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에서 켈트계 부족인 아이두이족과 세콰니족이 편을 갈라 대차게 치고받기 시작할 때 세콰니족이 용병으로 고용하자 라인 강 서쪽에 침입하여 갈리아의 여러 부족을 침공하였다. 이 때문에 갈리아 부족들의 구원 요청을 받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58년에 출정하여 평화 협상을 제의한다. 이 회담에서 "당신(카이사르)을 죽이면 로마의 많은 귀족과 지도자들이 감사히 여길 테니 그들의 호의와 우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언급한 것을 보면 로마에서 일어난 원로원과 카이사르의 반목까지 알고 있던 상당히 유능한 자로 여겨진다.[1][2]
평화 협상이 결렬되어 세콰니족의 최대 영토인 베손티오의 근처에 있는 알자스 지방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카이사르에게 패했다. 게르만족은 전투 중에 도망치며 방패를 놓는 것을 전사의 수치로 여겨 교수형에 처하는데, 아마 아리오비스투스도 이때 교수형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담으로 게르만족이었음에도 갈리아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고 한다.
[1] 실제로 아리오비스투스는 이전까지 로마측과 쭉 친교를 유지했으며 원로원으로부터 로마인의 친구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2] 또한 카이사르가 아리오비스투스를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 원로원 의원인 카토는 "카이사르는 비겁한 방법으로 게르만족을 공격하여 학살했으니, 그를 체포하여 게르만족들한테 넘겨주어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원로원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