, 범죄라고 생각하세요?
상호: 그러길 바랍니다. 형사님한테는 은호가 여기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 보다는, 그 편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그죠?

5. 4화

은호의 추락으로 박살이 난 차를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내는 희동
선아: 인상 좀 펴세요. 지금 고 실장님 얼굴, 저 차보다 더 짜부라져 있거든요?
희동: (눈물을 참으며) 뽑은 지 한 달밖에 안 됐어요.
선아: 그래도 저 차 덕분에 애가 살았잖아요.
희동: 그래도 너무 많이 뽀개졌어요…
선아: 만약 애가 죽었다면? (순간 얼어버린 희동) 지금 고 실장님 상황 어떨지 상상해 봐요. 본인이 박살나는 것 보다 훨씬 낫잖아요? 그러니까, 인상 펴요? (그러면서 활짝 웃어보이는)
자신의 성역에서 사단을 낸 희동을 엄벌하는 상호
호랑이는 말이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 해. 그깟 토끼를 잡는데 말이지. 어?
내가 몇 번이나 안전 관리에 신경 쓰라고 그렇게 주의를 줬는데. 아니 뭐, 고 실장은 옥상 문 하나쯤이야, 그렇게 생각을 했겠지.
근데,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결과가 이거잖아? (라면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희동아, 고희동.'''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고개를 드는 희동) 이 호텔 나한테 그냥 호텔 아니야. 너도 알잖아.
나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곳이고, 내 은밀한 안식처고, 내 성공의 근원, 내가 다스리는… 왕국이야.
그런데 불미스러운 일로 주목을 받게 생겼네?
근만: 용의자는 사망, 피해자는 의식불명, 증거는 다 간접증거. 이거 하지 마.
영진: 하겠습니다.
근만: (스트레스가 폭발하며) 또, 또, 또, 또, 또! 그래 해라, 죽을 때 까지 해. 아니, 하다가 죽어. 대신,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둘 다 할 수는 없어.
영진: 계장님.
근만: 선택해!
영진: 성흔 연쇄살인.
근만: 그래.
영진: 손 떼겠습니다. (시크하게 파일을 챙겨들고 뒤돌아서는)
근만: 뭐? 야. (황당) 쟤는 예상이 안 돼요.
인범: 얄궃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성흔 사건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했는데. 영진아. 은호가 깨어나도, 범인이 죽은 이상 진상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어. 의문이 쌓여갈수록 헤어나지 못할 거야, 넌. 서상원이 죽었는데도 끝내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이라면…
영진: 도망칠 곳이 없어요. 은호한테 걸려온 전화가 아무 말 없이 끊어졌어요. 실수로 잘못 건 전화가 아니었어요.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 거절을 했으니까.
인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영진: 나도 알아요. 내 잘못 아니라는 거. 알지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서도 확인하지 않았어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면, 그랬다면… 추락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수정이 때도, 지금도, 빌어먹을 죄책감에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 뿐이에요.
'집 앞에서 동명을 기다리던 중, 영진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선우
예전에 제가 있었던 학교에서, 우리 반에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있었어요.
근데, 피해 학생 말만 듣고 가해 학생을 다른 반으로 보냈어요.
두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아이한테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같은 실수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6. 5화

선우: (혼자 가려는 영진을 막으며) 동명이가 무사하게 잘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해야겠어요.
영진: 연락 드리겠습니다.
선우: 집으로 간다던 애가 사라졌어요! 집으로 갈 거냐고 물어보지 말고,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집 꼴이 어떤지 내 눈으로 보고도 내가 너무 무심했다고요.
영진: 외면하고 싶었던 거겠죠. …나도 그랬거든요. 은호를 처음 봤을 때.
선우: 그러니까 이젠 외면하지 않겠다고요. 형사님은 형사로서 동명이 마주하세요. 나는 교사로서 동명이 옆에 있을 테니까.
동명의 행방을 물으러 이모의 식당으로 찾아간 두 사람
영진: 동명이 지금 어딨는지 알고 계시죠. 한솔이랑 있습니까?
동명 이모: 왜 찾는 건데요? 나도 알아야죠!
영진: 아직은 말씀 못 드려요. 동명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걱정하시면서, 동명이랑 있는 한솔이는 걱정 안 하시는 것 같네요. 동명이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분명한 건, 형을 아끼는 동생이니까요. (한솔이 그린 그림 사진을 보여주며) 보세요. 동명이 노트 속에 있던 거예요.
동명 이모: 동명이 엄마도 같이 그렸네요.
영진: 다들 손을 잡고 있어요. 핏줄이 아니어도, 그렇게 이어지는 거 아닐까요?
상호: 아이고… 병원에 오래 있었더니 지친다. 가자.
두석: 이제 명인병원 소아병동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상호: (질렸다는 듯이) 아유… 이 병원에서 또 병원! 이야… 아픈 애들이 너무 많아. 어? 야, 예전에, 이, 만약에 신이 있다면은, 아픈 애들이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하는 당돌한 놈이 있었다?
두석: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나빴죠. 하루 하루 칼날 위를 걷는 심정이었어요. 만약 나를 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신이다.라고 생각했죠.
상호: (웃음 터지면서 부끄럽다는 운 듯 두석의 어깨를 치는) 신은 무슨 신! 야, 오 실장. 역시 말이야, 너를 살린 거는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야. 너 그거 아냐?
두석: 출발하겠습니다.
상호: 이 새끼, 부끄러우면 항상 출발한대. 자, 이번에는 어떤 아이를 살리러 가볼까?
도망친 동명을 추적해서 밀레니엄 호텔 옥상에 다다른 영진
영진: 동명아. 얼굴 좀 보자. (뒤를 돌아 영진을 마주보고) 내가 누군지 알아? (끄덕이는) 경찰인 것도? (다시 끄덕이는) 하고 싶은 말, 아님 해야 되는 말. 없니?
동명: 은호… 내가 안 그랬어요.
영진: 알아. 알고 있어.
동명: (울컥)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안 믿잖아요. 그러니까 나 찾아낸 거잖아.
영진: 너를 만나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어. 그래서 만나려고 한 거야. 그리고 네가 걱정도 됐고. 너를 만나면 뭐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까, 생각했어. 그런데 너를 찾아 헤매는 몇 시간 동안 너무 궁금한 게 생겼어. 이건 지금 너밖에 대답해줄 수 없는 거야.
동명아. 너 은호랑 어떻게 친구가 됐어?
동명: 은호랑 내가 친구라고요? 어딜 봐서요.
영진: 은호가 사고 당한 날, 가방에 그날 산 동화책하고 소설책이 있었어. 그 동화책은 은호가 아주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왜 새 책을 샀을까 의문이 들었어. 그런데 오늘 이모 집에 갔더니 동화책 1권이 있더라. 은호가 한솔이 주려고 2권을 샀을 거야.
동명: (울먹이며) 친구 아니에요. 난 늘 받기만 했는데, 그게 어떻게 친구예요…
영진: 왜 은호가 너랑 친구 했는지 하나는 알겠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동명: 아니요. 부끄럽지 않았어요.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친절했으니까. 아빠란 인간은 아픈 동생 내세워 받은 돈을 유흥비로 쓰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나… 남의 지갑 슬쩍하고, 약한 애들 돈 뺏는 거,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명: 호텔 화장실에서 돈을 발견해서, 내가 아저씨한테 나누자고 했어요. 은호는, 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인범: 동명아. 네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은호 조사 안 할 수 없어.
동명: (울먹이며) 안 돼요…

(호텔에서 훔친 돈을 동명에게 가져온 은호)
동명: 거기 들었냐? 줘. (그러나 선뜻 건네지 못하자) 하… 왜 자꾸 망설여. 처음부터 이러려고 돈 챙긴 거잖아.
은호: 그랬는데… 계속 후회했어.
동명: 그러니까 나한테 다 넘겨. 그럼 넌 그 돈하고 아무 상관 없잖아. 그날 밀레니엄 호텔엔, 내가 있었던 거야. 이제 이건, 내 돈이고 내 문제야.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너 절대 나서지 마.

동명: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인범: 은호한테 미안할 거 없어. 니네 친구 사이니까 어려움이나 아픔은 함께 나눌 수 있어도, 죄는 아니다. 죄에 대한 벌 역시 마찬가지고.
영진: 일단 김창수는 주거침입으로 유치장에 넣었어요.
소연: 영진 씨, 7년 동안 우리 집에 딱 발 두 번 들였어. 그런데 두 번 다 내가 만나는 남자한테 수갑을 채웠네? 사람 마음이 참 그래. 머리로는 영진 씨가 고마운 사람인 거 아는데, 마음은, 지금 내 마음은,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그 새끼보다 영진 씨가 더 싫어. 끔찍해. 영진 씬 처음부터 내 바닥을 본 사람이니까.

7. 6화

십자가 앞의, 한없이 나약했던 어린 자신에게 차갑게 내뱉는 상호
구원은 너 스스로 구하는 거야. 스스로 구원한 후에, 어? 그런 후에, (십자가를 가리키며) 단 하나만 저 분께 구하면 되는 거야.
(비릿하게 웃으며) 용서.
영진: 은호가 괴롭히는데, 왜 민성이는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아무 말 하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민성이가 은호한테 괴롭힘을 당할 만한 앤 가요? 민성이한테 약점이 있었을 거예요. 은호만 알고 있는.
선우: 그러니까, 나더러 그걸 알아보라는 거죠?
영진: 은호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야겠다고 하셨잖아요. 먼저 일어날게요.
선우: 차 형사님, 지금 저한테 도움 요청하신 거죠?
영진: 아니요. 저는 경찰로서, 민성이 비밀을 밝혀낼 겁니다. 이 선생님은 교사로서, 어떤 선택을 할 건지 스스로 결정하세요.
호텔에서 던지기를 한 두 사람의 신상을 알아낸 상호
선아: (뚫어져라 파일만 보는 상호에) 어쩌려고?
상호: 생각 중.
선아: 그냥 넘어가. 경찰이 찾는 놈들이야. 잘못 건드렸다가 귀찮아져. 그리고, 지금은 장기호 찾는 데 전념해야지. 안 그래?
상호: (뜬금없이) 멍게는 뇌가 없대.
희동: 뭐?
상호: 아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고, 다 자라서 안전한 곳을 찾으면 지 뇌를 먹어버린다네.
희동: (인상을 찌푸리며) 아우, 징그러.
상호: 선아야. 나는 멍게같은 어른으로 살고 싶지가 않다? (피식 웃는 선아)
자영: …현재는 호텔 화장실에서 던지기를 했던 두명 중 하나가 최대훈의 공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병희: 근데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어이, 지원팀 윤 순경? 넌 아까부터 왜 여기 있는 거야?
자영: 강력 1팀 1조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병희: 그래? 너 그 팀은 너 없어도 돌아가는 모양이네?
은주: 예! 돌아갑니다! (간식거리를 들고 오며) 저희 팀원들이 모두 베테랑들이라서 일당백이거든요. 차 팀장님, 이제 슬슬 우리 팀원 돌려주지?
영진: 이렇게 자리가 만들어진 기회를 빌어 말씀드릴게요. 윤자영 순경을 이번 사건이 끝날 때까지 저희 팀으로 차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격에 겨워하는 자영) 한근만 계장님. 홍은주 팀장님.
은주: 인원 부족 따위 말고, 윤자영이 필요한 이유가 뭐야?
영진: 다른 게 필요해? 인원 충원이 필요한 게 이윤데. (실망하는 자영)
은주: 그럼 다른 팀 가서 알아봐. 난 못 도와줘.
자영: (다급하게 일어서며) 아, 팀장님!
은주: 이 봐, 윤 순경, 방향이 틀린 거 같은데?
자영: 맞습니다. 전요, 돕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습니다! (패기에 놀라는 팀원들, 뒤늦게 지나쳤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건방 떨어서 죄송합니다.
은주: 고개 들어.
영진: 윤 순경은 조직의 명령을 넘어서 스스로 해내고 싶어해. 그게 윤 순경이 필요한 이유야.
근만: 흠. 나는 말이지, 아직 결정을 못했으니까,
자영: (경례하며) 상명하복!
근만: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자영: 잘 하겠습니다.
근만: 왜 복종부터 먼저 해? 명령도 안 했는데.
자영: (머쓱하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근만: 왜 복…! (체념) 그래, 잘들 해 봐.
최대훈의 집에서 피규어로 가득 채운 민성의 방을 보는 영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은호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영진)
은호: (부스스 깨어나며) 어휴, 냄새.
영진: 엄마 올 시간이야. 내려가.
은호: (영진의 턱에 생긴 상처를 보고) 다쳤네. 괜찮아요?
영진: (허세를 부리며) 괜찮지. 이건 다친 것도 아니지.
(둘 다 웃음)
은호: 아니, 아줌마 상대한 사람이 괜찮냐고요.
영진: 아아. 뭐, 갈비뼈 세 개 나갔어. (웃음) 얼른 일어나. (은호를 일으키며) 잠은 네 방 침대에서 편하게 자. 맨바닥에 쪼그려 자지 말고.
은호: 여기가 내 방보다 더 편해요.

영진: 너도 여기가… 네 집보다 더 편했니?
분노애 휩싸여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는 소연을 뜯어말리는 창수
창수: 하… 그만 하고 가라.
소연: 안 나갈 거야. 정 보내고 싶음 경찰 부르던가. 수갑 채워질 때 기분이 어떤지, 니 덕분에 경험 좀 해 보게.
창수: (억울) 내 실수했는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렇게 된 거, 다 은호 때문이야.
소연: (실소를 터트리다 이내 흐느끼며) 은호 아빠 죽고 나서, 내가 만난 남자들 전부 다 후진 놈들이었어. 근데 그 중에서, 니가 제일로 나쁜 새끼야.
창수: 니가 왜 그렇게 나쁜 새끼만 골라서 만나는지 내가 알려줄까? 아니면 못 견디거든. 넌 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보면 배알이 꼴리는 사람이야. 자기 자식한테까지 자격지심을 느끼는 사람이, 어떻게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

창수: 소연아. 내가 너무 못나서 미안하다. 나 은호 아빠가 되어 볼… 생각도 한 적 있었어. 은호가 그냥 순하고 착한 앤 줄로만 알았거든. 근데 은호, 내가 품을 수… 아니, 감당할 수 없는 애더라. 좋은 뜻으로 한 말이야. 소연아. 은호는, 네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거야.
크게 차이 나는 은호와 민성의 중간고사 성적에 의문을 품고 CCTV를 확인해 본 선우
선우: 영어 주관식 정답에 오류가 있었어. 출제 교사가 이후에 답을 정정했는데, 민성이는 정정하기 전 답을 그대로 썼더라고.
희섭: 아니,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시험지 유출이 있었다고 확신을 해?
선우: 행정실장이 시험 전날 밤에 인쇄실에 들어가는 거 다 확인 했어! 형 어떡할 거야?
희섭: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네가 나라면, 교사 이선우가 아니라 신성재단 이사장 이선우라면, 고발과 묵인 중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애?
선우: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은 듯) 형. 이게, 당연한 일을 하는 게,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는 거야?
희섭: 내가 너라면, 그리고 하민성이 아니라 다른 아이였다면 나도 너랑 똑같은 선택 했을 거야. 선우야, 형이 부탁할게. 지금 마음 편하자고 나중에 후회할 선택 하지 말자. 응?
인범: 자. 네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아니, 기껏 소개해줬더니 면접에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고, 또 그새 사고를 쳐?
아이: 나 고졸도 아니고 중퇴에 소년원까지 갔다 왔어요. 세상이 이런 놈한테 기회를 줄 거 같아요? 결과야 뻔하죠.
인범: 뻔했겠지. 나도 너 같은 녀석 안 쓴다. 믿음을 줄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믿음을 주지 않는다 칭얼칭얼대는 녀석을, 누가 어떻게 받아주겠냐?
아이: 어이없게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근데… 난 할 수가 없어요.
인범: 그게 뭔데? 설마 아이돌?
아이: …경찰요. 하… 쪽팔려. (자리에서 일어나고)
인범: 왜 경찰이 되고 싶은데?
아이: 지금까지 살면서, 닮고 싶은 사람 못 만났어요. 근데 경찰서 드나들면서, …닮고 싶은 사람 만났어요.
인범: 너 경찰 될 수 있어. 그 마음만 진심이라면. 대신 그 욱하는 성격은 꼭 바꿔야 된다? (웃음) 너 경찰 되면 꼭 강력계 가라. 넌 민중의 지팡이보다 도둑놈 때려잡는 몽둥이가 딱이야.
은호: 나 경찰 될까요?
영진: 왜?
은호: 아줌마처럼 나쁜 사람들 혼내고, 약한 사람들 도와주려고요.
영진: 난… 그래서 경찰이 된 거 아냐.
은호: 그러면 왜 경찰이 됐어요?
영진: 무서운데 피할 수 없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난 나를 구하기 위해서 경찰이 된 거야.
은호: 근데 아줌마는 나도 구했잖아요.
(그 말에 웃음 짓는 영진과 따라 웃는 운호)
상호: 살아 있는 한, 슬픔은 항상 따라다니지.
누구도 다치지 않는 세상 따위는 없어. 그래서 이 아저씨는, 다치지 않는 쪽이 되기로 선택했어.
너한테는, 선택할 기회가 있을까?
은호야. 꼭 깨어나야 돼. 그러면 아저씨가, (거침없이 커튼을 걷어버리고 은호의 귓가에 속삭이며)
다시 데리러 올게.

8. 7화

은호가 잠시 눈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영진과 선우
영진: 은호야. 무리하지 마. 내가 네 담임 선생님이랑 같이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고 있어.
네가 하고 싶었던 얘기, 네가 감출 수 밖에 없던 얘기, 그리고 너 조차도 몰랐던 얘기를 알아낼 거야.
소연: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어. 은호도 좋아지고 있고, 많이 바쁘잖아.
영진: 괜찮아요.
소연: (히스테리가 폭발하며) 내가 안 괜찮아! 내가 불편해!
영진: 은호하고 나, 7년 된 친구예요. 안부가 궁금하고 안녕을 바라는 사이라고요.
소연: 뭐, 친구? 아니, 스무살이나 넘게 차이 나는데 친구가 가당키나 해? 까놓고 말해서! 은호 통해서 나한테 우월감 느끼는 거잖아. 나는 좋은 어른이야, 저런게 엄마라니. 속으로 그런 생각 하지? 내가 엄마라면. 은호가 내 아들이라면! 그치? 왜! 왜 그런 생각을-
영진: 그만. (소연의 멱살을 잡고 병실 밖으로 끌고 나가며)
나한텐 무슨 말을 해도 상관 없어요. 당신은 나한테 아무도 아니니까. 나는 당신한테 상처받지 않아.
하지만 당신 아들 앞에서, 말 조심해. 당신 은호 엄마니까. 은호는 당신 독한 말에 다치고 아파하니까.
이 세상 어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도, 은호한테, 소연 씨를 대신할 수 없어요.
호텔을 던지기 따위에 이용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해주는 상호
하나님은 말이지. 징벌로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실 때도, 축복을 보내 회유하실 때도 있지.
그러나, 이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도 있어. 어? 그건 그분이 우리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선택할 자유를 주시는 거야.
선택할 수 있는 특권보다 더 큰 특권을 누려본 적 있나? 아니 뭐, 학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 뭐 그런 따위 말고,
내 인생을 한번에 바꿔버릴 수 있는. 그리고 남의 인생을 한번에 부숴버릴 수 있는… 선택.
밀레니엄 호텔은 내 집이야. 집주인 무시하고 둘이서 멋대로 날뛰면 쓰나. 니들이 마약을 던지든 받든 내 알바 아니지만은,
내 집에서 그랬다면은… 얘기가 달라져.
선우: 태형이… 제 학생이었어요.
상호: 정말? 야, 은호도 네가 담임이고 태형이까지! 너 설마 고2 때 담임은 아니지? 걔 담임 때문에 억울해서 학교 관뒀다던데?
선우: (씁쓸) 네, 저 맞아요. 어제 은호 병실에 갔다가 태형이를 만났는데, 옛날 생각이 나가지고 나도 모르게 숨어버렸어요.
상호: 야, 그게 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야. 사람마다 이 수치심과 양심의 크기가 달라. 아예 없는 사람들도 있고! 어? 너는 잘못을 저지르면 쉽게 잊지 못할 거야. 그래서 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라고 애쓰겠지. 지금의 너 봐라. 야, 니네 반 학생도 아닌 동명이를 위해서 이렇게 동분서주 했잖아.
동명: 나 형사들한테 조사 받았어. 은호 추락 때문에. 형사들이 나한테 니 운전기사 사진 보여줬어. 그 새끼 지금 유치장에 있냐? 언제까지 너를 위해서 입 다물고 있을 거 같냐? 은호는, 자기가 널 괴롭히고 있다고 했었어. 그래서 은호를, 그런 거야?
민성: 은호, 너 때문에 뛰어내린 거 아냐?
동명: 뭐?
민성: 니가 삥뜯고 있었잖아. 나 여러번 봤어. 나 같아도 살기 싫었을 거야. 너 같은 그지 새끼한테 뜯길 때마다.
동명: (순간 욱하며 주먹을 들어올리지만 이내 손을 내리고) 그래. 나 그지 새끼고 깡패 새끼다. 근데, 그런 나에게도 친구가 있어. 누구 때문에 죽을 뻔했던. 나는 비록 계속 그지 새끼일지 모르지만, 깡패 새끼는 안 할 거야. 은호가 내가 친구라는 거 쪽팔리지 않게. 마음 같아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너 아작내고 싶은데, 참는다.
상호: 내 호텔에서 볼품없는 죄를 지은 인간들을 찾고 계십니까?
영진: 마약 판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상호: 예. 당장 찾아내실 것처럼 협조를 요구하시고서는, 다른 일로 바쁘신 것 같아서요.
영진: 찾고 있습니다.
상호: 둘 중에 하나만 찾을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영진: 무슨 말씀이신지.
상호: 아, 예. 제가 들은 게 있어서요. 돈을 잃은 구매자가 판매자를 손봤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다 은호가 가져간 돈을 판매자가 꿀꺽했다고 오해해서 생긴 일인데, 그러고는 둘 다 감쪽같이 사라졌다던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진: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요.
상호: (강한 부정) 아이, 아유, 그럴 리가요! 예? 아니, 둘 다 찾으면 좋지만은, 그럴 수 없는 경우에 어느 쪽을 선택하시는지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영진: 아무리 가정이라도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상호: (미소를 띄며) 나는, 이 정의보다는 구원을 택하는 쪽입니다.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도와줘요."
<자기 앞의 생> 뒷면에 적혀있는 은호의 말

9. 8화

근만: 범죄는 누구의 탓도 아냐. 온전히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탓이지.
재홍과 자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케빈 정이 시체로 발견된 것을 탓하는 병의의 말에
민성 엄마: (민성에게 일련의 과정을 전해듣고) 은호가 널 괴롭히고 있다고 지 입으로 말했다고? 그거야. 그럼 됐어.
엄마가 알아봤더니, 걔 아직 의식도 없고 휴대폰도 없어졌대. 민성아, 잘 들어. 적당히 진실과 거짓말을 섞어서 얘기해.
무조건 잡아떼면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진실이 섞여있다면 사람들이 네 말을 믿지, 동명이란 애 말은 믿지 않아.
작은 흠집은 나겠지만, 잘 넘어갈 수 있어.
(여러 인물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보드 앞에서 심각하게 생각 중인)
영진: 파헤칠수록, 미궁 속을 헤매는 것 같아요.
인범: 미궁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면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들어진 거야.
영진: 얼마 전까지, 포기하라고 하셨잖아요.
인범: 그땐 막다른 길인 줄 알았지. 네가 출구가 없는 사건에서 한 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 같앴어, 그땐. 경찰로서 소임을 다 해. 그렇다고 이 사건이 내 인생의 과제다, 그렇게 생각하진 말고.
인범: 삼촌이 은호를 다치게 한 범인은 맞는 거 같애. 민성아, 삼촌이 은호를 다치게 한 게, 혹시 너를 위해서 그런 거니? 은호가 동명이한테 그런 적이 있대. 자기가 민성이을 괴롭히고 있다고. 은호가 정말 너를 괴롭혔어?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민성, 그러자 조용히 끄덕이는 엄마)
민성: 네. 은호가 가끔 돈도 요구하고, 듣기 싫은 말도 하고 그랬어요.
인범: 그러다가 삼촌한테 얘기했니?
민성: 네. 그냥 겁만 조금 줄 거라고 했어요.
인범: 그동안 정말 무서웠겠다. 은호하고 삼촌한테 생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겠어.
근데, 지금도 전혀 마음이 편해보이지 않는다? 민성아. 사실이 무섭다고 해서 편안하게 거짓을 따라가다 보면,
민성 엄마: (다급) 애한테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인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제지) 죄송합니다만, 이거 마저 하겠습니다. 무섭다고 해서 안전하게 거짓을 따라가다 한 번 다리를 건너버리면, 다시는 편안한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민성 엄마: (민성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가주세요.
인범: 실례했습니다.
민성: (참지 못하고 소리치며) 내가 다치게 했어요! 동명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치게 했다고요.
민성 엄마: 입 다물어!
인범: (웃음) 얘기해줘서 고맙다.
인범: 은호가 왜 괴롭혔는지, 그 이유는 얘기하지 않네요. 뭐 짐작가는 거라도 있습니까?
선우: 저야말로, 안전한 거짓과 불편한 진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인범: 뭐,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두 번 겪는 일이죠.
선우: 황 계장님은 안 그러실 것 같은데.
인범: 저도 세상을 향해서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우: 후회하세요?
인범: 아뇨. 전혀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거든요.
선우: 민성이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말하지 못하는 걸 겁니다.
인범: 선생님은 뭘 지키려고 진실과 거짓 사이에 갈등하십니까?
선우: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연: 은호야. 은호야, 들리니? 어휴,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 되니.
은호야. 엄마가 제일 바라는 거, 우리 은호가 하루빨리 눈을 떠서 나한테 "엄마"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 듣는 거야.
나한테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거 정말 좋은 거라는 거 내가 이제 알았다.
(울컥) 사람이 한번에 바뀌지 않겠지만, 엄마가 진짜, 엄마가 진짜 노력할게.
영식: 난 악마를 만났어. 살아남은 게… 지옥일 수도. (비참하게 울먹이는)
두석: 처리 했어야 돼. 이영식, 그 상태가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
상호: 아니, 살려주기로 약속했으니까 살려줘야지. 충격이 가라앉고 그날 밤 일이 차분히 떠오르면은, 진짜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될 거야. (웃음)
태형: 지금 시간 낭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나 뿐이야? (먼저 도발하는) 내가 어떤 놈인지 궁금하잖아. 간 보지 말고 물어 봐.
동명: (그에 본색을 드러내며) 난 어릴 때부터 비리비리한 애들 삥 뜯고, 물건 훔치고, 보이스피싱 운반책까지 해봤어. 아빠란 인간은 교도소에 있고, 오늘은 건들지도 않은 자식을 폭행했다고 조사까지 받았어. 형은?
태형: (웃음) 그렇게 나오니까 편하네. 나도 너랑 비슷하게 살다가, 고등학교 때, 담임을 폭행한 패륜아가 돼서 학교를 그만뒀어.
동명: 정말 선생님을 때렸어?
태형: 도둑 누명 씌운 놈을 손봐주고 있었는데, 담임이 달려들었어. (동명이 은호를 살피자) 불안해? 나 같은 놈이 은호 옆에 있다는 게.
동명: 응.
태형: 그럼 너는? 은호 옆에 있을 만한 사람일까?
동명: 뭐?
태형: 네가 내 과거 때문에 날 믿지 못하면, 널 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10. 9화

민성: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예요?
영진: 너한테도 남의 집일 텐데. 너 만나려고 몇 번이나 연락했었어. 나 기억나? 오늘 학교에서 봤는데.
(피규어를 가리키며) 함부로 건드려서 미안해. 너하고 단둘이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랬어.
(민성이 그냥 나가려고 하자) 힘들지. 나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 생각에.
민성: 그게 왜 나 때문이에요? 내가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영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 잠깐 앉았다 가.
민성: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로) 정말 은호 친구예요?
영진: 응. 너랑 최대훈처럼. 최대훈 휴대폰에 있는 네 사진, 편해보이더라. (그제야 쪼그려 앉는 민성) 황인범 계장님께 애기 다 들었어.
민성: 정말 겁만 조금 줄 거라고 했어요.
영진: 그건 믿어. 하지만 은호가 돈을 뺏었다는 말은 안 믿어.
민성: 은호 편이니까.
영진: 난 은호가 거짓말도 못하고 나쁜 짓도 못하는 앤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었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애였어. 그런데 하나는 확실히 알게 됐어. 거짓말도, 나쁜 짓도, 자기를 위해서 한 적은 없다는 거. (습관적으로 손등에 자해하자) 안 아파?
민성: 당연히 아프죠.
영진: 대신 마음은 덜 아프고? (끄덕이는) 조금씩 마음이 나으면, 몸도 덜 아프게 할 거야.
민성: 어떻게 나아요? 나 때문에 은호가 다치고 삼촌이 죽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나아질 수 있냐고요.
영진: (민성의 눈높이에 맞추며) 내 친구는 열여덟살 때, 살인마 손에 죽었어.
친구는 죽기 전에 나한테 세 번이나 전화했지만, 귀찮아서 받지 않았지. 한참을 나 때문에 죽은 거라 생각했어.
근데 그거… 정말 엿같은 생각이야. 내가 전화를 받든 안 받든, 살인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야.
내 친구의 죽음은 온전히 그 범인의 책임이야. 너도 마찬가지야. 은호의 추락, 최대훈의 죽음은 네 탓이 아니야.
네 잘못은, 은호가 당할 폭력을 외면한 거. 딱 거기까지야.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너와 상관 없어.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며) 네 탓이 아니야.
민성: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삼촌… 삼촌…
판술: 기호만 필요한 게 아니야. 기호가 애한테 맡긴 물건도 필요한 거지. 근데 그게 뭔지는 기호만 알고. 맞지? 나하고 거래를 하자고. 내가 기호를 잘 구슬려서, 애한테 맡긴 물건이 뭔지 알아내 줄게.
상호: 우리가 거래를 하려면, 신뢰가 있어야겠죠? 아니면 담보나. 그런데 어르신은 지금 그 새치 혀밖에 없잖아요?
판술: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너희에게 줄 상이 나에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기호가 나한테 보상을 약속했잖아. 그리고 나서 그 은호라는 아이를 찾아가는 일을 나한테 부탁했어.
지금, 기호가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말 아니겠어? (교활한 웃음) 나 사람 안 봐. 그 사람 주머니에서 뭐가 나올지를 보지.
선우: 동명아.
동명: (얼굴을 보고) 왜 다쳤어요?
선우: 이번에는 좀 심하게 발이 꼬였다. 너는 선생님 전화 왜 안 받았어?
동명: 마음이 꼬여서요.

태형: 위선자. 계속 귀찮다고, 싫다고 했잖아요. 관심 끄라고. 그랬는데, 내 말 무시하고 계속 건드려놓고, 방심하게 해놓고, 그 자식 거짓말 한 번에 나한테 처음으로 꺼낸 말이, 왜 그랬어? 정말이냐고, 진짜냐고 묻기도 전에, 왜 그랬어?

선우: …미안하다.
같은 실수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 무색하게, 다친 민성을 발견하자마자 동명을 탓했던 선우
영진: 오늘 낮에 그러셨죠.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냐고.
상호: (잠시 생각하다) 아, 마약 거래! 찾으셨어요?
영진: 대표님은 정의보다는 구원을 바란다고 하셨죠. 어느 쪽이 정의고, 어느 쪽이 구원입니까?
상호: 에이. 이거, 제 말을 오해하셨네요. 이, 선택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구원인 겁니다. 형사님은 선택하지 않으셨죠? 예. 정의는, 이 둘 모두에게 징벌을 내리겠지만, 구원은, 기회를 주죠. 선악을 가리지 않고. 아이, 아니, 그, 둘 다 모두 사라졌다길래,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어요. 뭐, 둘 중에 하나라도 좀 무사하면 하는 마음이었으면, 그런 바램에서 지껄였던 얘긴데, 그걸… (웃음) 아, 이렇게 신경쓰실 줄은 몰랐네요?
선우: 왜 그래? (걱정) 매형이랑 싸웠어?
선경: 아니… 더 있으면 싸울 거 같아서 피했지. 그 사람 지금 너무 예민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선우: 학교는 늘 일이 있지. 근데 그걸 집까지 가져와서 가족들 걱정시키면 안 되지.
선경: 역시, 핏줄이 좋다.
선우: (웃음) 진짜. 누나, 솔직하게 얘기해 봐. 만약에, 나랑 매형이랑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래?
선경: (황당한 웃음) 너는, 가끔 유치하다?
선우: (당당) 나 원래 유치해. 응. 그러니까 얘기해 봐. 빨리.
선경: (웃으며) 미안해.
선우: 아하. 거 봐. 거 봐. (한탄) 핏줄 아무 짝에 소용 없다.
선경: 야, 희섭 씨는, 지원이 아빠잖아.
선우: 어이구, 나는 지원이 삼촌에 누나 친동생이거든요?
선경: 그거는, 약간, 핏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랄까? 너, 너희 매형하고 너희 반 학생이랑 물에 빠졌어. 그럼 누구 구할 거야?
선우: (잠시 멈칫하다 이내 머쓱하게) 미안해 누나.
영진: (태형이 읽어주고 간 책을 발견하고) 가방 찾았어. 역시 다 읽었더라. 나는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을 좋아해.
수정인 읽는 내내 이해가 안 간다고 투덜댔지만, 역시 마지막 구절 때문에 이 책이 좋아지게 됐다고 했어.
그런데, 이제 나에게,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달라졌어.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도와줘요…
(책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다) 은호야… 동명이 때문이었어, 아니면, 민성이 때문이었어. 아니면… 또 다른 게 있었니?
선아: (식은땀을 닦아주며) 가엾어라. 꿈에서도 시달리나 보네.
(눈을 뜨자) 쉿! (목에 펜을 들이대며) 영식아. 어젯밤에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지? 응. 앞으로도, 괴로울 거고.
죽여줄까? (섬뜩하게 웃으며) 아프지 않게.
여깄다 보면, 넌 서서히 안전하단 느낌을 받게 되겠지? 그럼 진실을 얘기하고 싶어질 테고.
우리 대표님은 니가 그럴 일 없다고 자신하지만, 난 보험을 들여 놔야겠어.
(비웃음) 야. 너는 변변치 못해도, 니 누나는 참 열심히 살더라. 조카들도 귀엽고.
(몸부림치자)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다쳐! 착하고 귀여운 거? 우리는 그런 거 상관 없어. 왜냐? 우리 게 아니니까.
영식아. 니가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면, 우린 니 걸 망가뜨릴 거야.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방법으로?
(울먹이자) 울지 마. 니가 약속만 잘 지키면, 너희 가족들한테 좋은 일들이 생기게 될 거야. 너도 착하게 굴면, 금방 나오게 돼. 오케이?
교감: 학부형들 항의가 거셉니다. 하루만에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교사: 학폭위 필요 없고, 퇴학 아니면 전학 시키래요.
선우: 아니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지 않습니까.
교감: 그럴 수 없으니까 문제죠.
선우: 그럴 수 없다니요?
교사: 사실대로 알려지면 민성이가 자해 성향이 있다는 게 소문날 텐데, 그럼 민성이가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선우: (기가 차서) 아니…! 동명이는 지금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오해를 받고 있는데, 민성이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요.
교감: 솔직히 말해서, 동명이는 어딜 다녀도 상관 없지 않습니까. 민성이 어머니가 생각한 게 있으시다니까, 어쩌면 동명이한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선우: 학교 이따위로 굴릴 거면 그냥 다 때려치우자.
희섭: (당황) 이선우 선생님?
선우: 아버지 유지고 뭐고, 그냥 다 손 떼자고!
희섭: 이선우 선생님, 흥분 좀 가라앉히시고요,
선우: 나한테 선생이라고 부르지 마. 나 지금 선생이라서 기분 엿같으니까!'
동명: (침대에 앉아있는 걸 보고) 주한솔, 내려와.
한솔: 좀만 더 있다아!
동명: 내려와!
인범: 아, 왜 아픈 애한테 소리를 지르고 그래.
동명: (울분) 나도 아파요. 나는 속이, 썩어들어간다고요. (민성을 노려보며) 내가 저 자식 때문에, 전학을 가게 생겼단 말이에요.
민성: 니가 왜?
동명: (헛웃음) 그러게. 내가 왜? 니가 아니고 내가 왜! 형사님은, 어떻게 내 동생을 여기로 데려올 수가 있어요?
한솔: 편의점에서 만나갖구, 형이 아이스크림 사줘서 내가 여기 가자고 했어.
동명: 그래. 너 마음대로 해. (나가려는데 민성이 붙잡자) 놔라, 진짜. 쳐맞기 싫으면.
민성: 이제 깡패 안 한다며. 왜 나 때문에 너가 전학을 가는데.
동명: 말하면, 뭐가 달라져?
민성: (당당) 나, 엄마가 빼돌린 시험지로 시험 봤어. 학교에 말할 거야.
동명: (누그러지며) 은호가 알고 있었어?
민성: (끄덕이며) 들어올래?
동명: (울고 있는 한솔을 보고) …먹을 거 있냐?
민성: (웃음) 어.
선우: 동명이, 제가 맡겠습니다. 주동명, 저희 반으로 학급 교체 신청 한다고요.
교감: 아니, 전학 얘기가 나오는 애를,
선우: 걔가 왜 전학을 갑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데!
교감: 이 선생님! 목소리 낮춰요.
선우: 교감 선생님, 민성이가 안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동명이가 피해를 보는 게 말이 됩니까?
교사: 어? 여기 민성이랑 동명이 사진 떴는데요?
교감: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교사: 학교 게시판에 민성이가 글을 올렸어요. (하나둘씩 폰을 꺼내 확인하고)

(어깨동무 하며 환하게 웃는 민성과 떨떠름하게 입꼬리만 올린 동명의 사진)
2학년 2반 하민성이 전해달래요. 1반 주동명이 안 말렸으면 과학실 벽 이마로 부술 뻔 했다고~😁

선우: (때마침 인범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예, 황 계장님.
인범: 게시판 봤어요? 아이, 동명이 녀석 그것밖에 안 웃네.
선우: 계장님 작품이었어요?
인범: 아니, 민성이 생각이야. 난 동명이 설득만 했고. 이게 효과가 있을라나?
선우: 그럼요. 애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낫네요! (웃는 인범) 동명이한테 전해주세요! 오늘부터 우리 반 학생이라고! 오늘부터 학교 마음대로 못 짼다고 꼭 전해주세요!
인범: 예! 들렸지? 아주 귀청이 떨어지게 얘기하네.

11. 10화

선우: 은호… 누구한테 떠밀린 게 아니에요. 살려고, 살고 싶어서… 스스로 뛰어내린 거예요.
바닥에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알고 있었는데도! 살고 싶으니까. 스스로 발을 뗀 거예요.
대체 뭐에 쫓기고 있었길래! 아직 열 다섯밖에 안 된 어린 애가…!
(그 시각, 호텔 10층)
상호: 고은호… 죽여야겠지, 눈을 뜨면? 살겠다고 이 높이에서 뛰어내린 애를… 아니 뭐, 죽이기에는 아까운 녀석이지만, 뭐, 어차피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아, 우리 차영진 형사님이 만들어낸 완성품이니까.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본 세 사람)
상호: 희동아, 되짚어 보니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 같냐?
희동: 그야, 내가 장기호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갑자기 두석에게 역정을 내며) 야, 이 새끼야! 니가, 어, 은호 응급실에서 나오고 나서 가방 확보했으면 상황 종료했지, 이 새끼야! (황당한 두석)
상호: 잘못된 건 은호의 마음이야. 남을 생각하는 걔 마음이 우리의 계획을 꼬이게 만든 거지. 과거로 가서 꼬마 은호한테 말해주고 싶네? '''악의는 반드시 악의로 돌아오지만, 선의는 반드시 선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 악은 명료하지만 선은, 복잡하고, 뒤통수 조심해야 한다는 거.
동명: 죄송해요.
소연: 뭐가?
동명: 은호랑 친구여서…
소연: 은호 일곱살 땐가?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마주치면 도왔어. 싫었는데 그냥 뒀어. 그러겠다 말겠지 했거든? 근데 그 인간이, 아예 은호를 달고 다니면서 일을 시켰어. 우리 엄마 참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어. 툭하면 이렇게 말했다? "착하면 뿔 없는 짐승도 얕잡아 보는 거야, 이 년아. 독해야 혀." 근데 그 말이 맞아. 착하면 얕잡아 보고 손해만 봐. 우리 은호는 손해는 봤지만, 그래도 친구는 생겼네?
동명: 죄송해요.
소연: 미안한 걸로 따지면, 내가 은호한테 더 미안하지. 이런 사람이 엄마여서.
동명: 은호, 아줌마 한번도 나쁘게 말한 적 없어요.
소연: (새침) 좋게 말한 적도 없을걸?
동명: …죄송해요.
은호 추락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는 영진과 선우
영진: 이 사건의 시작은 은호가 습득한 삼 천만원 때문이 아니에요. 은호가 장기호를 살렸기 때문이에요. 호텔 CCTV를 확인했어요. 장기호가 은호한테 뭔가를 건넸고, 은호가 그걸 가방에 넣었죠. 그 후에 은호 가방이 사라지고, 은호가 추락했고, 보란듯이 은호 가방이 다시 나타났어요. 장기호가 맡긴 물건이 필요해서 은호 가방을 훔쳐간 사람. 그 사람이 범인이에요. 범인은 은호를 헤치려던 게 목적이 아니에요.
선우: 그럼 폐건물에서 호텔까지 이동을 한 건…
영진: 최대훈에게서 은호를 구한 거예요. 은호는 장기호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가치 있는 존재니까. 그런데, 최대훈 몸에 별다른 상처가 없었어요. 은호도, 최대훈도, 저항을 하지 않고 따라간 거예요.
선우: 그럼 아는 사람이라는 얘긴데…
영진: 대체 누구길래, 은호가 따라 나섰을까요?
선우: 호텔 내부인이고, 은호가 얼굴을 아는 사람이고, 그리고 장기호를 알고 있는 사람…
영진: 백상호 대표네요.
선우: 상호 형은 아닐 거예요. 좀 괴짜긴 하지만, 아이들한테 해를 끼치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어렸을 때 상호 형을 교회에서 처음 봤어요. 교회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애들을 정말 잘 챙겼어요. 지금도 상호 형 덕분에 많은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고요.
영진: 서상원은요.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목자 아니었나요? 정의라는 저울은, 백 번 천 번의 선행도, 한 번의 악행으로 기울어지죠. 오해는 마세요. 백 대표가 범인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상호: (영진, 선우와 같이 하는 식사 약속을 잡고) 차 형사님은 우리가 만든 스토리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야. 아니, 근데 난 그런 면이 마음에 든단 말이야. 좀 피곤하긴 하지만.
두석: 상호 형. 대책을 세워야 해요. 우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곧 고은호도 깨어날 텐데,
상호: 은호를 꼭 죽여야 하는 걸까? 아니, 살려서 내 밑에다 두고 천천히 바꿔보고 싶은데. 악이라는 게, 타고나는 건지, 만들어지는 건지, 궁금하지 않아?
두석: 그게 가능할 거 같아요? 형은 사람 가장 아픈 데를 찾아서 낫게 해주고 마음을 얻는 건데, 고은호한테는 형이 가장 아픈 곳이잖아요.
상호: 아 씨… 아깝네.
희동: 여기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자조적인 웃음) 그럼 죽일 필요도 없을 텐데.
상호: 그러네. 그게 예상 못한 가장 나쁜 수였어.
은호를 최대훈으로부터 구해내서 호텔로 데려온 상호
은호: 저 어릴 때요, 아무리 울고 소리쳐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했고, 그 날도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는데, 짠 하고 나타나 구해준 사람이 있었어요.
상호: 나처럼? (웃는 둘)
은호: 네. 그날 밤은 푹 잤어요. 그리고, 외롭지 않았어요.
상호: 나도 비슷한 경험 있어. (회상하는 듯 아득한 얼굴을 하는)
상호: (책을 정리하던 중) 애는 어쩌고 벌써 와?
희동: 택시 타고 간대.
상호: (대수롭지 않게) 아. 그래? (순간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희동: (움찔)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상호: 아니, 아니. 내가,

(조금 전, 선물을 주겠답시고 은호를 서재로 데려간 상호)
상호: 이건 내 추천 도선데, (<자기 앞의 생>을 건네며) 어때. 읽어봤어?
은호: 저 이거 오늘 샀는데.
상호: 아이, 벌써 또 샀어?

희동: 그게 무슨 실수야…
상호: 아니, 가방 날치기 당한 걸 우리한테 얘기한 적이 없어. 근데 책을 샀다는 말에 내가 또 샀냐고 물었어. (감탄) 우와! 영민한 애야. 눈치 챘겠다. 빨리 가서 잡아와. 이야, 이놈 봐라?
상호: 기적의 반댓말이 뭘까? 응?
선아: 상식.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기적이니까. 뭐야? 다른 답을 기대한 얼굴이네?
상호: 의심.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의심을 거두어 버리지. 차영진도 그 순간 기적을 의심하지 않았어. 그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애가 살았다는 안도감에.
선아: 문제는, 차영진이 우리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 옥상에 차영진이랑 이선우 같이 있어.
상호: 그래서?
선아: 호텔 밖에, 완강기 도르래가 매달려 있고. 중간 높이의? (모두의 시선이 또 희동을 향하고)
희동: (크게 당황) 상호야, 그날은 내가 좀 급해가지고, 길이까지는 생각을 못했어. 이, 길이는…
상호: (애써 태연) 괜찮아, 괜찮아. 손 좀 보자.
희동: 손은 왜…?
상호: 뒤집어 봐. (까지고 쓸린 상처가 가득한 손바닥에) 에이, 이거 많이 아팠겠네!
희동: 괜찮아. 이거 그냥 쓸린 거야,
상호: (섬뜩하게 미소 띄며) 그때보다 좀 더 아플 거야.
그 길로 주방으로 향해 펄펄 끓는 물에 손을 담근 희동
선우: (사탕을 건네며) 당 보충. 지금 초콜릿이 다 떨어져서 이거밖에 안 남았더라고요.
영진: 됐어요.
선우: (억지로 쥐어주며) 당이 들어가야 뇌도 돌아가요. (본인도 하나 물며) 나는요, 힘들면 그렇게 단 게 땡기더라고요. 그리고 가족이 땡겨요. 형사님은요?
영진: 견뎌요. 그렇게 안 봤으면 좋겠는데.
선우: 그냥 계속 봐주고 싶은데. 나는 그래도,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맛있는 저녁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농담도 던지고, 재밌게 티비도 볼 거예요. 그러면 좀 나아지니까. 근데 형사님은 계속 혼자 남아서 사건, 피해자, 범인만 생각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계속 견디면서 살아요?
영진: 친구가 무참히 살해당하고… 그렇게 살아졌어요.
선아: (멀어지는 영진의 뒷모습을 보며) 저대로 둘 거야?
상호: (웃음) 다치게 하고 싶지가 않은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겠지. 괴로워 하는 건 보고 싶으니까.
영진: 나 여전히 싫죠?
소연: 그런 소리를 왜 꺼내.
영진: 싫은데 믿기는 하죠? 은호는 내 친구고,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못할 거 없다는 거.
소연: 믿어. 그리고 영진 씨 싫지 않아. 좋아하지도 않지만.
영진: 그럼 내 말 잘 들어요. 당분간 은호 옆에 꼭 붙어 있어요.
소연: 알았어.
영진: 그리고, 아무도 믿지 말아요. 나만 믿어요.
은호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팀원들
진수: 아직 앤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나라면은 그냥 어떤 시도도 못했을 거 같은데…
근만: 애가 요즘 애들과 달리, 아주 야물어.
병희: 누구 영향인지 알 거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영진에게 향하고)
영진: 앞으로 수사 상황이 복잡해질 거예요.
병희: (무시) 둘이 닮았어?
재홍: 어… 분위기가?
자영: 얼굴도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요.
진수: 듣고 보니까 그런 거 같은데?
근만: 설마, 성격까지?
병희: 그럼 애가 너무 안됐지! (갑분싸)
영진: 은호는 나랑 달라요. 다정하고 속이 깊어요. 그러니 나랑 그렇게 오랫동안 친구가 돼 줬죠. (진지)
영진: 은호야. 내가 꽤 많은 걸 알아냈어. 근데 너 정말, 겁이 없는 거야, 용감한 거야?
어떻게 그 높이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아니, 벨트를 풀 생각을 했어? 잘했어. 그놈들 손에서 도망친 거. 아니…
고마워. 살아 있어 줘서.

12. 11화

방 안에 갇힌 채 죽어가던 어린 상호를 구한 서상원
무서워 하지 마. (다정하게 볼을 쓰다듬어 주며) 난, 너를 구하기 위해 온 거야.
생의 고통이 널 무너트렸지만, 나의 사랑으로 널 다시 일으켜 세울 거란다.
상호: (반갑) 아, 여기 계셨네요. 네, 방금 은호 소식 듣고 오는 길입니다. 어휴, 당장 달려가서 보고 싶은데, 지금 은호한테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니. 참아야겠죠?
영진: 조금만 참으세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상호: 그래야죠. 아, 그… 차 형사님은, 은호가 기억을 찾길 바라세요?
영진: 대표님은 아니신가보죠?
상호: 진실을 아는 게 중요할까요? 결과는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커다란 고통을 감내할 만큼?
영진: 네, 저한테는.
상호: (웃음) 아니, 아니요. 차 형사님 말고, 은호 입장에서. 은호의 머리가 스스로 은호의 마음을 보호하고 있어요. 고통과 위험에서. 기특하지 않습니까?
영진: 은호의 기억이 돌아오면 위험해진다는 뜻인가요?
상호: (손사래) 에이! 아이, 제 말을 또 오해하셨네요! 더 많이 기억할 수록, 잊고 싶었던 느낌들이 점점 커지고 뚜렷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평생을 갈 겁니다. 그건 깨지 않을 악몽 속에서 사는 거 같지 않을까요?
은호: (숨기려고만 하는 영진과 소연에 답답함이 치미며) 아니, 왜! 아니,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줘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요… 교통사고 같은 거 아니죠?
영진: 대략의 상황은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 진상은 너밖에 몰라. 그런 상황에서도 듣고 싶어?
소연: 난 이대로 기억 못 했으면 좋겠어. 겨우 한 달짜리 기억 없다고 사는 데 지장 있는 거 아니잖아. 좋은 기억도 아닐 텐데, 나 애가 무섭고 힘든 거 싫어.
영진: …10층 높이 옥상에서 떨어졌어.
소연: 영진 씨!
영진: 너는 완강기를 이용해서 내려갔다 중간에 줄을 풀고 떨어졌어. 여기까지 알아냈어. 나는 진상을 알아낼 때 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어.
소연: 그만해.
영진: 조각이 빈 채로 살아도 괜찮겠어? 알맹이 없이 살아가는 기분일 수도 있어, 은호야.
자영: (앞을 막아서며) 나라 잃은 표정이네요.
재홍: 나라 잃은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미안한데, 건들지 마세요. (그러나 차 안까지 따라오는 자영에 답답함이 치미며) 제발, 그냥…!
자영: 부탁할 게 있어요. 서상원이 추락한 날, 보고서에 본 대로 가감없이 적었어요? 그 날 팀장님 어딘가 이상해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보고서에 쓰진 않았죠. 감찰 조사 때, 이 형사님이 작성한 보고서 대로만 얘기하세요.
재홍: 윤 순경님은 화도 안 납니까?
자영: 뭐가요? 팀원들한테 피해자하고 친구였다는 걸 숨겨서요? 안 숨겼으면요. 차 팀장님이 수사 지휘 하실 수 있었겠어요?
재홍: 그러니까, 팀장님한테 들어야 되는 얘기를 왜! 윤 순경한테 들어야 하는 겁니까?
자영: 팀장님은 부탁 못 하실 테니까요. 나 팀장님 못 잃어요. 은호 사건도 이제야 윤곽이 잡히고 있고, 성흔도 이제 막, (아차 싶은)
재홍: 성흔도, 라뇨? 무슨 뜻이에요? 갑자기 우리 팀으로 온 이유가, 하, 혹시 팀장님 약점 잡았어요?
자영: 아니, 차영진 팀장님이 약점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할 분이세요?
재홍: 모르죠. 우리 앞에서 친구 사체 사진 봐놓고 소리조차 안 냈던 사람이니까.
자영: 팀장님과 서상원이 옥상에서 나눈 대화… 어쩌다 알게 됐어요. 보고서에는 쓰실 수 없었던 내용을요. 서상원에게 공범이 있을지도 몰라요. 부탁할게요. 제출한 보고서대로만 얘기해주세요. 내 부탁 안 들어줄 거면, 감찰 조사 때 나도 알고 있었다고 얘기해요.
재홍: 협박입니까?
자영: 좋아하는 걸 걸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영진: 도착할 때까지 잘 지켜. 은호 한 달 동안의 기억이 없으니까 말 조심 하고. 부탁… 수고해. (가다 말고 돌아서며)
수정이 얘기 못한 거, 아니. 안한 거, 미안해. 근데, 내가 찾고 싶었어.
재홍: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같이 끄덕이는 자영)
근만: 선배님, 충심으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선배님은 발목만 적실 수 있습니다. 조직은 여론을 잠재울 희생자가 필요한 거고, 그 희생자는 한 명으로 족하니까요.
인범: 아니, 왜 벌써 제물로 바칠 생각을 해? 지켜 줄 생각을 해야지!
근만: 차 팀장이 서상원한테 복수할 일은 없지만, 안팎으로 의심 사는 거, 그거 당연하다고 봅니다.
인범: 스스로 희생하면서 뭐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희생당해. 아무것도 안 하고, 발끝조차 적시지 않겠다고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전혀 손해보지 않지.
병희: (영진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자) 아니, 지금 바쁜 사람들 잡아놓고 뭐하는 거야! 기사 오보야?
영진: 아니요.
병희: 재홍이가 준 이거 말고 더 알아야 되는 거 있어?
영진: 아니요.
병희: 됐네, 그럼. 평소대로 해! 우리한테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으면서 뭐 할 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서 있는데!
진수: (참다못해 박차고 일어서며) 아! 그거 적당히 좀 해요! 동료들 등신 만든 팀장님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후배라도 직속 상관한데 그렇게 빈정대는 형도 잘한 거 없어요. 그리고 팀장님, 우리는… 도구가 아니라 동료예요.
영진: 박진수 경사.
진수: …네.
영진: (시크) 내가 김병희 경사보다 짬밥 더 먹었어요.
(그 말에 다들 웃음 터지고)
영진: 황 계장님이 줄곧 말씀했어요. 동료들한테는… 최수정이 내 친구였다는 거 말하라고.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후회되네.
병희: 아이고, 지금까지 안 들킨 게 용하다. 차 팀장이 범인 전화 받은 거, 황 계장님이랑 지금 여기 우리 말고 또 누가 알어?
영진: 수정이 어머니요.
병희: 지금 이거까지 기사 나가면은, 그때부터 제보자는 이 안에 있는기다잉. 뭔 소린지 알아듣지?
선우: 저희 반에, 은호하고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다가 사이가 틀어진 학생이 있어요. 근데 그 학생이 학교 시험 문제를 알아냈는데, 그걸 은호한테도 보여줬다네요.
소연: 사이가 나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선우: 근데 그 녀석이, 은호하고 다시 친해지고 싶었대요. 그걸 보여주면 은호가 좋아할 줄 알았다고.
소연: 안 봐도 뻔하네요. 학교에 얘기하자고 했겠죠. 시험지를 미리 구해 볼 정도의 아이라면, 잘 살고. 학교에 손이 닿아있는 애겠네요.
윤 이사장님,
희섭: 네?
소연: 아유, 골치 아프시겠어요.
희섭: 그… 민성이 부모님도 날을 잡아서 성심어린 사과를 드리고 싶어합니다.
소연: (뿌듯하게 웃으며) 아, 참 자랑스럽네요. 우리 은호, 아빠도 없고, 엄마는 없는 거나 마찬가진데. 온전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 비할 수 없이 바르고 멋진 사람이란 게요. 어쩌면 보고 배울 아빠도 없고, 내 손을 안 탄게 참 잘한 거였나 봐요.
상원: 6장 6절.
상호: 너는, 기도할 때… (채찍을 집어드는 상원)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상원: (채찍을 내리치며) 골방. 다시.
상호: (더 겁에 질리며)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 은…
상원: 돌아서. (가차없이 상처투성이인 등을 내리치는)

상호: 너는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해라. 은밀한 중에 보신 아버지께서 갚으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격정적인 분노가 가라앉고) 비밀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는 지도가?
두석: 신생명의 복음이죠.
상호: (웃으며) 권재천, 아, 권재천! 그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가 일부러 신생명 복음을 지도로 만든 거야. 그 책은 우리한테 일상이니까. 암송을 잘하기만 하면 배불리 먹이고, 좋은 옷도 입히고, 편히 잘 곳도 주고. 하지만 한 글자라도 틀리면은, 매가… 살을 파고들었지. (고통을 느낀 듯 움찔하는) 두석아. 우리 기호 형 만나러 가자. 신생명 복음도 챙겨서.
두석: 순순히 지도를 읽어줄까요?
상호: 아니, 아니. 그냥 죽일 거야. 그 옛날처럼 첫 페이지부터 암송을 할 거야. (광기) 내가 한 글자 틀릴 때 마다 매를 들어야지. 어때? 매질은 희동이가 하는 게 좋겠다. 그지? (신나서 희동에게 전화를 걸어) 희동아, 희동아! (싸늘) 신생명 복음 가져와.

13. 12화

상호를 구해서 신생명교회로 데려온 상원
재천: 넌 이름조차 없다고? (끄덕이는 상호) 내가 이름을 줘야겠구나.
상원: 목사님. 목사님께서 제게 주신 이름을 이 아이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재천: 괜찮은 생각이구나. 상원. 기호. 널 낳아준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니?
상호: 백, 영미.
재천: 지금부터 너의 이름은 상호다. 백상호.
상호: 백, 상호.
재천: 가져와라. (신생명의 복음을 거네주며) 여기 적혀있는 말씀을 네 몸에 흐르는 피가 되게 하라. 그러면 너와 나의 몸에는 같은 피가 흐르게 되니라.
연락이 닿아 마침내 만나게 된 영진과 기호
영진: (신생명의 복음에 라이터를 가져다 대며) 이게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호: 형사님께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됩니다.
영진;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
기호: 아니요. 제가 말을 잘못 했네요. 형사님께서 진실을 밝힌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영진: 이 책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엄청난 가치가 있겠죠. 그만큼 위험한 물건일 테고. 하지만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그저, 평범한 책일 뿐이죠. 그래서 은호한테 맡겼겠죠. 사람을 살리고, 병원까지 따라갈 만큼 착한 아이니까. 귀찮아도 거절하지 않을거라 예상하고… (기가 차는) 하, 내 입으로 설명하는데 이해는 안 돼.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자기 목숨을 구한 애한테 이런 위험한 물건을 맡길 생각을…!
기호: 그래서 맡기고 싶었습니다. 내 목숨을 구해준 아이니까요. 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봤던 세상이 그 아이 얼굴이었습니디. 그 아이 눈빛이, 뭐랄까, 내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어요. 난 평생 거부해 본 적도 없고, 뭔가를 선택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살았죠. 그런데, 신기하게 그 아이한테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더군다나 그 아이 이름이 은호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 이름의 한 자를 빌려다 쓰는 그 누군가가 떠오르는 순간,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책을 통해서 얻게 될 내 몫의 보상을 그 아이와 나누겠다고요.
기호: 예전에, 죽음 직전에 구해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출생 신고도 안 되어 있고,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 아이 엄마가 쪽방에 그 아이를 가두고 자물쇠를 잠그고 사라졌어요. 서상원 목사가 구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세상에 왔다는 흔적 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겁니다.

(그 시각,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이유에 떨고 있는 상호)

상원: 두려워 마라. 넌 내가 선택한 자이다. 나 역시 선택된 자이고. 선택된 자들은 두려움이 필요 없단다. 우린 무엇을 해도 구세주 앞에 당도할 사람들이야. 너의 뒤에는 항상 신의 가호가 함께 한단다. 혹, 두려움이 찾아오거든, 이 구절을 떠올리렴.

상호: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 하지 아니 하리니…" (떨림이 잦아들고 미소지으며)
사람이 내게 어찌 할까.
선아: 차영진이 장기호 확보한 거 같아.
두석: 지도 가지고 증거 찾으러 갔겠죠?
선아: 백 대표님, 일단 빨리 한국 밖으로 빠져나가.
상호: (말없이 주스를 원샷하고) 모든 신생명의 복음에 권재천의 보물지도가 들어있는 걸까? 아닐 거야. 장기호가 왜 이렇게 숨어 지내면서 은호를 만나려고 했겠어? 은호한테 맡긴 신생명의 복음만이 진짜 지도인 거야. 근데 은호가 기억을 못 찾았네? 그럼 차영진도 책을 찾지 못 했을 거야. 나한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있어. 장기호도 책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냥 내 식대로 게임을 하면 돼.
선아: 선택의 여지 없어! 일단 몸을 피하는 수 밖에!
상호: (격분) 아니야, 아니야! 선택은 내가 해야 돼!
소연: …너 재채기 알러지 담임한테 물어봤다며. 나한테도 물었었잖아. 왜 그랬어?
은호: 유전이라는데, 엄마는 아니니까. 아빠일까 해서.
소연: 네 아빠도 없었어. (결국 참지 못하고) 제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혼자 끙끙대지 말고.
은호: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았으면, 우린 망가졌을 거예요. 아빠 혈액형으로 내 혈액형이 나올 수 없다는 거 알았어요.
소연: 언제부터.
은호: 열두살이요.
소연: (충격) 아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걸 속에 품고 살았던 거야? 아니, 어떻게 어린 애가 그걸 속에 품고 살아? 말을 했어야지!
은호: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둘만 사는 거, 나쁘지 않았어요.
소연: 치. 괜찮은 윗집 아줌마도 있고? 다치고 나서 너무 겁이 났어. 그래서 체면 내던지고 울었어. 나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나중에 정신 들어보니까, 생사를 오가는 자식 앞에서 난 자식 잃은 엄마가 된다는 내 걱정만 하고 있었어.
은호: 난 엄마가 가끔, 아니, 자주 이해가 안 가요. 나를 슬프게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절망하게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엄마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소연: (울컥하는) 나는…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늘 답답했어. 그리고 날 비난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때가 되면, 날 버리겠지?
은호: 어릴 땐 늘 무서웠어요. 엄마가 날 버릴까 봐. 근데 내가 어떻게 엄마를 버려요… 생각도 안 해봤어.
태형: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선우 선생님.
선우: 그래. 오랜만이다. 네 소식 듣고 나서 연락하려고 했는데, 정말 너무 정신이 없었다.
태형: 쌤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잠깐 마음은 쓰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선우: (쓴웃음) 그래. 백상호 대표는 어디서 만났니?
태형: 제가 정말로 죄를 짓고 유치장에 있을 때, 도움을 줬어요.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선우: 그땐 미안했다.
태형: 됐어요. 지금 애들한테나 잘해주세요. 아, 특히 동명이요. 뭐, 연민, 동정 같은 걸로 어설프게 곁을 내줬다가 성가시다고 내칠 거면 지금 거릴 둬요.
선우: 다시는 같은 실수 안 할 거야.
태형: 아… 그걸 실수라고 말하시네요. 먼저 간다고 애들한테 전해주세요.
선우: (가려는 걸 붙잡으며) 태형아. 백상호 대표, 너무 믿지 마라.
태형: (단호하게 뿌리치며) 내가 가장 힘들 때 나한테 손을 내민 사람을 믿겠어요, 아니면 나를 믿어주지 않았던 쌤 말을 믿겠어요?

영진: 이선우 선생님 말, 흘려듣지 말아요. 내가 동명이를 의심할 때, 이선우 선생님은 동명이를 믿고 싶어했어요. 그 마음은, 김태형 씨 때문이예요.
영진: 선생님 도움이 필요해요.
선우: 네. 도울게요.
영진: 뭔지 들어보지도 않고요?
선우: 믿으니까요. 차영진이라는 사람.
영진: 괜찮아요? 어쩌면 내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선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죽을 짓 할 만큼 나쁜 놈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형사님이 옆에 있어도 걱정될 거 없죠 뭐. 그래서, 내가 뭘 도우면 돼요?
영진: 은호가 장기호와 신생명의 복음을 기억해냈어요.
(중략)
영진: 백상호가 애타게 찾는 신생명의 복음, 반드시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요.' (말 없이 웃자) 왜, 뭐가 잘못됐어요?
선우: 방금 '우리'라고 그랬잖아요. 듣기 좋은데요?
영진: 선생님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선우: 걱정 마요. 이렇게 가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은 내뺄 거니까. 왜요. 왜 그렇게 봐요.
영진: 그동안… 내뺄 기회 많았는데. 때를 놓치면 벗어나지 못 할 수도 있어요.
선우: 딴 건 모르겠고, 은호도, 형사님도, 아무도 안 다쳤으면 좋겠어요. 혹시 누가 다쳐야 하는 거면, 차라리 내가 나을 거 같기도 하고.
영진: 고맙지만, 나는 내가 지켜요. 하지만 은호는, 지켜주세요.
선우: 네. 그럴게요.
인범: 오랜만에 수정이 자료 다 훑어보고 네가 받은 전화 내가 받았다고 했을 때도 떠올려 봤다. 내가 널 세상의 호기심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했던 그 거짓말, 그게 아니었음 넌 그때 이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을 거고, 그럼 지금처럼 수정이 친구란 거 감추고 사건을 맡을 수도 없었겠지.
영진: 무슨 의도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인범: 너, 성흔을 해결하고 나면 경찰을 떠날 거라고 했지? 그 말은, 해결할때까지 반드시 여기 남아 있어야 한다는 얘기고.
영진: 저 대신 떠나실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인범: 네가 잃을 게 더 클까, 내가 잃을 게 더 클까, 그걸 생각하지 말고, 누가 남았을 때 얻을 게 더 클까를 생각하자고.
영진: (자책하며)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다 불행해져요.
인범: 아니, 불운한 거지. 그게 네 책임도 아니고. 도리어 불운한 사람 곁에 너처럼 남의 불운을 안고 살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불운이 불행까지 가지 않게 막아주는 거 아니겠니.
영진: 형사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인범: (웃으며) 아마, 은호도 널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다.

14. 13화

1998년, 성흔 1차 사건
하나: 살려주세요…
상원: 웃어봐요. 어서요. (만족) 훨씬 좋네요.
하나: 살려주세요…
상원: 살려줄게요. 당신 동생이 부탁했어요. 병든 우리 언니 도와달라고. 이제 당신은 나로 인해 새롭게 태어날 거예요.
(살해 후) 상호야. 가까이 와서 봐야지. (손을 잡으며) 이 손에 나타나길 간절히 바랬던, 성스러운 상처, 복된 고통이다. 대신 네 영혼에 새겨두거라.
상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영진: 여보세요? (연결이 불안정한 탓에 결국 나가서 받는) 어.
수정: 전화 좀 한번에 받아라.
영진: 너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지 마. 집안에서 전화 안 터지는 거 뻔히 알면서. 특히 비올 때. 그리고 밤에.
수정: 안테나 하나 더 달아.
영진: 됐어. 너 아니면 전화 올 데도 없어. (갑자기 끊겨버리는데) 어. 갑자기 그냥 끊겼어.
수정: (웃으며) 이렇게라도 해야 네가 나한테 전화하지.
영진: (헛웃음) 끊을게.
수정: (다급) 영진아, 영진아. 보육원, 토요일 말고 금요일에 가면 안돼?
영진: 알겠어.
수정: 이유도 안 물어봐?
영진: 새로 나온 영화 보려는 거 아냐?
수정: (웃으며) 같이 보자.
영진: 됐어. 다른 애랑 봐. 나 사람 많은 거 싫어하잖아.
수정: (서운) 치. 너는 진짜,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영진: 지금보단 조용히 살겠지. (웃음) 끊는다.
영진: 온통 하얗네. 얘는 엽록소가 없는 거 같은데.
할아버지: 그래서 온갖 썩어가는 것들을 먹고 살아. 기특하지? 겨우살이는 저 높은, 볕 좋은 곳에 자리잡고 다른 녀석의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데, 이 녀석은 어두운 곳에서 냄새나는 것들을 먹어서 깨끗하게 만드니까.
영진: 겨우살이는 기생식물, 얘는 부생식물.
할아버지: 사람도 겨우살이 같은 사람이 있고, 요녀석 같은 사람이 있어.
영진: 기생식물처럼 살지 말고, 부생식물처럼 살라고요?
할아버지: 그것도 맞는데, 사람은 도우면서 함께 사는 거야.
영진: (웃음) 그건 공생.
죽은 참새를 묻어주는 영진을 지켜보는 상호
상호: (웃으며) "착한 아이네. 생의 고통에서 구원 받을 만큼."
(수정을 기절시켜서 숲속으로 끌고 간 상호, 휴대폰을 빼앗아 확인하고)
상호: 아까 누구한테 전화한 거야? 차영진. 다시 전화해볼까?
(세 번째 전화, 영진은 끝내 받지 않고) 안 받네. 너무 서운해하지 마. 니 고통은 곧 끝나겠지만, 차영진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자기 대신에 니가 죽었다는 걸 말해줄 거 거든. 그 이유는 당연히,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게 진짜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 거든.'''
영진: 내 친구 사진하고 빨간색 휴대폰을 봤다고 했지? 휴대폰도 사진이었어?
은호: 아니요. (그 순간 마지막 기억이 떠오르는)
작은 방에서 본 게 아니에요. 호텔 10층, 서재에서 봤어요. 본 걸 들키면, 날 죽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상호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벌써 또 샀어?"라고 물어봤어요. 내가 책을 잃어버린 걸 알고 있었던 거예요.
(계단을 달려 내려가던 중 두석을 마주치고) 그 사람은 단번에 눈치챘어요. 내가 도망가는 중이라는 걸.
(침착하게 완강기를 설치하고 난간에 올라서는) 죽기 싫었어요… 죽을 만큼 무서워서,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위협적으로 달려오는 희동과 두석) 그 사람들이 나타난 순간, 뛰어내렸어요.
영진: (듣기 괴로운) 왜… 왜 중간에서 뛰어내렸어?
은호: 끌려 올라가는 순간, 정말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를까봐…
영진: (옥상에서 아주 태연하게 자신을 맞이했던 상호를 떠올리며) 죽일 거야. 죽여버릴 거야…!
은호: (겁에 질려 영진의 팔을 붙잡으며) 가지 마요, 무서워요! 아줌마도 다칠까 봐…
영진: 난 괜찮아…
은호: (고개를 저으며) 나 지켜줘요. 그 사람이 여기 왔었어요…!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어요…

은호야. 꼭 깨어나야 돼? 그럼 아저씨가…
다시 데리러 올게…
은호의 시점에서 다시 보는 그날의 진실
선아: 고은호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죽일 수 있겠어?
상호: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선아야, 날 몰라? 야, 난 그래야 되는 상황이 오면, 니들도 죽일 수 있어! 잊지 마. 너의 셋을 구원한 사람? 나야. 그러니까 나한테 다시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은호: 다 생각났어요.
선우: 왜… 뛰어내렸는지도?
은호: 살려고… 살고 싶어서 그랬어요.
영진: 선생님. 징계위 다녀올 동안 은호하고 있어줄 수 있어요?
선우: 단지 말상대 해주라는 건 아닐 거고, 은호를 지켜야 하는 상황인 겁니까? 그런 거야?
은호: (조심스러운) 선생님을 믿어도 돼요?
선우: 은호야. 나는 널 지키고 싶어. 근데 그게 단순히 네가 내 학생이기 때문 만은 아니야. 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 그걸 더 이상 숨기고 싶지가 않아. 너는 그걸 계속 그렇게 속에다 품고 살 거야? 그게 네가 정말로 원하는 거니? 선생님이 어떻게 해줄까. 그냥 여기서 멈출까, 아니면 그냥 물어봐줄까.
은호: (울먹이며)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선우: 내 조카 지원이. 네 동생이니?
은호: 네…
(마침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홀로 품어온 얘기를 털어놓는 은호)
은호: 죄송해요…
선우: 네 탓도 아닌데 네가 왜 죄송해야 하니.
은호: 지원이,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어요.
선우: (결연하게 은호를 마주보며) 고은호.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킬 거야. 내 몸에, 지원이의 일부가 있어. 네 몸에도 지원이의 일부가 있어. 너는 내 조카의 오빠고, 나는 네 동생의 삼촌이야. 나 믿어주지 않을래? (눈물을 터트리는 은호)
영진: 은호야. 책에,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도와달라고 썼던 거, 이것 때문이었어?
은호: 네.
영진: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네요. 책을 찾은 것도, 은호가 기억을 찾은 것도, 철저하게 숨겨야 돼요. 다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요. 상대가 어떤 낌새도 눈치 못 채게.
선우: 상대해야 될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지?
은호: 백상호…
영진: 그 미친 인간은 내가 잡아. 그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내가 널 찾아낼 거라고 했지? 이제 내가 널, 잡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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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호를 씹어먹을 기세로 읊조리는 영진
희섭: 자수를 하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민성 엄마: 내 돈과, 내 아들을 그쪽에게 맡긴 결과가 이건가요?
희섭: 정당한 투자였고요, 민성이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민성 엄마: 어떻게 같아요?! 들어간 돈의 자릿수가 다른데. 은호라는 애, 아빠도 없이 엄마가 벌어먹고 산다는데, 그런 애가 뭘 보고 자랐겠어요? 맘 약한 민성이가 불쌍해서 호의를 베풀었는데, 협박을 해? 그게 애가 할 짓이에요?
희섭: (덩달아 분노하며) 어머니. 은호가 다쳤고요, 댁의 운전기사 죽었습니다. 민성이 잘못은, 그래요. 아직은 아이니까요. 반성과 사과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잘못은요, 참회와 사죄, 그리고 그에 합당한 벌 받아야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민성 엄마: (비웃음) 성인군자 나셨네. 부인 덕에 그 자리에 앉은 주제에. 이제부터 내 돈, 내 아들? 당신한테 못 맡겨.
민성 엄마: (수업이 진행 중인 반에 난입하며) 가방 싸.
교사: 저기, 민성이 어머님.
민성 엄마: 민성이 전학갈 거예요. 안 싸고 뭐해?!
동명: (민성이 그대로 끌려나갈 위이게 처하자 무심하게 나서며) 하민성. 부생이 무슨 뜻이냐?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봐.
민성: 생물의 죽은 몸이나 배설물 따위에 붙어 살면서, 영양분을 흡수하며 사는 걸 말해.
동명: 왜?
민성: 엽록소가 없어서.
동명: 음… (민성 엄마가 끌고 가자) 하민성! 그럼 기생은 뭔 뜻이냐?
민성: 다른 생물에 붙어서 영양분을 흡수하며 사는 거야.
동명: 기생충처럼? (끄덕이는 민성) 너가 설명해 주니까 공부할 마음이 생기네. 공부해서, 남도 주는구나.
민성 엄마: 수준 하고는… 너 엄마가 저런 애랑 말도 섞지 말랬지?
민성: (단호하게 손을 뿌리치며) 엄마. 나 다른 학교 가면, 이런 애처럼 살 거야. 그래도 되면 따라갈게. 근데 여기 있게 해주면, 지금처럼 공부는 열심히 할게.
영진: 은호가 기억을 찾았어요.
인범: 추락 당일까지? 혹시 백상호야?
영진: 네. 은호가 백상호 서재에서 수정이 사진하고 휴대폰을 봤대요.
인범: (놀람) 아니, 휴대폰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영진: 네. 그래서 뛰어내리는 선택을 한 거예요.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인범: 서상원에게 공범이 있을 거라는 네 추측이 맞았네. 강력 1팀에 회오리가 몰아치겠다. 이럴때 길잡이를 잃으면 이리저리 휩쓸리다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영진: 사실, 아침까지만 해도 범인의 전화를 받은 건 황인범 형사님이 아니라 저라고 말하려 했어요. 당시 범인이 했던 말까지 전부…
인범: 아니, 왜. 양심에 걸려서?
영진: 아무리 생각해도, 형사님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순 없으니까…
인범: 아니, 괜찮다니까! 그 실낱같은 양심이, 지난 20년 네 가슴속에 자리잡은 태산같은 사명에 비할 바 아니잖아.
영진: (눈시울이 붉어지며) 저에겐… 둘 다 태산이에요. 하지만, 죄송해요. 정말 죄송한데… 수정이 죽인 범인, 꼭 제 손으로 잡고 싶어요.
인범: (그제서야 미소지으며) 그래, 임마. 그게, 내가 바라던 대답이야.
징계위원회, 인범의 소명
인범: 19년 전, 성흔 8차 사건 피해자의 전화로, 범인이 피해자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제가 그 전화를 대신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관심을 받다 보니까, 저라는 인간의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범인을 잡겠다는 사명감은 어느새 공명심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공명심에 얽매여서 한창 초조해 있을 때, 갓 경찰이 된 차영진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차영진과 모든 수사 기록을 공유했고, 그를 수사팀에 합류시켰습니다.
피해자의 절친이라는 사실은 굳이 동료들에게 얘기할 필요 없다,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위원장: 이해가 안 되네요. 아무 검증도 안 된 여자 순경을, 그것도 피해자의 친구라는 약점이 있는데, 무리하게 수사에 참여시키려 한 이유가 뭡니까?
인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일한 친구를 잃은 차영진의 분노와 슬픔은 부족한 수사 기법을 메꾸게 해주고,
또, 범인을 잡겠다는 열망은, 강력한 수사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범인을 잡아서 이름을 세우겠다는 열망은 차츰 사그라들고, 또 저 자신, 많이 지쳤고,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차영진은 멈출 줄을 모르더군요. 만약 이 사태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거짓말 한 것도 저고, 포기한 것도 접니다. 차영진은 공명심에 눈멀었던 저한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영진: 장기호를 찾았어요. 장기호와 백상호가 찾는 물건까지.
병희: 또 혼자 처리할 생각이었어?
영진: 네. 그땐 그랬는데, 이제 같은 실수 하고 싶지 않아요.
성흔 8차 사건의 공범, 혹은 모방범.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어요. 밀레니엄 호텔의 주인. 백상호.

15. 14화

선우: 은호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 보세요. 은호 어머니 오실 때까지 옆에 있어주다가, 제가 책 가지고 바로 갈게요.
많이 놀랬죠? 저도 많이 놀랬어요. 내 조카한테 피가 섞인 오빠가 있다는데, 그게 우리 반 학생이라니까…
이 상황이 머릿속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그러던 중에 동명이 동생이 그린 그 그림이 떠올랐어요.
그때 차 형사님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핏줄이 아니어도, 다 그렇게 이어지는 게 아닐까.
앞으로 시끄럽고 복잡한 일들이 닥칠 걸 잘 알고 있는데, 나한테 이어지는 점 하나가 더 생기는 건데,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려고요. (영진이 부드럽게 미소 짓자) 착한 아이 보듯이 보시네요.
영진: 맞아요. 이선우 선생님, 착한 사람이에요.
근만: 차영진. 징계위 조사 조금 전에 끝났어. 끝나자마자 다시 지인 사건 맡겠다고?
영진: 이번 사건이 마지막이 돼도 상관 없어요.
근만: (제대로 분노) 또! 또! 또! 툭하면 마지막이다, 상관 없다, 나가도 된다, 니가 그런 태도로 나오면 우리는 뭐가 되냐고! 정말 필요한 놈은 나가도 상관 없다 그러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도 죽어라 자리 지키려고 용쓰는 우리같은 놈은, 나같은 놈은 어쩌라고!
진수: 아이, 계장님. 뭘 또,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근만: 시끄러! 나 같은 놈이 버티려면, 너 같은 놈이 있어 줘야 된다고. 알아?!
병희: 그래서 뭐 어쩌자고요?
근만: 지금부터! 이 사건 내가 책임지고 지휘한다. 외부적으로는. 하지만 니들은, 차영진 지휘 하에 움직여. 이의 있어?
전원: 없습니다!
근만: 차영진, 컨티뉴.
영진: …네. 다들 고맙습니다.
은주: 그런 소리 안 붙여도, 여기 있는 우리들, 다 차 팀장이 굴리는 대로 구를 사람들이야. 그냥 다 떼고 빨리 지시해.
태형: 백상호 이사장님이 다시 전화하실 거예요. 받으세요.
선우: 너 지금 백상호하고 같이 있니?
태형: …끊을게요.
선우: 태형, (할 수 없이 상호에게 전화를 걸고)
상호: 어. 역시 태형이가 우리 선우 약점이었구나?
선우: 지금 애 데리고 뭐하는 거예요.
상호: 너는 니네 반 애들 놔두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우: …무슨 소리예요?
상호: 당장 학교로 와. 내가 30분 줄게. 아니면 니네 반 종례에 내가 들어간다?
애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나도 몰라. 하민성 운전기사 얘기를 할까? 아니면은, 은호가 삼천만원을 신고하지 않은 얘기를… 아, 것도 아니면은 너하고 태형이 얘기를 할까? 어떤 얘기를 해도 애들이 배울 게 있는 얘기잖아.
선우: 애들 데리고 장난치지 마라.
상호; (작게 중얼거리며) 나도 애였어. 자, 지금부터 30분, 준비… 시작.
(태형이 자신을 미행하는 걸 백미러를 통해 확인 후, 책을 가지고 거침없이 차로 걸어가는)
선우: 백상호가 시킨 거니? (책을 보여주며) 이걸 가지고 오라고 한 거야?
태형: …맞아요.
선우: 이게 뭔 줄 알고?
태형: 재단 비리가 숨겨져 있는 책.
선우: 태형아. 나 좀 도와주라. 나 30분 안에 학교로 돌아가야 돼. 근데, (필사본을 보여주며) 이걸 지금 당장 차영진 형사님께 전달해 줘야 돼.
태형: (헛웃음) 우리 재단 조사하는 거 나보고 도와달라고요. 내가 보는게 없고 아는 게 없어서 한생명재단에 있는 줄 알아요? 부당한 방법으로 수익 얻는 거 알아요. 근데, 그 돈으로 목숨 건진 애들 여럿 봤어요. 내가 백상호랑 이선우 중에, 누굴 믿을 거 같아요?
선우: 날 믿어달라는 게 아냐. 내가 널 믿으니까 부탁하는 거야.
태형: (부정) …거짓말. (시간이 촉박한 선우가 그만 내리려 하자) 어디로 가면 돼요?
영진: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다녀와서 하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못 담아두겠어. 사고 나기 전날 밤 나 찾아왔을 때, 그냥 보내서 미안해. 그날 충분히 평소하고 다르단 걸 느꼈는데, 그렇게 느꼈는 데도 널… 그렇게 보냈어. 몰랐던 거 아냐. 모른 척… 했던 거지. (서러움이 북받힌 은호가 울먹이자 덩달아 울컥하며) 미안해, 은호야. 고은호, 내가 지금 네 옆을 비우는 건, 너를 지키기 위해서야. 수정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나를 지키려고. 내 잘못을 대신 책임진 사람이 있어. 너만이 아니라, 나도 보호받고 있어. 나만이 아니라, 너도 나를 지켜줬어. 지난 7년 동안…
은호: (울다가 웃으며) 오글거려요.
영진: (그에 따라 웃으며) 어렸을 땐, 내가 영웅이라는 민망한 소리도 잘 했으면서.
은호: 난 이제 애가 아니잖아요.
영진: 너 아직 애야. 열다섯밖에 안 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은호: 아니요. 천천히 될래요. 지금이 나쁘지 않아요.
(따스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 둘)
태형: 이선우 선생님이 전해주래요. 진짜 책은 학교로 다시 가지고 갔어요.
영진: 정말 고마워요. 쉽지 않았을 텐데.
태형: 차영진 형사님을 믿으니까요. 은호 간병하면서 형사님 지켜봤어요. 피 한방울 안 섞인 애한테 어떻게 저렇게 애틋하고 헌신적일까. 신기했고, 은호가 부러웠어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 이건 이선우의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라 차영진을 돕는 거예요.
영진: 은호하고 나, 7년이란 시간을 알아왔어요. (끄덕이는 태형) 갈게요. (가는 듯 하다 돌아서며) 이선우 선생님한테도 기회를 한 번 주지 그래요.
태형: 애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때렸어요. 그런 내가 무슨… 기회를 어떻게…
영진: 그땐 아직 어렸잖아요. 더 늙기 전에 화해해요.
소연: 나 물건 아니에요. 값 메기듯 아래위로 쳐다보지 마시라고요.
민성 엄마: 죄송하지만, 다음에 자리 갖죠. 지금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은호 엄마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실 거 같아서 걱정 돼요.
소연: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민성 엄마: 뭐라고요?
소연: 나 사람이라고. (심장을 툭툭 치며) 감정 있는 사람. 내 아들이 당신 아들 때문에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는데, 아프고, 화나고, 분한 거, 그거 당연한 거 아닌가?

소연: 은호한테 왜 시험지를 보여줬니?
민성: 화해하고 싶었어요.
소연: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은호한테 겁을 주라고 그런 곳으로 불러내서, 대체 어떻게 하면 내가 널 용서할 수 있겠니?!
민성: (고개를 푹 숙이며) 안 받을래요.
소연: 뭐를?
민성: 나 때문에 은호가 다치고, 삼촌이 죽었어요. 나라면 용서 못해요.
소연: 그래서. 사과도 안 할 거야?
민성: (조심스럽게) 해도 돼요?
소연: 나도 모르겠다. 근데 네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잖아.

민성 엄마: 조심해서 가세요.
소연: 네. 나중에 면회 갈게요. (내려가다 돌아보며) 우리들은 운이 참 좋아요. 엄마들은 이 모양인데, 그런데도 아이들은 참 착하잖아요.
상호: (숫자들이 통 해독이 안 되자) 장기호 찾아와. (그 말에 셋이 놀라자) 반응들이 왜 이래? 죽은 사람 찾아오라는 것도 아니잖아.
선아: 차영진이 빼돌렸잖아.
상호: 차영진은 책이 없잖아.
선아: 책이 우리한테 있다는 걸 장기호가 알면? 그 일을 암시하는 말이라도 꺼내면…
상호: 아니, 아니, 아니! 장담하는대, 권재천은 장기호에게 그 일을 얘기하지 않았어.
선아: 백상호: 책 없애자. 책만 없으면 아무도 찾지 못하잖아.
상호; 그렇지. 그리고 나역시도 찾을 수가 없지. 자, 책이 내 손에 있어. 장기호 찾으면 다 끝나. 장기호만 있으면! (격분해 책을 내던지며) 내가 왜 이럴까? 어? 그게 날 무너트릴 위협이 되기 때문에? (답답) 아니야. 아니야! 모르겠어? 그거는,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내 영혼의 한 조각이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사자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신생명의 복음 특별판 120페이지

16. 15화

지도를 따라 온 두 사람, 그러나 그 곳에는
영진: 교회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죠?
기호: (망연) 아니야.
영진: 여기가 분명해요?
기호: 아니야…
영진: 똑바로 말해. 여기가 맞냐고.
기호: 아니야.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어… 책. 책이 잘못된 거야. 빨리 내 책 가져와요. 그 허접한 필사본 같은 거 말고, 내 진짜 책 가져오라고, 빨리!
영진: 책의 내용은 다르지 않아요.
기호: 아니야! 그렇다면 이럴 리가 없잖아! 빨리 내 책 갖고 와.
영진: 당신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니라면,
기호: 아니라면? 아니라면 뭐? 아, 그럼 내가 속았단 말입니까? 예?
영진: 나하고 그쪽 둘 중 하나겠죠. 장기호 씨는 어느 쪽인지 알 거고.
기호: 나는 형사님을 속이지 않아요! 아무도 속이지 않아 난! 우리 아버지도, 나를 속이지 않았어요.
영진: 임희정과 외우고 있던 내용이 같았나요? 확인해본 적 없으세요?
기호: 아버지는 나를 속이지 않았어요… 그러실 이유가… (세상이 무너진 듯 절규하는)
상호: 내일 예배 때, 간증할 시간을 허락해 주세요.
재천: 그 사이, 특별한 체험을 하기라도 한 거냐?
상호: 지난 2년 간, 일곱 번에 걸쳐서요? 부활의 기적에 대한 서 목사님의 깊은 믿음은, 네.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어요. 신생명교회 신자들과, 아니. 이 세상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을 만큼요.
재천: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상호: 성흔 연쇄살인. 성스러운 상처, 복된 고통. (경악하는 재천) 서 목사님이 희생자들 손을 뚫을 때마다 하셨던 말씀이에요. 내가 어릴 때, 회초리로 맞고 나서 매번 들었던 말이죠. 당신 아들, 제가 멈추게 해드릴게요. 그 대신에, 당신 딸한테 원래 주려고 했던 그 선물, 그거 나한테 주세요.
재천: 설마. 기도원 지을 땅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지?
상호: 그 정도는 주고 받아야, 이 신뢰가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재천: (교활한 웃음) 부족하지. 담보로 네 인생 정도는 걸어야 내가 너를 믿지. 안 그러냐?

(수정을 살해하는 모습을 캠코더에 녹화해 가져온 상호)
재천: (만족) 약속대로 땅을 주마.
상호: 돌려받을 때까지, 잘 지키셔야 합니다?
재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상호: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
재천: 염려 마라. 이제부터 우린 공생 공멸이니,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숨겨둘 거야.
상호: 장기호. 아, 이렇게 애멕일 줄 알았으면은, 임희정. 살려둘 걸 그랬나?

상호: (경건히 무릎을 꿇고) 이름도 없이 자물쇠로 잠긴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천사처럼 나타나 저의 생명을 구하고 이름을 나눠주셨어요. 그때부터 제 영혼의 주인은 아버지셨어요. 그런 제가, 아버지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키워 눈이 멀고 영혼을 잠식당했습니다…
상원: 충직했던 나의 제자…
상호: (흐느끼며) 아버지…
상원: 신실했던 나의 아들,
상호: 제 마음을 찢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상원: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상호: (미소와 함께 단숨에 광기어린 표정으로 바뀌며) 지금까지 구원의 은총을 억압하고 있던 타락한 임희정을 벌하세요. 그리고, 구원의 숫자인 8을 채우고, 부활의 기적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상원: 타락한 임희정의 죽음으로는 부활을 완성할 수가 없어.
상호: 그렇다면 아버지, 아버지의 수모를 대신해서 임희정 만은 제가 벌할 수 있게 해주세요.
상원: 허락하마.
상호: (경멸하는 눈으로 노려보자) 임 권사님은 날 처음 봤을 때 부터 그런 눈이었어요. 그러니까, 권사님은 날 협박하지 않았더라도, 네. 언젠간 내 손에 이렇게 됐을 거야. 날 보는 당신 눈이, 날 버린 사람 눈하고 많이 닮았거든. (당황) 이니, 오해는 하지 마. 눈빛이 그렇다는 거니까. 아이, 우리 엄마는 당신하고 달리 상당히 예뻤어. 나 보면 알 수 있잖아. (웃음)
춥죠. 아버지 손에 죽어가던 여자들처럼. 30분도 안 돼서 죽은 여자도 있었어. 너무 깊숙이 찌르더라고. 아이, 권사님은 좀 오래 걸릴 거예요.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 잘했죠? 내 비밀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는 지도, 장기호가 찾으러 갔지? 말해볼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그… 소리질러도 소용 없어요. 알죠? (재갈을 풀어주며) 어딨어?
희정: 내가 죽으면, 세상에 다 풀릴 거야.
상호: 처음 협박할 때도 그런 말을 했었지. 근데 말이지, 아버지가 다 말해 줬어. 권재천, 그 영감탱이가 너희들도 못 믿어서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너희 남매들도 어딨는지 모른다고.
희정: 장기호… 아니, 충직한 내 동생이 지금쯤 지도를 손에 넣었을 거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세상에 니 죄를 다 알릴 거야. 그럼 넌 영원히… 창살 안에서 살겠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도 없었던, 코찔찔이 어릴 때처럼…
상호: …뭐? (잠시 굳어있더니 이내 피식 웃는) 하, 그 말은, 그러니까, 당신만 지도를 읽을 수 있단 게 아니라는 거네?
기호: 형사님이 어떤 사람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녹음기를 꺼내며) 은호 병실에서 발견했어요. 침대 밑에 붙어있더라고요. (소연과의 대화를 틀며) 많이 궁금했습니다. 대체 은호 엄마를 끌고 나가서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렇게 얌전해져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영진: 이 세상 어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도, 은호한테 소연 씨를 대신할 수 없어요.

기호: 부모란 그런 존잰거죠. 근데 은호한테는 그런 존재가 옆에 있는데, 형사님께서는 어떻게 7년 동안이나 은호를 돌봐줄 수 있었습니까?
영진: 방금 들으셨잖아요. 은호하고 나, 친구예요. 그 애가 먼저 내게 말 걸고, 걱정해줬어요. 나는 내 할 일 한 것 뿐인데, 은호는 나를 영웅이라고 했어요. 외롭지만 싫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은호가 다치고 알았어요. 나는 외롭지 않았다는 걸… (잔잔하게 미소 짓는)
소연: 아유, 너무 고생이 많아요.
재홍: 아이, 아닙니다. 저흰 일인데요. 고생은 어머니가 많으시죠.
소연: 처음에 병실 문 여는게, 아유, 너무 힘들었어요. 생지옥으로 들어가는 거 같아서. 그런데 지금은 문을 열기 전에 기대가 돼요. (화목하게 잡담하는 세 아이를 다정하게 보며) 오늘은 누가 와줬을까. 은호랑 무슨 얘기 할까. 그래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조금 걱정이 되네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까 봐.
재홍: 그럼 뭐 어떻습니까. 이젠 서로 진심을 알고 있는데.
자영: 일 시작하시면 연락 주세요. 머리 하러 갈게요.
소연: 꼭 이렇게 얘기만 하고 꼭 안 오시더라? (다 웃음) 꼭 오세요?
유판술 살해매장사건의 참고인으로 취조 받는 기호
영진: 당분간 백상호 눈에 띄지 않아야 해요. 저희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기호: 그럴 필요 없이, 내가 지도를 풀지 못했다고 백상호한테 알려주면 되잖아요.
영진: 믿지 않을 거예요.
기호: 형사님도 나 믿지 않으시잖아요. 내가 일부러 엉뚱한 곳에 데려갔다 생각 하시는 거죠?
영진: 처음엔 의심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가짜라는 걸 알아버린 장기호 씨의 막막함이, 날 속이기 위한 연기일 수 있을까.
기호: …아버진 언제나 서상원 목사하고 희정이에게만 역할을 부여했어요. 나는 늘 예외였고요. 자기들 일원이라고 하면서도, 난 한번도 그들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말 그대로 주변인이었던 거죠.
영진: 남은 시간은, 주인공으로 사세요.
기호: (희미하게 웃으며) 그래요? 그럼… 나를 백상호 잡는 미끼로 쓰세요.
영진: 거절할게요.
기호: 역시 날 믿지 않는 거죠.
영진: 장기호 씨가 위험해져요.
기호: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영진: 그럼… 은호가 당신 생명을 구한 게 너무 허무해지잖아요.

은호: 책, 찾았어요?
영진: 아직.
은호: 그 아저씬, 자기 생명만큼 중요하단 책을 왜 나한테 맡겼을까요. 안 받았음 좋았을 텐데. (한숨) 그랬으면, 이런 일 따위 겪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영진: 그래서, 그 사람 구한 거, 후회해?

영진: 잠깐 고민하더니,

은호: (고개를 저으며) 후회 안 해요.

영진: 후회 안 한대요.

은호: 나쁜 사람인 걸 알았대도, 구했을 거예요.
영진: 녹음기에서 나온 DNA가, 서상원의 옥상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증거물과 일치한대요.
인범: 그러니까, 공범이 있을 거란 네 직감이 맞았네. 수고했다.
영진: 이제 시작인걸요.
인범: 내가 다 뿌듯하다.
영진: 제가 누구 덕에 시작할 기회를 얻었는데요.
인범: 난 누구 덕에 중간에 포기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아니어도 네가 끝까지 갈 거니까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잖아. 그니까, 네 덕이다, 내 탓이다, 이런 얘기 그만하자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선우) 아이, 너무 우리끼리만 얘기했네.
선우: 아닙니다. 저, 듣기 좋았습니다. 그냥, 이 사건이 두분한테 굉장히 깊고, 큰 상처일 텐데, 서로 아는 만큼 같이 아파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그런 게 보기 듣고, 듣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되게 부러웠습니다.
인범: 영진아. 나, 네 덕본 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 내 주변에, 요즘 사람들이 많이 늘었어. 동명이, 한솔이, 민성이, 그리고 이선우 선생까지. 이 선생, 우리 앞으로 술친구 합시다. 가끔 영진이도 좀 끼워주면서.
선우: 그럴까요?
희섭: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지원 엄마한테 은호 얘기 다 하려고.
선우: 왜? 그렇게 하면 형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희섭: 꼭 그렇게 찔러야 돼? 너도 알잖아. 나 아무것도 몰랐다는 거. 다 알면서 모른 척 한 거 아니잖아.
선우: 몰랐다고,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걸까? …나한테 하는 소리야. 재단에서 추진 중인 사업, 교회랑 관련 돼 있는 거 맞지?
희섭: 넌 그런 거 몰라도 형이…
선우: 형은 나를 아주 갓난아기 때부터 봤어. 그지? 그때 처음 봤던 형은 거의 어른이었는데.
형이 나를 많이 아끼고, 걱정하고 있다는 거 알아. 어린 동생처럼, 뭐, 과하다 싶을 땐 마치 형 아들처럼.
근데, 형. 나도 이제 어른이야. 형이 아무리 나를 보호하려 그래도, 이젠 다치지 않을 방법이 없어.
나는 이제 다 알고 싶어. 제대로 다치고 싶어.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맞다고 믿는 방법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싶어.
신생명교회의 수많은 신자들과 백상호 앞에서 간증하는 기호
나는 부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신생명교회를 세우신 권재천 목사님께서는 예고 없이 심장이 멈춰 소천하셨습니다.
얼마 전, 나 역시 사람 없는 길 위에서 심장이 멈췄습니다.
신의 손에 이끌려 가던 중에, 아버지 권재천 목사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껏 아버지를 목청껏 불러보았습니다.
만약 그때 아버지를 따라갔다면, 곧 따라올 형제들을 만났을 겁니다.
뛰지 않는 심장은 평온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뜨거운 두 손이 내 심장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 어서 눈을 뜨라고! 어서 숨을 쉬라고! 애타게 외치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나의 심장은 다시 뛰고, 고통이 사라진 내 몸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처음 본 세상은, 한 아이의 얼굴이었습니다.
땀과 눈물로 범벅진, 순수한 기쁨으로 안도하는 아이의 모습이 부활해서 본 새상의 첫 모습이었습니다.
대가 없는 친절과 희생, 그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는 부활의 참뜻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육신의 부활은 덧없습니다. 영혼의 부활만이 이유없는 이 삶의 괴로움을 삶의 기쁨으로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 그건 본능입니다. 허나! 우리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며, 우리의 기쁨입니다. 거기엔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 있던 지난 시간, 나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한테서 기쁨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생의 남은 시간 동안, 그 기쁨을 직접 맛보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그 부활의 기쁨을 기적처럼, 선물처럼, 혹은 일상처럼 맞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잠깐의 정적 후,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환호성)
기호: 죄송합니다. 우리가 애를 잘못 키웠습니다.
상호가 어른한테 버릇없이 굴자 태연하게 한 말
상호: 못 본 새 캐릭터가 바뀌었네? 근데 죽다 살아나면서 겁대가리는 못살렸나 봐… 에이, 에이! (정색) 캐릭터 말고 취향을 좀 바꾸시지!
기호: 아, 그래, 맞다. (종이컵에서 찻잔으로 옮겨 담으며) 이 잔 맞지? 자. 내가 니 취향 알지. 보잘것 없는 알맹이를 화려하고 비싼 걸로 포장하는 게 니 취향이잖아. 아. 본성인가?
기호: 너도 책 가지고 숫자를 찾아봤으면 알 거야. 숫자가 총 스물 한개 나왔을 거야. 그지? (숫자들을 적어내리며) 근데 이 숫자 가지곤 니 죄악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가 없잖아.
상호: (분하지만 한 발 물러서며) 원하는게 뭡니까. 역시 호텔?
기호: 고은호.
상호: 뭐?
기호: 은호의 안전. 너 앞으로 그 아이 건들지 마. 아버지와의 거래는 공소시효란 없어. 니 죄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영원히 그 아이는 너로부터 안전해야 돼. 그러면은, 너의 죄도 영원히 안전할 거야.
상호: (시치미) 공소시효라니? 무슨 소리예요?
기호: 임희정이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잖아. 상호야. 난 상원이 형이 희정이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상호: (웃음을 터트리며) 기호 형! 형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어? 서상원 목사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날 위해서 뭐까지 할 수 있는지.
기호: (백상호의 DNA가 묻은 찻잔을 꼭 쥐고) 이걸로 정말 끝낼 수 있습니까?
영진: 아니요. 시작할 수 있는 거죠. 눈에 보이진 않지만 백상호의 일부니까. 그걸 시작으로 백상호의 모든 것을 밝혀낼 거예요.

17. 16화

기호: 차영진 형사님께. 저에게 속죄의 방법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숨겨두신 아버지와 백상호의 죄악의 증거를 찾으러 떠납니다.
그것이 설령 신기루라고 해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호. 그리고 형사님. 고맙습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그렇게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진 기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상호가 나타나자 황급히 뒤로 뭔가를 숨기는 희동)
상호: 가져와. (봉투 안에 들어있는 수정의 폰과 사진) 선아가 시켰어?
희동: 아이, 상호야, 다 너를 위해서야, 임마.
상호: (격분하며 희동을 벽으로 밀치고) 내 뒤통수 치는 게?! 너도 두석이처럼 나 버릴라고?
희동: (갑자기 발작하듯 웃더니) 케로 기억나? 그 보육원 사무장이 키우던 새카만 개. 줄이 풀리면 어김없이 사람을 물었어. 근데 애들이, 날 케로하고 창고에 가뒀었잖아. 그때 공포로 얼어붙었어. 몸도 마음도. 케로가 내 목을 물려고 달려들 때, 상호 네가, 네 팔을 케로 입에 대줬어.
상호: 내 질문에 답이 아닌 거 같은데?
희동: 그때 얼어붙었던 마음이 아직 녹질 않았어. 상호야, 나는… (울먹이며) 여전히 네 옆이 아니면 꼼짝 못 해.
선아: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상호가 들어오자) 왔어?
상호: 두석이도 니가 흔들었어?
선아: 애 마음 흔들리는 게 보이길래. 한 번 부추겨봤어. 어느 쪽으로 기우나 보려고.
상호: 나는 니 마음이 안 보일 거 같애?
선아: 궁금하다. 내 마음이 니 눈엔 어떻게 보일지.
상호: (제 품으로 끌어당기며) 너 없으면 내가 어쩌나… 걱정하는 거 알아.
선아: (마주 껴안으며) '나 구해줬을 때 니가 나한테 했던 말, 아직까지 그 말 보다 더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상호: 다시 해줄까?
(뭔가를 속삭이는 상호, 감격에 겨운 듯한 표정을 하는 선아)
상호: (한때는 셋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는 자리를 돌아보며)
기호 형. 형은 아직도 제대로 아는 게 없어. 덕분에, 내 선택이 너무 쉬워졌어.
선우: 하이고…
은호: 왜 그렇게 보세요?
선우: 좋아서. 네가 우리 반 학생인 게 좋아서. 그리고, 우리 지원이 오빠가 너여서 좋다. 야, 은호야.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너랑 엮여 있는 게 좋아. 선생님으로, 또 가족으로.
은호: 저 괜찮아요. 그냥 예전처럼 지낼래요.
선우: 지원이가 오빠가 있는 거 싫다고 했어가지고?
은호: 모르면 아프고 괴로울 일도 없잖아요.
선우: 근데, 은호야. 만약에… 네가 그렇게 예전처럼 지낸다면, 앞으로 지원이한테 생길 좋은 일들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네가 지원이 아껴주는 만큼, 그게 사라져 버리면 나는 되게 아까울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아프면 돼. 대신에, 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훨씬 많이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은호: (웃음) 네.
(병실에 난입한 상호가 은호를 데려가려 하자)
선우: 애는 건들지 마.
상호: 아, 또 그 소리. 씨. 아니, 왜 장기호도 너도 은호한테 뭐가 되는 것 처럼 나서는 거야?! 어? 선우야. 너는 뭐를 내 놓을래? 은호를 지키기 위해서?
선우: 내가 갈게. 나 데려가.
상호: 너를? 이선우… (폭소하며) 야, 너는, 나한테 아무런 가치가 없어! 어?
선우: 대체 왜! 왜 꼭 은호가 필요한 건데!
상호: 잊었나 본데? 은호를 살린 건 나야. 그러니까 은호는 내 거라고. 이게 이해가 안돼?
상호: 은호 그림 잘 그리네. 너 서재에서 다 봤구나? 그래서 떨어진 거였어.
은호가 그린 수정의 폰과 사진 그림을 발견하고
(선우의 연락을 받고 머릿속이 하얘져 달려나가는 영진, 그리고 19년 전 그 날 처럼 친구의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상호: 차영진? …아닌가.
영진: 맞아.
상호: (웃음) 이렇게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감격스러운데?
영진: 은호 바꿔.
상호: 왜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최수정이 마지막이라고 해서?
영진: 너는 은호를 죽이지 않았어.
상호: 떠보는 거야, 아님, 그렇게 믿는 거야?
영진: 내가 너라면 그렇게 쉽게 끝내지 않아.
상호: 역시. 맘에 들어. 그래, 은호는 살아 있어.

영진: 우리 이제 만나야지?
(밀레니엄 호텔로 향하는 영진)
내 집으로 초대할게. 아, 선물은 필요 없어. 근데, 친구들을 데려오면 좀 곤란해. 지금 집이 좀 엉망이거든.

널 위해서 모든 문을 열어놓을게.
(지문인식이 해제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하지만, 마지막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거야.
(10층에 도착, 문지기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는 희동을 마주하는)
옥상에서 영진을 기다리고 있는 둘, 울려퍼지는 총소리
상호: 아줌마가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차영진이 사격 실력이 아무리 안 좋아도 희동이를 못 맞추긴 어렵겠지?
은호야. 차영진도 나하고 다를 게 없어. 죽일 이유가 있으면 사람을 죽이잖아. (넥타이를 풀며) 이거 내가 제일 아끼는 거다? (재갈 삼아 은호 입을 틀어막는)
상호: (영진이 모든 총알을 허공에 발사하자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며) 아이, 그 빈 총 가지고 언제까지 버틸라고! 아, 역시 차영진. 내가 은호를 죽일 마음이 없다는 걸 알아주네. 은호가 여기서 뛰어내린 순간부터, 난 이 녀석한테 반했거든.
영진: 손 떼.
상호: 아,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은호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야!
영진: 은호는 보내. 우리 둘이 해야 하는 얘기잖아.
상호: 그래? 은호는 이미 최수정 사건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던데? 에이, 이거 어른이 돼서 애한테 그런 끔찍한 얘기를 해주면 안 되는 거잖아. 그건 아이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거야!
영진: 그러니까 지금부턴 은호 없이 우리 둘만 얘기해.
상호; 아니, 늦었어. 은호는 이미 강해졌어. 니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한 아이야. 이거, 보통 애가 아니지. 내 서재에서 내 정체를 눈치채고도 태연하게 걸어나갔어. 그지? 그리고 도망치겠다고 이 높이에서 뛰어내렸지. 더 대단한거는, 내 손에 끝까지 잡히지 않겠다고 줄을 놔버린 거야. (감탄) 이 녀석 이거, 훌륭해!' 자, 그러니까 걱정 말고 내 얘기 같이 들어.
상원: 이제, 은총을 내릴 자를 선택해야겠구나. 네가 죽인, 최수정의 친구가 좋겠다.
상호: 그 여자는, 부활의 기적을 증언해줄 증인이 될 거예요. 그 여자의 이름은 차영진입니다. 아직도 아버지를 찾고 있어요. 19년 전, 저와 통화했던 사람도 차영진이었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거짓말을 했죠. 성흔이, 곧 다시 일어날 거라고.
상원: 놀랍구나.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니… 그래, 그 여자가 증인이 되면 좋겠구나.
상호: (처연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으며) 아버지. 아버지께 감히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기엔, 제 죄가 너무 큽니다. 저를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부활을 완성하세요.
상원: (놀람) 진심이냐?
상호: 네. 날개 여섯개 달린 천사에게 성흔을 받은 성 프란체스코처럼, 저에게, (두 손을 내밀며) 성스러운 표식을 전해주세요. 아버지가 축복을 내린 자들과 같이 부활할 겁니다. (점점 광기를 더해가는) 그리고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끌며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여줄 겁니다, 아버지에게 선택받은 사람이 누리는 은총이 무엇인지! 마지막 축복은, 저의 것입니다. (간절히 열망하는 듯이) 아버지, 부디 저에게, 성흔의 축복을…!
상원: 아니다! 부활의 기적은, 내 손에서 시작해서 내 몸으로 완성될 것이다.
상호: 아버지… (한껏 도취되어 있는 서상원과 쓰러져 죽어가는 임희정을 보며 피식 웃어보이는)
상호: (상황을 보고받으며) 애 이름은? 고은호. 고은호, 고은호… 애를 쫓아. 애한테 물건이 있으면 장기호는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상호: 그때 니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지. 어, 착할 거라고 생각했어! 길바닥에 쓰러진 낮선 사람을 살리고 병원까지 따라갔으니까, 뭐. 말 다했지. 그런데 니가, 하, 차영진 아랫집에 살고 있다니. 아, 뭐, 거기까지는 재미난 우연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근데 말이야, 둘이 친구라잖아. 아무래도 차영진 대신 최수정을 죽인 거? 이거 운명이었나 봐! 은호야. 차영진 대신 최수정이 살고, 니가 최수정을 만났다면 넌 지금 어떤 아이일까? 분명한 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거라는 거야. 그러니까, 니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 차영진을 탓해.
영진: 넌, 서상원을 탓했어? 그래서 잠들어 있던 서상원의 광기를 깨우고 널 구한 두 손에 송곳을 꽂은 거야?
상호: 서상원의 신념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자기가 남긴 표식이 아니면 부활할 수 없다고 믿는 서상원이, 나한테 자기 손을 맡겼겠어? 난 자격이 없는데?
영진: 스스로 찔렀다는 거야?
상호: 이래서 증인이 필요한 거야. 진실된 증인.
상호: 아버지. 이제 시작하시죠. (망설임 없이 송곳을 들어올리는 상원)
저에게 채찍질을 할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성스러운 고통을 달게 받아라. 그리하면 너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는 자가 될 것이다." 아직 되돌릴 수 있습니다.
상원: (감격스러운 듯) 달구나…! 마저 받게 해 다오.
그렇게 상원을 도와 남은 한 쪽도 뚫어버리는 상호
상원: 길 잃고 헤매던 나의 어린 양, 나의 제자, 나의 자녀여! 나의 부활로 믿음의 축복을 받으라!
상호: (질린다는 듯)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나도 이제 어른인데.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해요, 서상원 씨.
(추락 후,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 영진이 서상원의 손에 수갑을 채우자)
상호: (웃음) 역시 차영진. 맘에 들어. 너 대신 최수정을 죽인 건 좋은 선택이었어.
영진: 좋은 선택? 백상호, 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상호: 글쎄. 나도 모르겠네. 엄마가 날 버리고 사라질 때 문밖에 자물쇠를 채웠어.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빰! 서상원이 나타났지. 근데 말이야, 날 버린 엄마는 울면서 때렸는데, 날 구한 서상원은 웃으면서 때렸어. 대답이 됐어?
영진: 넌… 괴물이 되기로 스스로 선택했던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너처럼 만들어야 마음이 놓였겠지. 너만 잘못된 게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했을 테니까.
상호: 그럴지도.
은호: (영진의 손을 꼭 잡으며) 아줌마. 이제 우리 그냥 가요.
영진: 미안… 은호야. 난 알아야겠어, 수정이 마지막을. 정말 미안해.
은호: 아줌만 이런 사람이니까,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면 몰랐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영진: (기특하다는 듯 웃음) 다 컸네.
상호: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힘들어질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영진: 그렇다고 해도… 아니, 그런 거라면 더욱 더 알아야겠어. 왜 내가 아니고 수정이었어?
상호: (답답) 그걸 알고 싶은 이유가 뭐야?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영진: 잊고 싶지 않아서. 수정이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 곁에 있던 사람이야.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됐어. 그런 존재가 나 대신 죽었어. 수정이의 마지막을 알고 싶어. 기억하고 싶어. 아파해주고 싶어. 할 수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까.
영진: 나를 살린 게 좋은 선택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 방에서 수정이하고 찍은 사진이 사라진 다음날 수정이가 죽었어.
사진이 사라진 날, 넌 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겠지.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을 바꾸고 사진만 가져갔어. 2000년 7월 31일이지.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수정이를 죽였어. 2000년 8월 1일 밤 0시부터 일어난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처음 계획대로 날 죽였다면 공소시효가 끝났을 텐데, 다음날 수정이를 죽이는 바람에 네 죄는 영원을 얻었어. 그래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난 말이야, 그 하루에 버텨 살았어. 공소시효가 사라지고 널 잡으면 죽이는 거 말고 방법이 없잖아.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 다른 선택이 주어졌어.
상호: 최수정으로 바꾼 이유? 최수정한테는 너 말고도 친구가 있지만, 너한테는 최수정밖에 없어서야.
아, 어느 쪽이 고통이 더 크고 오래 갈까를 생각했더니, 차영진이더라? 그래서, 차영진을 살려두기로 했지.
전화 걸기 전에 최수정한테 이렇게 얘기했어. 니 친구가 이거 받으면 살려줄게. 그 말에 최수정 눈에 희망의 빛이 번뜩였어. 어쩌면 살 수도 있다는 희망! 근데, 차영진은 끝까지 받지 않았어.
영진: 내가 받았다면, 정말 살릴 생각이었어, 수정이를?
상호: 아이, 그럴 리가! 내 얼굴에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어쩌면 살지도 모른다는 잠깐의 희망 때문에, 고통과 절망이 더 커졌을 거야. (웃음)
영진: (이를 악물며) 내가 꼭, 널…
상호: 죽일 거야. 평생이 걸려도 넌 내가 찾아. 그러니까, (울먹이며) 그때까지 꼭 살아 있어… (웃으며) 아, 이제 보니까, 어쩌면, 그때부터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 (어서 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리며) 이제 실행해야지. 그래야 끝이 나지.
영진: 나는, 그때의 차영진이 아니야.
상호: 과연 그럴까?
그러고는 수정이 남긴 말을 들려주는 상호
수정: 식구들한테 얘기해도 돼요? 엄마, 아빠…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너무 힘들어 하지 마요.
영진아, (울컥) 네 말대로, 분하고… 억울해. 이딴 게 인생의 마지막 기억이 되는 거.
그래서, 신나고, 즐겁고… 행복한 것만 생각할 거야. (애써 행복한 듯 웃어보이며) 그 안에, 너도 있을 거야.
(처절하게 울부짖는 영진, 같이 눈물 흘리는 은호)
(수정의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데, 그대로 떨어트려 버리는 상호)
영진: (분노가 치미며 멱살을 틀어쥐고) 죽일 거야, 니 바램대로!
상호: 아니지. 니가 원하는 거지. 최수정의 복수, 이 덧없는 인생에 대한 보상. 뭘 망설여.
영진: 살려 달라고 말해.
상호: 이제 그만 놔 버려.
영진: 살려 달라고 말해!
상호: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울먹이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웃음을 터트리는) 최수정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아야. 이 말을 끝으로, 붙잡힌 작은 새처럼 팔딱거리던 심장이, 멈췄어.
영진: 그래. 놔 줄게. 지옥으로 가.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하다, 결국 난간 안쪽으로 걸쳐버리는)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발목을 움켜 잡고 있는 은호에게) 이제 집에 가자.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상호
서상원에게 구해졌던 때,
서상원의 공범이 되어 성흔 연쇄살인사건에 가담했을 때,
그리고 서상원의 죽음을 도왔을 때.
다시 한 번 방의 문이 열리고, 눈부신 햇살만큼 포근한 미소를 띄며 손을 내미는 영진에 나지막히 읊조리는,

"너였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반항 않는 상호에게 수갑을 채우며)
영진: 백상호. 미성년자 납치 및 폭행. 그리고… 최수정 살해 혐의로 체포한다.
상호: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걸 후회할 거야.
영진: 배선아 어떻게 됐어?
자영: 위급한 상황은 넘겼답니다. 고희동 신변도 확보했고요.
상호: (귀를 의심) 뭔 소리야?
영진: 고희동이 늦지 않았나 보네. 배선아 살리라고 보내줬거든.
상호: (믿을 수 없다는 듯) 죽지 않았다고? 둘 다?
영진: 아무도 죽지 않았어.
(웃음을 터트리며 연행되는 상호)
재홍: 다친 덴 없으시죠?
영진: 괜찮아.
재홍: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
영진: 늦은 적 없어. 내가 기다려주질 않았지. 다음부터는, 기다리도록 해 볼게.
(마지막으로 은호를 마주 보며)
영진: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해.
은호: (웃음) 히어로랑 이웃으로 지내려면, 어쩔 수 없죠.
영진: 뭐?
은호: 아줌마는 내 영웅이니까.
영진: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웃으며) 오글거려…
은호: 다행이다. 다시 웃을 수 있어서.
(그 말에 마침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는 영진)
영진: (의식을 차리자) 은호는 괜찮아요. 저도 괜찮고요. 선생님은요?
선우: 엄청 아파요. 태어나서 이렇게 아파본 거 처음이네.
영진: 전에 누군가 다쳐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나을 거 같다고 했던 말, 허세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네요.
선우: 누가 이렇게까지 아플 줄 알았나.
영진: 쾌유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선우: 어디로 가요?
영진: 집에요.
선우: 은호는요?
영진: 집에 있어요.
선우: 차 형사님. 고마워요.
선우: 태형아.
태형: 아, 어떻게 알고… 차 형사님이 알려줬어요?
선우: 내가 집요하게 물어본 거야.
태형: (웃음) 아, 진짜. 믿을 사람 하나 없네.
선우: 그럴 거 같아서 왔다.
태형: 무슨 소리예요?
선우: 나나 백상호 같은 인간 때문에 네가 앞으로 아무도 안 믿으면서 살 거 같아서. 그때, 네 말 믿지 않아서, 네 말 듣기도 전에 의심부터 해서 내가 너무 미안하다.
태형: 사과받기엔, 너무 늦었어요. 선생님을 다치게 한 순간, 난 진짜… 의심 받을 만한 놈이 돼 버렸어요.
선우: 그럼 너도 나한테 사과 해, 임마. 나는… 그냥 받아줄 테니까.
태형: (깊숙이 허리숙여 사과하는) 잘못했어요.
선우: (살짝 붉어진 눈으로 어깨를 두드려주고) 나도 미안하다.
재홍: 백상호, 오두석, 고희동, 배선아의 진술섭니다. 확인해 주셔야 됩니다.
영식: 이 사람들… 악마 같았어요. 전요, 아직도 끝나지 않을 거 같아요…
병희: 악마처럼 나쁜 놈들은 맞는데, 우리가 잡았어요. 그냥 사람 맞어. 확실하게 안전 보장 받고 싶은가 본데, 그건 우리 책임이 되면 기본 옵션이에요.
재홍: 이영식 씨 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우리가 알잖아요. 인생을 책임져줄 수는 없지만, 도울 순 있을 겁니다.
영식: (오랜 갈등 후, 용기를 내서 두석과 희동의 진술서를 내밀며) 두 사람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영진: 두 분 다 힘들어 보이세요.
수정 어머니: 평생을 기다려온 순간이잖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긴장한 거 같다.
인범: 공판 내내 백상호 얼굴에서 눈 한번 못 떼시더라고.
수정 어머니: 20년 동안, 별의별 얼굴, 목소리, 다 떠올렸어요. 길 가다가 유독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저놈이 아닐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중엔, 범인 잡힌 가족들이 부럽더라고요.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이젠 내려놓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인범: 많이들 그러십나다. 어머님께 제가 면목이 없네요. 중간에 포기해서.
수정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영진이, 어떻게 감쌌는지 다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영진: 형사님 아니었으면 저 못 버텼을 거예요.
인범: (웃음) 말이라도 고맙다.
수정 어머니: 공판에 왜 안 왔어?
영진: 후회 할까 봐요. 그냥 죽게 내버려둘 걸… 그런 생각 들까 봐.
수정 어머니: (손을 잡아주며) 잘 살렸어. 그놈도 우리처럼 먹고 자고 그렇게 살겠지. 근데 오늘 그놈 얼굴 보니까, 지 머릿속이 다 지옥인 거 같더라.
"결국, 그 방으로 돌아온 건가?"
다시 돌아온 지옥에서 비참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상호
기호: 아저씨가 너무 늦게 나타났지? 미안하다.
은호: 몸은 어떠세요?
기호: 괜찮아. 너는?
은호: 저도 좋아요. 언제 다쳤냐 싶게.
기호: 그래, 다행이다. 너는 나한테 은총이었었는데, 나는 너한테 불운이었어. 그지?
은호: 내가 아저씨를 구하고, 아저씨 부탁을 들어준 걸, 하나님이 아저씨한테 준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내 마음이었어요.
기호: (작게 끄덕이며) 아저씨가… 옛날에 아이들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어.
은호: 아저씨 얘기 대충 들었어요. 아저씨도 마음 아픈 아이였다고… 난 어릴 때, 밤마다 불안했어요. 엄마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항상. 그러다 아줌마가 위층으로 이사 왔고, 불안한 밤들이 사라졌어요. 아줌마가 맨날 위층에 있는 것도 아닌데.
기호: 그런 어른이 돼야 되는데.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 되긴 너무 늦은 거지, 내가?
은호: (순수하게 되물으며) 근데 아저씬 죽을 때까지 어른 아니에요?
기호: …그러네. 얼굴 봤으니 됐다. 친구들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얼른 가 봐.
은호: 네. 안녕히 가세요.
(은호가 떠나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기호)
"좋은 파수꾼이 불운한 일을 쫓는다"
가브리엘 뫼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