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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8 13:53:17

아리마 하루노부

유마청신에서 넘어옴
아리마 하루노부
有馬晴信
출생 1567년
사망 1612년 (향년 45세)
종교 가톨릭 (세례명: 프로타시오)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일본 센코쿠 시대의 무장.

2. 생애

1571년에 형인 아리마 요시즈미가 단명하였기에 가독을 계승했다. 이 무렵은 히젠의 다이묘 류조지 다카노부의 공세에 시달려 아리마 가문은 류조지 가문에 복속했다. 하지만, 1584년 사쓰마의 다이묘 시마즈 가문에 협력해 시마즈 요시히사 등의 원군과 협력해 오키타나와테 전투에서 류조지군을 섬멸한다. 그리고,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규슈 정벌에 있어서는 시마즈 가문과 연을 끊고, 히데요시에게 복속했다.

가독을 이을 당시에는 영내의 기독교도에 대해 박해를 했지만, 예수회 선교사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의 영향을 받아 158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1582년 오토모 소린과 하루노부의 숙부 스미타다와 함께 덴쇼 소년사절단을 파견하였다. 1587년 히데요시가 바테렌 추방령을 반포할 때까지 수만의 기독교도를 보호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에서는 같은 기리시탄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군에 속해 종군하였고, 7년간 조선에서 싸웠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 있어서는 동군 측에 가담해 고니시 유키나가의 우토 성을 공격한다. 이 공적으로 자신의 소령을 지킬 수 있었다.

1609년 마카오에서 자신의 가신과 마카오 주민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고, 가신 및 영민 48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하루노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보복을 허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상선 노사 센호라 데 그라사 호(옛 명칭은 마드레 데 데우스 호)가 나가사키에 입항하자, 선장을 구류하고 상선을 포위했다. 하지만, 선장은 선원을 도피시키고, 배를 침몰시켰다.

이 사건 후, 이에야스의 측근 혼다 마사즈미의 가신 오카모토 다이하치[1]와 기리시탄 세력을 재확장하기 위해 자금을 건냈고, 이후 발각되어 이에야스의 격노를 샀다. 이 일로 인해 다이하치는 화형에 처해졌으며, 하루노부는 카이 국 하지카노로 추방된 후 할복에 처해졌다.

1612년, 기리시탄들의 기록에는 하루노부는 기리시탄이었기 때문에 할복을 할 수 없어 참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기록에는 할복을 하였다고 적고 있다. 아리마 가문은 일시적으로 가이에키되나, 아들 아리마 나오즈미[2]가 용서를 받아 하루노부의 영지를 이어받았다.

3. 대중매체에서



[1] 오카모토 다이하치도 가톨릭 신자였다.세례명은 바오로[2] 아버지처럼 키리시탄이었고 세례명은 미카엘(포르투갈어로는 미겔)이나, 이후 막부의 금교령이 내려지자 배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