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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1 01:37:39

아드메스 하트렛

<colbgcolor=#000,#000><colcolor=#000000,#dddddd> 아드메스 하트렛
Admeth Hadret
파일:필라스_아드메스 하트렛 1.png
(헤리티지 힐에 있는 아드메스 하트렛의 동상)
종족 인간
문화 디어우드 자유제후령
가족 관계 에드랑 하트렛 (아버지)
1. 개요2. 배경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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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의 등장인물. 디어우드의 초대 공작이다.

2. 배경

한 때 자기 나라의 일부를 불태워 파괴한 남자가 디어우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가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압제적인 지배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에서 순교한 아드메스를 알지 못하거나 존경하지 않는 디어우드인은 아무도 없다.
게임내 서적 「아드메스 하트렛
아버지인 에드랑 하트렛이 권력자가 되기 전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아드메스 하트렛은 귀족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무명에 가까웠던 아드메스가 두각을 드러낸건 디어우드글란파스의 두 번째 전쟁인 검은 숲 전쟁 때 부터였다. AI 2652년 아디어 제국에서 파견된 탐험가 무리는 에드랑의 감시를 벗어나 글란파스가 수호하는 잉그위스 유적을 약탈한다. 격앙한 글란파스인들은 곧바로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고, 부서진 돌 전쟁에서 디어우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던 레그드가 다시 갈벤의 자리에 올라 군을 지휘한다. 레그드는 숲의 델렘간들을 설득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모았고, 디어우드 곳곳에서는 글란파스 출신의 노예들이 봉기하기 시작한다.

부서진 돌 전쟁 때는 전술의 천재였던 에드랑 하트렛이 레그드와 맞서 싸웠지만, 종전으로 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에드랑은 싸우기엔 너무 늙어버린 상태였다. 결국 에드랑은 악조건 속에서 자신의 아들인 아드메스에게 군권을 맡긴다. 레그드의 군세는 디어우드와 글란파스의 국경인 이세 우아르 강으로 집결하였고, 아드메스가 이끄는 군대도 이세 우아르 강으로 향한다. 아드메스는 레그드의 장기인 유격전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숲을 불태울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군대를 배치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해놓는다. 디어우드의 군대가 숲을 불태우자 거대한 불길에 휘말린 글란파스의 군대는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퇴로마다 디어우드의 병력이 배치되어있었기 때문에 글란파스의 군대는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된다. 반면에 디어우드의 군대는 경미하였다. 이후 아드메스는 수개월간 몇차례 더 화공을 감행하였고, 전투 중 적장이자 아버지의 숙적이었던 레그드를 생포한다. 첫 번째 전투에서 승패는 기울었고 전쟁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종식된다. 그렇게 아드메스는 디어우드의 영웅이 되었다.

AI 2654년 디어우드의 그레프 에드랑 하트렛이 숨을 거둔다. 아드메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그레프가 되었다. 일부 귀족들이 반발하였지만 백성들의 지지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아드메스는 권력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드메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권력을 더욱 확대하기 시작한다. 아드메스는 제국의 페르쾨닝에게 디어우드를 팔라틴령으로 승격시켜줄 것과, 자신을 새로운 팔라틴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페르쾨닝은 제국의 두 번째 식민지인 레드세라스의 문제로 바빴고, 디어우드의 반란을 우려하여 마지못해 아드메스의 요청을 승낙한다. 이후 아드메스는 상업국가인 베일리아 공화국과 친교를 다지고, 팔라틴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디어우드의 수도인 뉴 던리드(디파이언스 만의 옛 이름)를 무역 도시로 발전시킨다. 새로운 무역로에서의 수익이 증가하자 그 혜택을 받기 시작한 귀족들의 불만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과거 에드랑 하트렛은 부서진 돌 전쟁을 경험한 후, 글란파스의 위혐을 알게 되었고 전쟁보다는 공존을 택하였다. 아드메스 역시 마찬가지로 글란파스와 공존하는 길을 택한다. 잉그위스 유적의 침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강화하였으며, 글란파스인들이 디어우드의 노예를 되살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노예주들에게 보상금을 주어 노예 해방을 독려하는 정책을 펼친다. AI 2654년 검은 숲 전쟁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해, 마침내 아드메스는 디어우드의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노예의 소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한다. 노예주들은 보상금을 받았고 노예의 해방을 거부하면 엄벌에 처해졌다. 아드메스가 친교의 손길을 내밀자 글란파스도 화답하였다. 글란파스는 유적의 침입만 하지 않는다면 디어우드인들이 유적 근처에서 사는 것을 허가해주었고, 디어우드와 무역 협정을 맺는다. 이 조약은 '10년 조약'으로 불리었고, 10년조약이 채결 된 후 아드메스는 아버지의 숙적이었던 레그드를 해방시킨다.

10년 조약을 통해 글란파스와 공존의 길을 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제국의 페르쾨닝은 계속해서 탐험가를 파견하여 잉그위스 유적의 약탈을 시도하였다. 결국 AI 2664년 유적을 약탈하던 탐험가가 글란파스인들에게 발견되고야 만다. 당연히 글란파스는 분노하였고, 몇 개의 마을이 글란파스의 습격을 당한다. 하지만 아드메스는 또 다시 전면전을 치르기를 바라지 않았고, 레그드의 뒤를 이은 갈벤 메드라와 대화를 시도한다. 메드라 역시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에 아드메스의 설득에 응하여 습격을 멈춘다. 디어우드와 글란파스는 전쟁보다는 원흉을 찾기 시작했고 글란파스의 영매사인 정신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페르쾨닝이 약탈을 지시했음을 알게 되었다. 두 지도자의 합의하에 디어우드와 글란파스가 연합하여 잉그위스 유적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르쾨닝은 값비싼 잉그위스 유물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탐험대를 파견하였으며,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유적의 약탈을 노렸다.

글란파스는 디어우드에 위협적인 무리였고, 아드메스는 더 이상 자기 백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드메스는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베일리아 공화국의 명칭을 가져와 스스로를 공작이라 칭하였고, 디어우드 자유제후령 독립을 선포한다. 제국의 페르쾨닝은 식민지의 독립을 가만히 두고보지는 않았다. 이스턴 리치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디어우드와 제국은 4년간 저항의 전쟁을 벌인다. 아드메스는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지만, 디어우드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한다. 아드메스가 죽은 후 시민들은 아드메스를 디어우드를 구한 영웅이자, 독립을 쟁취한 국부로 칭송하였다. 과거의 적이었던 글란파스도 아드메스를 개척민과의 평화를 이룩한 영웅으로 여겼다.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