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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훈 | 사파 | 원효 | 혜공 | 자장 |
칭호 | <colbgcolor=#fff,#191919>신라 십성(新羅 十聖) |
국적 | 고구려 → 신라 |
이름 | 아도(阿道), 아두(我頭)[1] |
아버지 | 아굴마(阿堀摩/我堀摩) |
어머니 | 고도령(高道寧) |
사망지 | 신라인 모례(毛禮)의 집 |
생몰년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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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활동한 승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출신의 승려로,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했다고 한다. 이때 신라는 아직 토착신앙이 강했던 시대라 아도가 살아있을 땐 신라 지역이 제대로 불교화되진 못했지만, 이후 세월이 지나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서도 불교가 공인되면서, 아도는 선구자라는 공로를 기렸는지 신라십성(新羅十聖)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 생애
삼국유사에는 삼국사기와 아도본비(阿道本碑)라는 두 개의 기록을 기본 자료로 인용해서 아도의 생애를 그리고 있는데, 아도본비의 기록에는 아도가 원래 고구려 사람으로 어머니는 고구려 사람 고도령(高道寧)이고 아버지는 위나라 사람으로 중국 정시 연간(240년~248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됐던 아굴마(阿堀摩/我堀摩)라고 한다.5세 때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한 뒤 16세에 위로 건너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승려 현창(玄彰)의 문하에서 불교를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했다. 어머니는 아직 불교를 모르는 나라인 신라에 불교를 퍼트려 볼 것을 권했고[2] 아도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 신라로 왔다.
신라에 갔지만 신라 사람들은 토착신앙을 믿고 있어 불교를 멀리 했고 심지어 살해 협박도 받았으며, 이에 아도는 일선현(一善縣)[3]으로 달아나 모례(毛禮) 집에 숨어 지내다가 264년 병에 걸린 성국공주를 치료한 것을 계기로 미추 이사금이 소원을 물었고 천경림(天敬林)에 절을 세우고 싶다 해 받아들여져 신라 최초의 절 흥륜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때의 흥륜사는 제대로 된 절이 아니라 거의 초가집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기를 거점으로 아도가 불교를 퍼트리려 했지만 왕이 죽자 다시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아도는 모록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들어 가서 문을 닫고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아도가 신라에 온 것에 대해 아도본비에는 신라 미추왕 2년 계미(263년), 삼국사기에는 21대 비처왕 때(479년~500년)[4]의 일이라고 했다. 일연은 아도본비의 기록에 대해서 미추왕 때에는 아직 고구려에도 불교가 수용되지 않았었는데[5] 고구려를 제치고 신라에 불교가 먼저 들어 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고, 이어 아도 이전에 눌지왕(417년~458년) 때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에 와서 모례라는 사람의 집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눌지왕의 왕녀의 병을 고쳐주었다는 기록과 묵호자 이후에 비처왕 때에 다시 모례의 집에 온 아도라는 인물의 거동과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다는 기록에 주목해[6] 묵호자와 아도가 동일인물이며 아도가 신라에 온 것은 아도본비의 기록과는 달리 눌지왕 때의 일이 맞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위나라는 조조가 세운 나라 뿐 아니라 북위(386~534)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후자를 "위"로 축약 표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결국 아도 시대에 신라는 제대로 불교화되진 못했고, 훗날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된다.
3. 기타
아도가 숨어서 불교 전파 활동을 한 지금의 구미시에 있는 모례의 집에는 신라 불교 초전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강원도 고성군의 거진읍에 있는 대한민국(남한) 최북단의 절 건봉사의 창건도 아도가 했다고 전해지지만, 시점이 법흥왕 재위 시기인 520년인지라 신빙성은 떨어진다.[7][1] 진한에서는 1인칭 대명사(我)를 아(阿)라고 칭했다는 기록이 정사 삼국지에 있다.[2] 이때에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 있었다는 전불칠처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나라가 지금은 불법을 모르지만 3,000달이 지나면 성왕(聖王)이 나타나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인데 지금 네가 거기 가서 불법을 전파하면 네가 그 땅의 불교를 전한 사람이 되는 거다"라며 신라로 갈 것을 권했다고 한다. 다만 일연은 이 기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3] 지금의 경북 구미시 선산읍.[4] 계미 갑자가 맞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 443년 또는 503년이다. 후술하겠지만 묵호자가 아도와 동일인이라면 443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5] 불교가 한반도에 공식적으로 수용된 것은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에서 온 승려 순도를 통해서였다. 일연은 동방(한반도 지역)에서 불교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시작되어 신라에서 그쳤다고 보았고, 이는 현대 사학계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참고로 고구려에 순도가 온지 2년 후 아도라는 승려도 왔다고 하는데, 이 아도가 이 아도인지도 연구거리다.[6] 여담으로 삼국사기에는 묵호자와 아도의 기록을 이차돈의 순교 사실과 같이 실어놨는데 김대문이 지은 계림잡전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계림잡전은 물론 지금은 전하지 않는 책이다.[7] 원래 웬만한 절들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절이 연원이 깊다는 것을 내세우려고 턱도 안 되게 창건 연대를 끌어올리거나 창건주를 원효, 의상 등 유명한 고승으로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한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불교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